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절이 양념볼에다 겉절이 양념을 만들었다. 주재료는 액젓 1숟가락, 양조간장 2숟가락, 재래간장 조금, 참기름, 깨소금, 마름고춧가루 적당량, 홍고추는 잘게 다지고, 식초를 몇 방울 뿌린다.
박종국
우리 집 비빔밥의 비법은 바로 철마다 나오는 신선한 채소에 있다. '겉절이'다. 봄에는 향긋하게 돋은 상치, 여름에는 풋풋한 이파리를 가진 열무다. 바람결 서늘한 이즈음에는 '솎음배추'를 최고로 챙겨먹는다.
솎음배추는 가을배추를 심고 보름쯤 지나 밭고랑마다 잰걸음으로 다니면서 솎아낸다. 물론 그런 수고로움이나 번거로움을 겪지 않으려면 별도의 텃밭에다 그냥 흩어 뿌려 놓으면 솎아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날 한시에 씨앗을 뿌려놓아도 키 자람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솎음배추겉절이'는 이른 아침 해가 돋을 즈음에 솎아야 싱싱하다. 웃자란 놈부터 먼저 솎아낸다. 전체 솎음배추를 순차적으로 가꾸는데 꼭 필요하다. 개중에는 배게 자란 것을 과감(?)하게 솎아내야 한다. 한 곳에 지나치게 많은 배추가 자라면 잎이 실하게 자라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줄기만 껑충 자라 겉절이로 씹는 맛이 떨어진다.
특히 요즘과 같은 계절에는 솎음배추밭에 물을 주어야하는데(그 이유는 배추줄기가 질겨지지 않는다), 아침나절보다는 해질녘이 좋다. 무엇이든 거저 얻어지는 것이라곤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만한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한 소쿠리 솎아 온 배추는 곧바로 다듬어야한다. 다듬을 때는 밑동만 자르고 겉잎을 제외한 모두를 겉절이로 사용한다(겉잎은 따로 데쳤다가 나물로 무치거나 국거리로 대체한다). 양이 많다 싶으면 속내 잎은 버려도 좋다. 하지만 나의 경우 솎음배추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이렇게 다듬어진 솎음배추는 찬물에 휘젓듯이 씻어 소쿠리(대소쿠리면 금상첨화다)에 받혀 물기를 뺀다. 그 까닭은, 겉절이를 할 때 물기가 너무 많은 재료를 사용하면 나중에 물이 흥건하게 묻어나서 제 맛이 안 난다.
다음 차례는 겉절이 맛을 좌우하는 '양념준비'다. 우리 집 겉절이 양념비법은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았다. 어머니는 박씨 종갓집에 열여덟에 시집와서 특유의 음식비법을 지니셨다. 어머님으로부터 그 노하우를 전수 받는 데는 많은 세월흐름이 필요했다. 왜냐? 음식 만드는 비결은 그냥 말로써, 글로써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손맛과 입맛에 따라 달다지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장맛이나 젓갈 등 전통음식을 대대로 전수받고 있는 종부(宗婦)들을 만나보면 열에 아홉은 어머니 시어머니로부터 직접 전수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그게 맛깔스런 음식을 만들어내는 비법이다.
우리 집 양념 비결은 간장과 된장, 젓갈(액젓)에 있다. 간장과 된장은 직접 담아서 해묵은 것을 쓴다. 젓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젓갈은 그냥 쓰지 않고 걸러서 사용한다. 그래야 김치를 담거나 다른 양념으로 사용할 때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젓갈을 걸을 때는 반드시 한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젓갈 찌꺼기가 남지 않고 맑은 젓국을 얻을 수 있다.
'솎음배추겉절이 양념'은 5인분 기준으로 액젓(한지로 걸러 둔 액젓) 1 숟가락, 양조간장 2 숟가락, 재래간장 조금, 참기름, 깨소금, 마른고추가루 각각 조금 넣고, 붉은 고추(가을빛 나는 지금의 홍고추는 보약이다)를 잘근잘근 다져넣고, 식초를 적당량 떨어 뜨려 박박 문지르지 말고 조물조물 무쳐낸다.
이때 간을 보아야 하는데, 겉절이는 소금에 절인 채소처럼 밑간되어 있지 않기에 싱겁고 짠 정도로 곧바로 맞춰야한다. 새콤한 것을 좋아 하거나 매콤한 것을 즐긴다면 그 취향에 따르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고슬고슬하게 뜸이 잘 돌은 밥으로 비비는 차례, 절로 군침이 도는 시간이다. 먼저 널찍한 대접에다 적당량의 밥을 퍼 담는다, 대개 반 공기 정도면 충분하다. 비빔밥은 거십(비빔밥에 올려놓는 갖고 나물 종류, 경상도 방언)이 많이 넣어야 더 맛이 좋다. 그리고 나서는 두어 번 뜨거운 밥의 열기를 식혔다가 준비된 재료(솎음배추겉절이)를 얹어 젓가락으로 비빈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비비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비빔밥을 숟가락으로 비비는데, 그것은 온당치 않은 고정관념이다.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솔솔 비벼야 한다. 그래야 밥알에 양념이 골고루 묻고, 갖은 재료들의 제각각 향기와 맛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