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양치기 소년'으로 만드는 통신회사

인터넷 전화? 글쎄요

등록 2008.09.13 10:17수정 2008.09.1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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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갈 때 마다 생필품의 가격이 몇 십원에서 몇 백원씩 올라있는 것을 확인하는 요즘이다. 이렇게까지 가파르게 물가가 오른다는 느낌은 결혼하고 13년째 가계를 꾸려가면서 처음 인 것 같다. 매일 눈뜨면 마셔야 하는 커피우유는 3개 묶어 1,350원 하더니, 어느 날 1,600원이 되어 있었고, 며칠전에 가보니 1,800원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

 

이 마당에 적자를 내지 않고 가계를 유지하는 길은 소비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그러나 가계 소비 지출 품목을 뜯어 보면 어디서 그 ‘답’을 얻어야 할지 난감하다. 적금은 깰 수 없고, 보험은 유지하는 것이 ‘버는’ 길이고, 은행대출이자는 날이 갈수록 몸집을 불리고 있고, 아이들 유치원은 보내야 하고, 부모님 용돈도 드려야 한다.

 

그렇다고 한창 크는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식비를 줄이는 건 무모하고, 의복비 및 문화생활비는 더 이상 줄일 것도 없겠다.

 

틈새를 찾고 있던 6월 말, 아파트 집집마다 붙어 있던 통신회사의 인터넷 전화관련 전단지를 보게 되었다. 가입비와 설치비 무료, 10만원 현금 지급, 전화기 할인된 요금으로 36개월 할부 등의 내용이었다. 어쨌든 통신회사를 바꾸면 매달 1만원에서 많게는 2만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선뜻 내키지 않았다. 주변에 인터넷 전화를 쓰는 사람도 없고, 따라서 통화품질이나 서비스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귀찮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일간지의 경제면에 인터넷 전화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내용은 통화품질과 서비스는 주부체험단이 만족할 만한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나는 마뜩치 않아 하는 남편을 설득하여 결국 7월 4일, 새로운 통신회사에 가입하게 되었다. 하얀 AP가 설치되고 하얀 전화기를 쓰게 되었다. 기존의 유선전화기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새 전화번호를 부여 받았다.

 

외부에서는 이전의 번호그대로 전화를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새 전화기로 전화를 하면 사람들은 “어, 어디에요? 외국에 가 계시나?”라는 등 먼데서 전화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했다. 인터넷 전화는 다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달 정도 지난 8월초 였다. 시어머니가 휴대전화로 전화를 하셨다. 아무리 전화해도 통화중이거나 받지 않는다고 하신다. 내가 직접 해 보니 정말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 꿀먹은 벙어리가 따로 없다. 남편은 말한다 “거봐, 그런 건 함부로 바꾸는게 아니라니까”.

 

고객센터에 장애신고를 했다. 그들은 실제로 장애가 있는지 확인한다면서 우리집으로 전화를 한다. 벙어리 같던 전화가 반짝거리면서 울어댄다. 나는 거짓말을 한 꼴이 되었다. “고객님, 아무 문제 없으신데요”. 어떻게 발신은 되는데 수신이 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고, 수신도 되는데 그렇게 불만을 제기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투였다.

 

인터넷 사용에서도 문제가 나타났다. 이메일 발신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메일 작성 중 저절로 꺼지거나, 다른 프로그램과 충돌한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고객센터에서는 바이러스체크를 해 보라고만 한다. 남편은 은행거래 등 중요한 내용은 반드시 USB를 꽂고 쓰도록 조치하였다.

 

8월 29일경 다시 전화는 불통이었다.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남편도 남동생도 왜 전화가 되지 않느냐며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왔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불안했다. 혹시 중요한 전화를 놓치게 되면 어떻하나, 아이들이 다쳤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를 못 받으면 어쩌나. 휴대전화가 이렇게 고마운 때가 없었다.

 

나는 당장 해지를 요청했다. 그런데 또 고객센터에서 전화를 하면 거짓말처럼 전화벨이 울린다. 나와 같은 내용의 장애신고를 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단다. 나는 ‘양치기 소년’이 되 버렸다. 해지하려면 기사의 방문에 의해 정당한 장애요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담당 기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고친다고 해도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고, 인터넷 전화의 역사가 짧아 예상치 못했던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는 등의 설명을 덧붙였다.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던 나는 AS 기사의 방문을 거절하였다. 그렇게 내버려 두니 3, 4일 동안 전화는 되다가 안되다가를 제멋대로 반복하였다. 어느 날은 오후 늦게 작은 올케가 전화하여 “오전에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니 또 되네요”라고 한다.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프라’는 목에 가시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며칠 후, 어떤 요인에 의해 장애가 발생했는지는 알아야 하겠기에 AS 요청을 했다. 기사는 AP가 문제였다며 새 것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통신영역’ 등에 대해 말해 주었으나 이해하기 힘들었고, 다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테니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9월 10일 저녁 9시경부터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AP를 확인해 보니 ‘전화’도 ‘인터넷’도 빨간 불을 밝히고 있지 않았다. 인터넷은 물론이요, 전화는 수신도 발신도 정지 상태였다. 이메일을 급하게 보내야 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분통이 터졌다. 밤 12시가 넘어 장애신고를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 왔다. AS기사는 그 다음날 10시가 가장 이른 방문이라 했다. 기사가 다녀간 후 늘 그랬던 것 처럼, 인터넷도 전화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휴대전화로 수신이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불안해하느니 차라리 해지해 버리자. 그러나 ‘원만히’ 그리고 ‘조용히’ 해지하는 길은 요원했다. 3년 약정 기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해지하려면 할인받은 모든 금액을 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설치비, 광랜할인, 전화할인요금 등을 모두 내야 하고, 할부로 다달이 빠져나가야 할 전화단말기 요금을 일시불로 토해내야 하고, 지급받았던 현금 10만원은 당연히 물어내야 한다는 친절한 안내였다. 최근 백화점에서 본래의 가격을 30-40% 할인된 요금인 것처럼 판촉행사를 벌인다는데, 통신회사에서 할인해 주었다는 요금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만약 소비자가 반환금을 내지 못하겠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그 사유라는 것이 AS 기사가 ‘모든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가 되지 않을 경우에 그것도 해당 기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만에 하나 그와 같은 조치가 취해져도 반환금을 내지 않는 항목은 전화단말기에만 해당된다.

 

소비자의 고통 따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그런 어려움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 수신불가와 같은 ‘장애가능성’을 왜 얘기해 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자, 그런 건 ‘필수적인 고지사항’이 아니라며, 어떤 기업에서 처음부터 그런 얘기를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도 그렇다.

그러니,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뭐? 인터넷도 전화도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2008.09.13 10:17ⓒ 2008 OhmyNews
#인터넷 전화 #주부체험단 #인터넷 전화 해지 #인터넷 전화 할인요금 #인터넷 전화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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