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인 효석이 아버지. 화끈한 말투로 동네 주민들에게 장난을 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유하
오후 1시쯤 "뿌우~" 하고 작은 고동을 울리며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왔다. 기쁜 마음에 한 달음에 달려갔지만 배가 오후 4시 30분까지는 출발하지 않는단다. 파도에 울렁이는 배에 미리 올라 효석이 아버지이자 이 배의 기관장 최지돌(35)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언제부터 연도에서 사신 거예요?""평생 살았지라. 나도 연도분교의 37회 졸업생이야. 큰이모는 2회고.""진짜요? 그럼 연도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겠어요.""나는 뭍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이해를 못 하겄던데."최씨는 "더 이상 아이들이 들어올 일이 없으니, 이 섬에서 효석이가 마지막 졸업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연도분교는 전교생이 5명, 그 중 세 명이 효석이네 식구다. 효석이네 삼 남매는 연도의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려운 집안 사정도 들었다. 중풍에 걸린 아버지와 시력을 잃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효석이 아버지는 한 달 수입은 100만원 남짓. 일곱 식구가 살기엔 벅찰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얼마 전 작은 불이 나서 그을린 천장은 비만 오면 물이 샌다고 했다. 하지만 서글서글하게 웃는 통에 나도 그저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 2시쯤 되자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씩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배로 찾아왔다. 장을 보고 오는 모양이었다. 뱃머리에 '모든 안부는 이 곳에서'라는 슬로건을 붙여야 할 정도로, 배 안은 금방 왁자지껄해졌다.
"근데 이거 4시 반까지 우째 기다리노. 지겨바(지겨워) 죽겠네.""우리 마 배 대절해서 가삐자. 짐(지금) 사람도 많구만.""저기도 한 너댓명 있다이가. 빨리 불러봐라."배 시간이 아닐 때 운행하려면 4만원 정도를 주고 대절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열댓 명 모이자 "대절해서 가자" "기다리자"는 소리에 시끌시끌해졌다.
결국 원래 마을주민 특별가 2000원 배삯에 조금씩 더 갹출해서 오후 3시 반에 연도로 출발하기로했다. 나로선 조금 더 빨리 섬에 도착한다는 기쁨도 있지만, 동네 주민들의 구수한 입담이 재미있어서 한참을 킥킥거렸다.
진해 섬 중 인구가 가장 많지만, 걸어서 다 돌아볼 수 있는 섬연도는 부두에서 배로 20분 정도. 도착하자마자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서울에서 왔서예?"8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연도는 진해의 섬 중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지만, 걸어서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았다. 젊은 사람들은 뭍으로 나가버리고 지금은 3분의 1 가량이 비어 있다고 한다.
아주머니를 쫄래쫄래 따라가니 효석이네 집은 코 앞이었다. 아주머니께서 주신 물 한 잔을 들이켜고 숨을 고르는데, 옆에선 효석이 삼남매가 '4자 꺾기'를 하는 중이었다. 엎치기·배치기·휘돌아차기 등 무술(?) 권법도 다양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노는 데 끼려고 슬쩍 운을 띄워봐도, 효석이네 삼 남매는 나를 본체 만체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줌마는 못생겨서" 싫단다. 어이쿠! 졸지에 '아줌마'가 되어버린 나는 날다람쥐 같이 뛰어 도망가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뛰어서 1분 거리의 연도 분교에 '퐁퐁(트럼블링)'을 타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