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떼가 달려드면 납작 엎드리는 게 상책"

안성에서 벌초대행 6년째 해 온 '벌초 3인방'의 벌초 이야기

등록 2008.09.03 17:30수정 2008.09.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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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탐색 봉순영씨가 도면 하나 들고 부탁 받은 산소를 찾아가는 중이다. 거의 중무장한 군인이 산속 행군을 하는 듯 보인다.
산소 탐색봉순영씨가 도면 하나 들고 부탁 받은 산소를 찾아가는 중이다. 거의 중무장한 군인이 산속 행군을 하는 듯 보인다.송상호

기계를 등에 지고 있는 노인 3명이 하얀 지도 같은 것을 들고 산을 샅샅이 뒤진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뭔가를 열심히 찾는다. “이쪽이 아닌가벼”를 큰 목소리로 외쳐댄다. 흡사 특전사 군인들이 지도 하나 달랑 들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훈련을 연상케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심봤다’는 소리가 들리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고는 주위를 살핀다. 그러더니 약속이나 한 듯 등에 지고 간 예초기(풀베개)에 시동을 건다. 적막감이 흐르던 조용한 산에는 순식간에 탱크 굴러 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그것도 한 대도 아니고 두 대의 소리가 스테레오로 작렬하면 마치 조용한 산에 기계 공장이 옮겨온 듯하다. 한 사람은 그 옆에서 조용히 갈퀴로 낙엽을 끌어 모은다. 마치 고운 참빗으로 머리를 땋아 묶듯 정성껏 낙엽을 모은다. 아니 머리로 빗을 빗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돌아가신 장인, 장모가 500명이나 되유”

이렇게 요즘 인근 산을 헤집고 다니며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안성 금광면 ‘벌초 3인방’이다. 대표 격인 봉순영 (51세), 갈퀴 담당 이상범(65세), 예초기 담당 윤희섭(65세) 등이 바로 그들이다.

6년 전 우연히 농협에 예초기 고치러 갔다가 벌초대행에 관심을 가진 봉순영 씨와 한 팀이 된 것이 그들의 인연이다. 굳이 세 명이 어울려 다니는 것은 혹시 모를 사고(예초기 사고나 각종 안전사고, 뱀에게 물리거나 벌에게 쏘이는 사고 등)에 대처해줄 동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모두 인근 마을 사람들로 마을에서는 젊은이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서로를 선택했다고 하니 농촌의 현실을 잘 반영해주는 듯싶다.


“하이, 저 양반(봉순영 씨)이 데릴사위여 데릴사위.”
“무슨 소리세요?”
“저 양반이 산소만 보면 ‘장모님, 장인어른’이라고 한단 말여. 아 그라고 자신의 조상 산소는 대충 해도 이 산소는 꼭 데릴사위가 장인, 장모 산소 관리해주듯 잘해주니께 우리 덜이 붙여준 별명이제.”

 각자 맡은 기계로 열심히 벌초 중이다.
각자 맡은 기계로 열심히 벌초 중이다. 송상호

이런 이야기가 들리자 조용한 무덤가에는 삽시간에 웃음 폭탄이 터진다. 봉순영씨 말에 의하면 6년 동안 관리해 준 남의 산소만 해도 500개 정도 된다고 하니 그의 돌아가신 장인, 장모(?)가 500명이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정성들여 산소를 관리해 주었다는 이야기렷다.


실컷 엉뚱한 산소 관리해 주고는 단골 만들어

“아, 한번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산소를 관리해주고 내려왔는디, 며칠이 지나 산소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오더라고유. ‘왜 산소를 그냥 두었냐고’. 그래서 ‘무슨 소리냐고. 우리가 풀 깎고 정리 다 해놨는디’. 알고 보니 비슷한 위치에 있는 엉뚱한 산소를 깎아 준 거지 뭐여. 그랴서 후딱 가서 또 거기를 관리해 줘버렸지유. 근디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실수로 관리해준 그 산소 주인이 지금도 우리에게 산소를 관리해달라고 한다니께요. 허허허허.”

이런 실수가 벌어지는 것은 모두 다 묘비 없는 산소 때문이란다. 묘비가 있으면 어떻게든 찾아가서 실수하지 않을 텐데 묘비가 없는 경우는 전화로 위치 설명을 듣거나, 아니면 팩스로 위치를 그린 도면을 보고 찾아 가기에 실수하는 것.

6년 동안 벌초를 대행하면서 유일한 실수담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단골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니 옛말 하나 그르지 않는 셈. 바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소는 이렇게 관리해야

“요즘은 명당자리 개념이 바뀌었시유. 옛날엔 조금 깊은 숲속에서 햇빛 잘 드는 동향이나 남향이었잖아유. 요샌 그것보다도 큰 길가가 명당이라니께유. 자손들이 들락날락 하기 쉬운 곳에 있어야 산소가 잘 관리되더만요. 접근하기가 어려운 숲속 깊은 곳에 있는 무덤은 자손들이 관리를 잘 하지 않아 엉망인 경우가 종종 있시유. 그러니께 명당은 자손들이 자주 오기 쉬운 곳이 명당자리 아니것시유.”

