연대봉 완주로 기억될 2008년 추석

[여행] 만신창이가 된 몸안으로 밀려들던 달짝지근한 쾌감

등록 2008.09.17 17:47수정 2008.09.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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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추석날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두 분 선배랑 가덕도를 찾았다. 지지난 주든가, K신문 주말&의 가덕도 기사를 보며 조만간 가봐야겠다고 내심 찍어놨던 터였다. 매력 포인트는 마을 구석구석 훑어보며 탄복한 '여기도 부산 맞나'라는 대목이었으나 산 타기를 즐기는 두 선배를 위해 목적지를 연대봉으로 잡았다. 아침 9시 정각 하단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김 선배가 지각해서 일정을 급거 변경, 신항만이 아닌 녹산선착장에서 10시40분에 출발하였더랬다.

 

 가덕도 여객 터미널인 녹산선착장에서 10시40분발 배가 뜨기를 기다리며
가덕도 여객 터미널인 녹산선착장에서 10시40분발 배가 뜨기를 기다리며안경숙
가덕도 여객 터미널인 녹산선착장에서 10시40분발 배가 뜨기를 기다리며 ⓒ 안경숙

 

10분밖에 안 걸리는 뱃길이라 금세 선창에 도착, 종주할 연대봉을 먼발치서 눈으로 훑어본 뒤 씩씩하게 길을 잡았다. 추석이라선가 날씨는 아직도 여름인데 제법 가을풍취가 나는 게 연대봉 들머리로 가는 마을길이 곱고 예쁘다.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 천가초등학교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멋있어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은행나무 옆에는 흥선대원군이 신미양요 직후에 세운 가덕도 척화비도 있었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고 척화비 옆 안내판에 적혀 있다.

 

 은행나무 수령이 90년이라 적혀있는데 보기에는 삼백년쯤은 돼보인다.
은행나무 수령이 90년이라 적혀있는데 보기에는 삼백년쯤은 돼보인다.안경숙
은행나무 수령이 90년이라 적혀있는데 보기에는 삼백년쯤은 돼보인다. ⓒ 안경숙

 

천가초등학교 옆 천가중학교를 지나 20여분 해안마을길을 따라 걷노라니 기분이 고즈넉해진다. 문제는 마을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눈에 띄는 표지판이 없다는 건데, 한참을 가도 연대봉 들머리가 정확히 어딘지 알 수가 없어 헷갈렸다. 마침 지나가는 차를 세워 물으니 보육원 있는 방향을 일러준다.

 

그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곧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산길이 아니고 임도다. 시멘트로 덮인 구불구불한 임도를 따라 40분가량 걸어올라 보니 국군충혼비가 서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표지판이나 안내도가 하나도 없다.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야 연대봉을 오를 수 있는지 살짝 짜증이 일어날 때쯤 이날 산행중 마주친 유일한 등산객에게 물어 길을 되돌아 가다보니 안내판이 눈에 띈다.

 

가덕도 땅값이 무섭게 올라 그런가, 아님 외지인으로부터 연대봉을 보호하겠다는 주민의식이 지나쳐서 그런가. 가덕도 볼거리 가운데 등대와 쌍벽을 이루는 연대봉 등산객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불친절했다. 산꾼까지는 아니라도 전국 웬만한 산은 다 올라봤다는 동행 김 선배 말인즉, "진짜 내가 다녀봐도 이런 데는 없더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갑자기 없던 정도 떨어지는 게 그냥 확 내려가 버릴까 싶었다. 그래도 나한테는 장산, 금정산, 봉래산에 이어 네번째 완주 목표인 연대봉인데 싶어, 새로 힘을 내어 가다보니 표지판이 또 나타난다.

 

 연대봉 등산안내도. 선창을 떠난 뒤 마주친 등산안내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연대봉 등산안내도. 선창을 떠난 뒤 마주친 등산안내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안경숙
연대봉 등산안내도. 선창을 떠난 뒤 마주친 등산안내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 안경숙

 

현장에선 몰랐는데 저 안내도가 서 있던 데가 국군묘지에서 어음포곡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꺾어지는 코너쯤이었던 같다. 암튼 저기서부터 된비알이 이어지는데 올라보면 알겠지만 이거 진짜 제대로 된 산행이구나 싶었다. 나뭇가지에 앉은 다람쥐와 눈 마주치다가 맑은 새소리를 벗하며 오르면 되는 가벼운 산행으로 알았다간 나처럼 큰코 다친다. 어찌나 가파른지 한 사람이 지날 정도의 좁은 오르막길을 따라 튼튼한 밧줄을 동여매 놓았다.

