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금품은 기본...'모래 10트럭' 요구도

구속된 지역 일간지 기자들 금품 갈취 백태

등록 2008.09.09 11:52수정 2008.09.0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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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은 최근 충남 공주지역 골재채취장과 도로 공사현장에서 업체의 약점을 잡아 상습적으로 금품을 뜯어온 지역 일간신문 기자 3명을 공갈 등 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2003년부터 모두 40회에 걸쳐 484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같은 방식으로 금품을 갈취해 온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8명(8개 언론사)의 기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의 수사는 지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은 공사업체 관계자들이 기자들에게 금품을 갈취당했다는 제보에 따라 내사를 시작했다.

보복 기사 우려, 피해 증언 꺼려

하지만 수사는 처음부터 벽을 만났다. 업계 관계자들의 피해의식 때문이었다. 피해자들은 금품을 갈취한 기자들이 처벌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후임 기자들이 나타나 악감정을 갖고 보복 기사를 쓸 것을 우려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들은 비판 기사가 나갈 경우 공공기관으로부터 과태료를 부과 받거나 최악의 경우 공사수주나 사업허가를 받지 못하는 결정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금품갈취 혐의로 사법처리돼 해고된 기자가 다른 신문사로 자리를 옮겨 나타난 경우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심스럽기는 수사기관도 마찬가지였다. 대상이 언론이다보니 수사기관이 언론을 길들이려 한다거나 언론을 탄압하려 한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 사이 수사 주체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수사가 급물살을 탄 것은 기자들의 금품 갈취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수사당국은 설명했다.

"더 이상 못 참겠다...그만 두더라도 피해사실 알릴 것"


한 피해업체 관계자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만 두더라도 경찰에 피해사실을 알리겠다'고 나섰다. 이 업체 관계자가 직접 나서 다른 업체 관계자를 만나 '당신도 지난 번에 당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다 얘기하자'며 설득했다.

피해업체 중에는 "액수가 적다며 면전에 돈을 던지는 등 인간적 모멸감까지 받았다"고 주장한 경우도 있었다.

피해 업체 관계자들은 기자들이 찾아와 업체의 약점을 지적한 뒤 기사화하겠다며 은근히 겁을 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누구는 시도 때도 없이 밥값을 요구했고, 누구는 무더기 신문 구독을, 누구는 광고를 요구했다는 것. 

모 기자는 건설업계가 모래 부족으로 아우성이던 지난 2003년 말, 업체에 '모래가 필요하니 15t 트럭으로 10대 분을 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업체는 어렵게 모래를 구해 열흘이 걸려서야 요구량을 실어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금품을 뜯긴 업체는 육상골재채취업체 8곳과 공사현장을 비롯, 모두 10여곳에 이른다. 피해액도 적게는 수십 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 만 원으로 다양하다. 심지어 아무개 기자는 수사가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 5월에도 금품을 뜯어냈다.   

"진술 도중 울음 터트린 피해자도..."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 중에는 모멸감에 진술도중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도 있었다"며 "만약 수사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울분을 참지 못한 피해자들이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기자들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진술을 통해 "겁을 주거나 금품을 요구한 게 아니고 잘못을 시정할 수 있도록 얘기를 해 준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언론 관련 시민단체는 언론인들의 이같은 금품갈취 배경에는 지방일간신문사의 주재기자 제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전충남 민언련은 최근 성명을 통해 "(지방 주재기자들의 경우) 계약직 형태로 채용돼 광고 수주 및 구독 확장 등에 따른 인센티브 형태의 급여가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일부 지역의 경우 주재기자가 대리인을 내세워 지국을 운영하면서 취재보다는 영업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단체 "지방 주재기자 제도 개선해야"

이어 "이 때문에 기사 표절, 금품 갈취, 이권 개입 등 사이비 언론 행각이 심각한 실정"이라며 "그런데도 지역 언론사들은 철저한 검증 없이 문제를 일으킨 기자를 다시 채용하고 있고 주재기자제도 또한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구속된 기자 3명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월 급여를 각각 100만~130만 원 정도 받으면서 신문대금 입금, 광고 수주 등을 통해 부족한 급여를 벌충해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충남민언련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지역 주재기자제도를 폐지하고 본사에서 지역 주재기자를 운용하는 순환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우선 3명의 기자에 대한 수사를 먼저 했고 혐의가 있는 나머지 8개 신문사 기자들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중"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언론인에 의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론인 #금품갈취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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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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