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엔 어떤 생리현상도 참아라?

배설욕구 억압받고 있는 철도 기관사들... 열악한 근무환경이 문제

등록 2008.09.05 09:31수정 2008.09.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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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먼저 상상해 보자. 지하철(전동차)을 탔다. 기관사의 안내방송이 흐른다. "차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본 전동차의 기관사가 급한 용무가 있어 잠시 정차하겠으니, 양해바랍니다." 혹은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관사가 다급하게 안내방송을 한다. "객차에 계신 승객 여러분, 본 기관차의 기관사가 너무 급해서, 다음 정차역까지 참을 수가 없어 잠시 머추겠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양해바랍니다."

수백 수천번을 탔을 지하철에서 이런 방송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있을법 하지만 들은 적이 없다. 기관차에 화장실이 있는 것일까? 아님 기관사들은 승객의 편안한 여행을 위해 무조건 참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물어봤다.

현직 철도공사 기관사인 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관차를 탈 때, 신문지와 비닐봉지는 필수"라고, 조수석에 부기관사가 함께 타지만, 부기관사가 운전하는 것은 불법. 그러니 신호를 보고 안전하다 싶으면 소변은 비닐봉지에 빨랑 보고는 밖으로 휙하고 던진단다. 대변의 경우는 어렵긴 하지만 바닥에 펴놓고 재빠르게 처리한 다음 둘둘 말아 휙하고 내던진다. 그것도 간 큰 기관사나 그렇지 기관사와 부기관사가 성별이 다르면 그것마저도 불가능하다. 무조건 참는 것이 장땡이다. 4시간 가량을 참는다고 생각해보자. 인간의 기본적인 4대 생리 욕구 중 하나인 배설의 욕구를 무조건 참는 건 병을 키우는 것일 테다.

지난해 12월 9일 지하철 2호선 용두역에서 한 차장(전동차의 경우는 기관사가 앞칸에, 차장이 뒷칸에 탄다)이 용변을 보던 중 선로에 떨어져 마주오는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달리는 전동차에서 문을 열고 배설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 이후로 지하철 몇 곳에 기관사와 차장을 위한 간이 화장실이 생겼다고 하는데, 화장실 간다고 안내방송하고 전동차를 세웠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없고, 들었다는 사람도 없다. 기관사나 차장이 자신의 용변을 위해 달리는 전동차를 세울만큼 노동환경이 좋지도 않을뿐더러, 이를 배려할 시민들도 많지 않아보인다.

그럼 밥은 어떻게 먹을까.

"주로 도시락을 이용하는데, 무릎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그 위에 도시락을 올린다. 국 종류는 바닥에 놓고. 신호를 주시하며 젓가락을 이용해 무조건 많이 입에 털어넣는다. 밥먹는 건 그래도 쉽지만 국을 먹을 때는 몸을 숙여 들어 올려 그냥 마셔야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아무개 기관사의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이 더 비참하다. "난 다리가 길어서 의자에 앉아도 발이 바닥에 닿아 안정적이지만, 조금만 다리가 짧아도 바닥에 닿지 않아 흔들리기 십상이다." 기관사라는 직업의 이면이 참 비인간적이다 싶다.

식욕과 배설욕을 허하지 않는 노동조건이 문제


비단 기관사나 차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양한 노동형태가 등장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식욕과 배설욕이 억압당하고 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인천국제공항에 근무하는 경비보안 노동자들은 3시간 근무 후 1시간 휴식의 형태로 하루에 10시간에서 14시간을 근무한다.

3시간 근무 중에는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화장실 출입도 통제당하고 있다. 수천대의 CCTV가 돌아가며 승객 뿐 아니라 근무자들도 감시하고 있다. 근무중에 화장실갔다고 공사직원에게 핀잔듯고, 근무평점에서 벌점 맞았다는 얘기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흔한 일이었다.

대형마트에서 계산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근무시간에는 그 어떠한 생리적 현상도 참아야 하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 아니던가 말이다. 한마디로 식욕과 배설욕을 허하지 않는 현실의 노동조건이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부르는 비참한 현실의 원인이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비뇨기 장애를 수반한다.

좀 참을 수 있는 것 아니야, 돈 받는데 그런 것 하나 참지 못하냐 하는 사람들 있다. 쉬는 시간엔 뭐하고 꼭 근무할 때만 그러느냐, 일하기 싫은 것 아니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자야 하며, 마려우면 배설해야 하는 생리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양보할 수 없는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며, 욕구다.

"프랑스에는 기관사가 어디로 운행하든지 식사시간에는 교대하게 한다"는 기관사 아무개씨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십 년 회사를 위해 일한 대가가 위장 장애에 비뇨기 장애라면 어쩌란 말이냐?

선진화, 민영화, 경쟁력 강화 운운하기 전에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blog.naver.com/ddolr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blog.naver.com/ddolr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철도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기관사 #배설 #노동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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