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와온 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
안준철
올 추석에는 고향에 가지 못했습니다. 추석 연휴가 너무 짧아 멀리 경기도에 사시는 둘째 형님이 내려오기가 어려워 교통이 원활한 다른 한가한 날을 잡기로 한 것이지요. 명절이나 되어야 두 분 형님 내외분을 뵐 수 있어서 기대가 컸는데 어쩔 수 없이 그리운 마음을 잠시 접어야만 했습니다.
대신 추석 연휴가 시작된 어제 토요일, 아내와 함께 순천만에 다녀왔습니다. 배낭에 주먹밥과 김치, 고구마, 계란 등을 챙겨 넣고 순천만 입구까지는 시내버스(67번)를 타고 갔습니다. 순천에 살다보니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훌쩍 순천만을 다녀올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이태 전에는 아내랑 순천만까지 걸어서 간 적도 있습니다. 올 2월에는 저 혼자 순천만에 갔다가 내친 김에 와온 마을까지 해안선을 따라 걸어가 보기도 했습니다. 순천만의 일몰을 제대로 보려면 용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유명한 순천만 S자 물길 위로 떨어지는 아름답고 장엄한 일몰을 구경하기 위해 용산에 올라갔다가 문득 산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와온 마을까지 해안선을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해안선을 따라 길이 끝까지 나 있을 것인지 그것이 확실하지 않아 조금 망설이긴 했습니다. 길을 잃으면 다시 되돌아온다고 해도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길을 나서긴 했지만 말입니다. 길이란 도로와 달리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길을 걷는 그 자체가 중요하지요. 되돌아오는 길도 길은 길이니까 손해를 보고 말고가 없고요.
저는 길눈이 아주 어둡습니다.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파출소 신세를 몇 번 진 적도 있지요. 그런 제가 용산에서 산길을 타고 내려와 길이 가다가 끊기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해안선을 따라 와온 마을에까지 닿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으리라는 것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에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