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하늘색이 아름답다. 가지끝에 앉은 잠자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강기희
하늘이 푸르고 높습니다. 점점이 떠 있는 흰구름도 풍경 하나를 보태기에 충분한 가을날입니다. 소란스럽게 움직이면 땀이 배어나오다가도 그늘에 들어가면 그 땀이 재빨리 꼬리를 감추는 요즘입니다.
가을에 만나는 풍경은 다 아름답다하늘색이 참으로 곱습니다. 바늘로 하늘을 '콕' 찌르면 청색 물감이 얼굴로 주륵 흘러내릴 것만 같은 날이 연일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기에도 좋고 책을 읽기에도 좋고 밀린 여름 빨래를 하기에도 그만인 날입니다. 가능하다면 몸을 빨래줄에 걸어 두어 시간 정도 말리고 싶은 날이기도 합니다.
가을의 대명사인 고추잠자리는 전기줄에 줄지어 앉아 졸거나 비행을 위해 잠시 쉬고 있습니다. 이럴 때 전기줄은 잠자리의 쉼터거나 새로운 비행을 준비하는 활주로입니다. 미동도 없이 앉아 았던 잠자리는 어느 순간 푸른 하늘을 날아 올랐다 돌아와서는 빈 자리에 앉습니다.
산길에 피어난 마타리꽃이 유난히 노랗게 느껴지는 오늘, 산촌마을도 분주합니다. 산촌마을을 떠들썩 하게 만드는 이들은 벌초객들입니다. 주말을 맞아 산촌으로 찾아든 벌초객들은 각자의 조상 묘를 단장하느라 땀을 뻘뻘 흘립니다.
벌초하기 위해 돌리는 예초기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납니다. 벌초를 끝내면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도 모처럼 찾은 할아버지 묘에 어설픈 몸짓으로 절을 합니다. 벌초 후 둘러 앉아 먹는 음식도 가을맛이 나는 그런 하루입니다.
저도 이른 아침 할아버지 할머니 묘와 아버지 묘에 다녀왔습니다. 다른 집들처럼 예초기를 사용하지 않고 날을 파랗게 벼린 낫으로 벌초를 했습니다. 전통적인 방법이지요. 쪼그려 앉아 풀을 베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왼손잡이라 오른손잡이 낫으로 벌초를 하려니 더 힘듭니다. 왼손잡이의 비극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이께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피마자 잎을 따고 있습니다. '아주까리'라고도 불리는 피마자는 어머이가 짓는 농사입니다. 이태 전 함께 살기 위해 아들 집으로 온 어머이는 피마자 열매 몇 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새끼를 치더니 올해는 밭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아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