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학생이 전종훈 신부에게 보낸 카드.
장윤선
"저희 수락산 공동체의 소임을 다하신 전종훈 시몬 신부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목을 훌륭히 감당하시고,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신 전 신부님께서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서 늘 그 뜻을 실천하시도록 주님, 은총을 베푸소서."
'신자들의 기도'가 끝나고, 영성체 후 묵상이 이어질 때까지 신자들의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전종훈 신부도 미사 가운데 착잡한 마음을 눈물로 대신했다.
"본당신부 임기는 5년인데, 제가 갑작스럽게 이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1년 만에 갈 수도 있는 거지요. 너무 빨리 떠나게 되니까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데(긴 침묵). 아직도 버려야 할 게 많은 모양입니다. 그건 가진 게 많다는 것이겠지요. 머무는 것도 가진 것일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순례자입니다. 따라서 머물면 썩는 것입니다. 이번에 하느님께서 제게 새롭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더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많이 군림하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더 낮아져서 정말 낮은 곳에 있는 예수님에게로 가겠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겠습니다. 실은 저도 처음 당하는 일이라 혼란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노래로 대신 하겠습니다."
전종훈 신부는 미사 후 '송별회' 때 신자들에게 짧은 이별인사를 건넨 뒤, 신상옥 작곡 하한주 작사의 '임쓰신 가시관'을 불렀다. 순교의 의미를 담은 생활성가였다.
"임은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 임 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라. 이 뒷날 임이 오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뒷날 나를 보시고 임 닮았다 하소서. 이 세상 다할 때까지 당신만 따르리라."
전종훈 신부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성당 벽 '십자가의 길' 14처를 지나 천정에 울려퍼지자 신자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를 때, 십자가를 대신 진 시몬이나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 성 베로니카처럼, 신자들은 박수로 전 신부를 응원했다.
미사 영성체 750번, 묵주기도 300단, 화살기도 4500번, 주모경 4500번. 수락산 성당 신자들이 전 신부를 위해 올린 기도의 총합이다. 신자들이 "신부님의 영육간 건강을 빈다, 우리는 신부님을 사랑한다"고 조용히 읊조리자, 전 신부는 끝내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