 

'밧줄 없었더라면 우짤뻔했노!' 표지판 때문에 삐친 맘을 완전 달래주는 밧줄을 붙들고 한 시간은 족히 올랐을 거다. 숨을 헉헉 토해내며 죽을힘을 다해 오르고 나니, 그 고생을 한꺼번에 보상하고도 남을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슴에 안겨오는 시원한 전경과 끝없이 펼쳐지는 태평양의 쪽빛바다 앞에서는 말이 필요없다.

 

 저멀리 다대포와 태종대가 보인다. 더멀리로는 해운대도 보이는데 카메라 성능이 안좋아 사진으로는 안보인다.
저멀리 다대포와 태종대가 보인다. 더멀리로는 해운대도 보이는데 카메라 성능이 안좋아 사진으로는 안보인다.안경숙
저멀리 다대포와 태종대가 보인다. 더멀리로는 해운대도 보이는데 카메라 성능이 안좋아 사진으로는 안보인다. ⓒ 안경숙

 해발 459m의 연대봉, 뒤로 보이는 건 난리가 나면 봉홧불이 활활 타올랐을 봉수대(정확히는 복원해 놓은 것
해발 459m의 연대봉, 뒤로 보이는 건 난리가 나면 봉홧불이 활활 타올랐을 봉수대(정확히는 복원해 놓은 것안경숙
해발 459m의 연대봉, 뒤로 보이는 건 난리가 나면 봉홧불이 활활 타올랐을 봉수대(정확히는 복원해 놓은 것 ⓒ 안경숙

 표지석과 봉수대가 보이는 연대봉 정상에서 내려보는 가덕도 전경이 참하고 예쁘다.
표지석과 봉수대가 보이는 연대봉 정상에서 내려보는 가덕도 전경이 참하고 예쁘다.안경숙
표지석과 봉수대가 보이는 연대봉 정상에서 내려보는 가덕도 전경이 참하고 예쁘다. ⓒ 안경숙

 

 연대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가덕도 전망이다. 잘록한 허리모양인 오른편이 대항이고 왼편이 새바지다.
연대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가덕도 전망이다. 잘록한 허리모양인 오른편이 대항이고 왼편이 새바지다.안경숙
연대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가덕도 전망이다. 잘록한 허리모양인 오른편이 대항이고 왼편이 새바지다. ⓒ 안경숙
 대항쪽으로 방향을 잡아 30분쯤 내려오니 평화로운 포구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탕화면으로 깔고싶을 만큼 근사하다.
대항쪽으로 방향을 잡아 30분쯤 내려오니 평화로운 포구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탕화면으로 깔고싶을 만큼 근사하다.안경숙
대항쪽으로 방향을 잡아 30분쯤 내려오니 평화로운 포구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탕화면으로 깔고싶을 만큼 근사하다. ⓒ 안경숙

대항선착장으로 서둘러 가니 3시 배가 좀 전에 떠났고 다음 배는 오후 5시에 있단다. 1시간30분을 거기서 빈둥거리자니 시간이 아까웠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선착장 반대편의 새바지에 가보자고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바다를 배경으로 서있는 나무와 자갈밭이 그려내는 새바지의 오후 풍경이 감미롭기까지 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서있는 나무와 자갈밭이 그려내는 새바지의 오후 풍경이 감미롭기까지 하다.안경숙
바다를 배경으로 서있는 나무와 자갈밭이 그려내는 새바지의 오후 풍경이 감미롭기까지 하다. ⓒ 안경숙

 

새바지 마을을 둘러보고 5시 시간을 맞춰 대항선착장으로 되돌아와 배를 탔다. 바닷길이 다 그런가,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줬다. 누가 오는지 가는지 무덤덤한 환대, 그리고 뒤끝을 노린 듯 멋진 환송이다. 40여분 뱃길 끝에 신항만으로 들어서자 남컨테이너부두 건설로 바다가 메워지고 있는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내후년이면 이곳에서부터 가덕도를 관통해 거제도까지를 연결하는 다리도 완공될 거라 한다.

 

노을을 등지고 신항 선착장에 내린 시간이 5시40분. 극도의 피로로 만신창이가 된 몸 안으로 달짝지근한 쾌감이 뿌듯이 밀려왔다. 허벅지는 뭣에 두드려 맞은 듯 아프고 발등은 팅팅 부어올랐어도 연대봉 완주로 기억될 하루, 2008년 추석날이었다.

 

 대항에서 40여분 만에 도착한 부산신항. 대부분 추석 귀성객들인 듯 가족단위로 짐을 들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항에서 40여분 만에 도착한 부산신항. 대부분 추석 귀성객들인 듯 가족단위로 짐을 들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안경숙
대항에서 40여분 만에 도착한 부산신항. 대부분 추석 귀성객들인 듯 가족단위로 짐을 들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 안경숙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제신문에도 보냈습니다

2008.09.17 17:4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제신문에도 보냈습니다
#가덕도 #연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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