추석 한 달을 남겨두고부터 본격적으로 벌초대행을 부탁해온다지만, 부지런하고 신경 좀 쓰는 자손들은 봄이 지나 한식 무렵(6~7월 경)에 한 번 더 산소를 관리해준다고. 그러니까 1년에 2회를 관리해 준다는 이야기다.

산소 주변에 나무가 많이 우거지면 좋지 않다는 것. 나무가 그늘을 만드니 잔디가 잘 자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나무들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잔디를 덮어 그늘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당연히 풀만 깎고 나뭇가지만 쳐주는 것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것은 갈퀴로 낙엽을 모두 긁어모아 다른 곳으로 버리는 작업인 게다.

또한 예초기를 사용할 때는 절대로 음주를 삼갈 것을 봉순영씨는 신신당부한다. 물론 본인들은 한 번도 예초기 사고가 없었지만, 자기가 아는 사람이 술기운으로 일을 하다가 크게 다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눈치 챘겠지만, 역시 산소 관리의 핵심은 접근이 용이한 곳에 조상의 묘를 모시는 것이라고. 아무리 좋은 산소라도 접근이 어려워 자주 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벼가 잘 자라듯 자손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산소는 잘 간수되는 것이다.

벌초 3인방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산소 앞에서 폼을 잡은 '벌초 3인방'의 위용. 마치 산소를 지키는 삼총사같다.
벌초 3인방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산소 앞에서 폼을 잡은 '벌초 3인방'의 위용. 마치 산소를 지키는 삼총사같다.송상호

벌의 종류에 따라 대처 방법도 달라야

자신도 재작년에 벌초를 대행하다가 땅벌에게 쏘여 병원까지 실려 가는 사고를 겪었다는 봉순영 씨는 벌초하면서 벌에 대처하는 비법을 공개했다.

먼저 산소에 도착하면 반드시 산소 사방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 벌집이 혹시 근처에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할 것은 비가 조금이라도 부슬부슬 오는 날에 벌이 밖에 나다니지 않는다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도 이런 날 땅벌에게 당했기 때문에 잘 안다는 것.

“벌떼가 달려들면 일단 예초기를 끄야 되유. 그런디 대처 방법은 벌마다 달라유. 말벌 떼가 달려들 때 뛰어서 도망가면 큰일나유. 끝까지 따라와서 쏘아 버릴 테니께유. 그 땐 무조건 벌떼가 진정하여 돌아갈 때까지 땅에 납작 엎드리는 게 상책이지유. 그런디 땅벌은 또 달라유. 그놈들은 사람이 땅에 엎드리거나 말거나 옷 속으로 침투해서 쏘아버리 거든유. 아, 지가 그런 놈들한테 당한 거 아니것시유. 그럴 때는 예초기를 땅에 내려놓고 벌떼가 없는 곳으로 신속하게 피하고 보는 게 장땡이지유.”

산소를 관리해주고 나서 잠시 담배를 피울 동안 한 인터뷰가 끝나자 그들은 또 기계를 주섬주섬 챙겨 대기해 있는 봉고차로 향한다. 그들은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와서 조금이라도 더워지기 전에 부탁받은 산소를 벌초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루에 8개 정도를 관리해야 하는 날이면 시쳇말로 식겁한다. 연중 한 달 바짝 움직여서 용돈 좀 버는 셈. 평소는 농사를 짓겠지만 말이다.

추석 전에 한창 몰리는 벌초 대행 부탁 때문에 실컷 남의 산소 관리해주다가 추석이 거의 다 이르게 되어야 자신들의 조상 묘를 마지막으로 돌보게 된다는 ‘벌초 3인방’은 안성은 기본이고, 천안과 진천까지 원정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며 자랑을 했다. “연락만 주세요. 1시간 거리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라는 말과 함께.  

봉순영씨 '벌초 3인방'의 대표격인 봉순영 씨는 팀원 중에 한참 막내이다.
봉순영씨'벌초 3인방'의 대표격인 봉순영 씨는 팀원 중에 한참 막내이다.송상호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3일 금광면 옥정리의 한 산소에서 했다. '벌초 3인방'에 대한 문의는 안성 금광농협( 031-672-3770)으로 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3일 금광면 옥정리의 한 산소에서 했다. '벌초 3인방'에 대한 문의는 안성 금광농협( 031-672-3770)으로 하면 된다.
#벌초대행 #금광농협 #봉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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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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