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나?

미국 대선 관전하며 배우는 영어 '한마디'

등록 2008.09.15 18:49수정 2008.09.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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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에서는 pig(돼지)란 낱말이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새라 페일린 알라스카 주지사가 공화당 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는 연설에서 "They say the difference between a hockey mom and a pit bull is lipstick!(하키 맘과 핏불이 다른 점은 하키맘은 립스틱을 칠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뒤부터다.

'하키 맘'은 자기 아들이 참가한 하키 경기장에 따라다니는 억척 엄마(soccer mom, 싸커 맘이라고도 한다)를 가리키고, '핏불'은 개의 일종으로 매우 사나운 동물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 핏불(pit bull)이 좋은 의미로는 악발이라거나 투쟁적인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페일린이 한 말은, 자기가 평범한 억척 학부모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페일린의 이 발언은 많은 백인 가정주부들의 공감을 샀고, 그녀의 인기가 폭등하자 위협을 느낀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선거 연설 도중, 다음과 같이 말했다.


"You can put lipstick on a pig. But it's still a pig. You can wrap an old fish in a piece of paper and call it 'change.' But it's still going to stink. After eight years, we've had enough of the same old thing.(돼지 입에 립스틱을 발라도 돼지는 여전히 돼지다. 잡은지 오래된 생선을 종이에 싸고는 '변화'라고 해봤자 고약한 냄새가 나기는 마찬가지다. 부시 정권 8년 동안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자 매케인 쪽에서 발끈했다. 페일린을 돼지에 비유한 야비한 짓이라고 오바마를 비난했다. 그러나 민주당 측에서는 페일린이 아니라 매케인의 정책이 부시 정책의 재탕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으나 잘 먹혀들지 않았다.

영어에 'lipstick on a pig'(립스틱 온 어 피익)란 표현이 있긴 있다. "돼지 입에 립스틱"이란 말이니까, 볼품없는 것을 좋게 보이게 하려고 위장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오바마의 말 "You can put lipstick on a pig. But it's still a pig"은 우리말 표현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나?"와 비슷한 뜻이 된다.

매케인 자신도 작년 말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로 가장 유력했던 힐러리 클린턴의 국민건강보험 개혁안을 가리켜 오마바와 똑같은 말을 한 일이 있다. 그런데도 오바마의 발언이 페일린의 '하키맘·핏불 발언' 직후에 나왔기 때문에 오바마만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옛날에 변소 밑바닥에 돼지를 넣어 길렀다는데,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돼지를 기르는 일이 많다고 한다. 돼지가 사람의 배설물을 받아먹고 통통하게 살이 찌면 사람들은 그 돼지를 잡아서 먹는다. 이렇게 사람에게 이로운 짐승이 돼지인데, 사람들은 '돼지'를 나쁜 뜻으로 많이 쓴다.


영어에서도 돼지를 뜻하는 피그(pig)와 swine(스와인)은 뚱뚱하거나, 추하거나, 못된 사람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인다. 특히 여자에게 못되게 구는 남자를 여자들은 pig 또는 swine이라 부른다. 여자를 얕잡아 보는 남성우월주의자를 여자들은 흔히 "male chauvinist pig"(메일 쇼비니스트 피익)이라 부른다.

"cast pearls before swine"(캐스트 퍼얼즈 빕호어 스와인-돼지한테 진주를 던지다)이라 하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어주는 것과 같은 행동. 즉 어떤 물건이나 어떤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과분한 물건을 주거나 과분하게 대우해주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원래 성경에 있는 말이다.  


돼지고기를 뜻하는 pork(포오크)도 나쁜 뜻으로 쓴다. 예컨대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주민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전체 국민을 위해 써야할 세금을 억지로 타내서 지역 사업 예산으로 쓰는 것을 pork barrel(포오크 배럴-돼지고기통) 또는 간단히 pork라고 한다.  또 pork-chopper(포오크 차퍼-돼지고기 써는 사람이란 뜻)는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월급만 받아먹는 노동조합 직원들을 가리키는 미국 속어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에게 매일 같이 햄(ham)과 베이컨(bacon) 그리고 페퍼로니(papperoni)를 제공하는 고마운 돼지들을 이렇게 나쁜 뜻으로 쓰다니…. 돼지들은 정말 억울할 것이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돼지를 아주 싫어한다. 이슬람 성서 '코란'에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쓰여 있다 한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돼지를 만지는 것조차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랍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항공기 폭파를 방지하려면 모든 여객기에 돼지를 싣고 다니면 된다는 유머가 나올 정도다. 대다수 유태인들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구약성서(레위기와 이사야서)에도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대부분 즐겨 먹는다. 돼지 삼겹살 좋아하지 않는 한국인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말에서는 '돼지'나 '돼지고기'가 특별이 나쁜 뜻으로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을 '돼지'라고 부르는 정도에 불과하다.   

페일린 발언과 오바마 발언 동영상 주소

이 동영상 후반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흑인 방송인 Oprah Winfrey(오프라 윈프리)는 페일린을 자기 쇼에 초대하지 않고 선거 후에나 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녀는 흑인인 오바마는 자기 쇼에 초대해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이 동영상에 나온 여성 두 명은 윈프리의 이러한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여성 TV시청자들의 호응으로 돈과 명예를 얻은 그녀가 부통령 후보인 여성 페일린을 무시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Race is thicker than gender.(인종은 성보다 진하다)"라는 식의 오프라 윈프리의 태도에 실망한 일부 여성들은 오프라 윈프리 쇼 안보기와 오프라 윈프리 잡지 구독 취소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만일 페일린이 부통령에 당선된다면 오프라 윈프리가 초대해도 가지 않을지 모른다. 이래 저래 이번 미국 대선은 흥미진진한 한판 정치쇼다.

덧붙이는 글 | 조화유 기자는 재미작가이며 "이것이 미국영어회화다"등 영어교재의 저자입니다.
JohEnglish@yahoo.co.kr


덧붙이는 글 조화유 기자는 재미작가이며 "이것이 미국영어회화다"등 영어교재의 저자입니다.
JohEnglish@yahoo.co.kr
#미국대선 #부통령후보 페일린 #돼지 #립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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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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