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교동 고분군에 위치한 창녕박물관창녕에서 24번 도로를 따라 밀양 방향으로 나가다 보면 황왕산 서쪽 기슭에 창녕박물관이 있는데, 2개의 전시실과 시청각실을 갖추고 있다. 가야시대의 유물 중 총 166종 276점(토기류 85점), 말 장식품 42점, 장신구류 50점, 무기종류 53점, 기타 46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교통 고분군과 계성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시실내에는 유리 고인돌 모형이나 진흥왕 척경비 모형, 그리고 무덤의 내부 양식을 이해할 수 있게 모형도를 잘 갖추고 있다. 특히 전시관 중앙 홀에는 가야 고분의 축조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모형관이 설치되어 관람객이 가야시대 고분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야외 전시관에는 개성고분군의 모형도를 만들어 고분의 양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박종국
창녕 고분군 답사는 담담한 마음으로 그쳤다. 그런데 분개할 일이 많았다. 역사적으로 도굴이나 약탈을 문화우월주의로 자만하는 나라는 많다. 영국과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일본도 버금가는 나라다. 굳이 세계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들이 강화도와 거문도에서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를 보면 백일하에 드러난다. 일제가 36년 동안 우리 강토를 헤집고 다니며 강탈해 간 문화재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이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거다. 흔히 도자기 전쟁으로 불리는 임진왜란 때는 아예 도공들을 붙들어감으로써 이 땅의 문화재 존망 자체를 싹쓸이해 갔다. 텅 빈 껍데기만을 복원해놓은 고분군, 울컥한 마음이 치솟았다. 한국인으로써 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기 때문이다.
출토된 유물 대부분 일본에 강탈당한 아픈 역사를 남겨송현동 고분군은 크게 2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1군은 창녕의 동북쪽 목마산(牧馬山) 기슭에서 서쪽으로 송현동 일대에 위치하며, 그 일부는 도야리로 통하는 도로를 넘어 교동지역(校洞地域)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원래는 80기 정도의 큰 고분이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16기에 불과하며, 횡구식 석곽(앞트기식 돌방무덤)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는 것도 있다.
2군은 송현동 석불이 있는 부근에 20여기가 있으며, 대부분 논으로 개간되어 원형이 유지하고 있는 것은 몇 기가 되지 않는다. 이 유적은 교동 고분군과 인접하고 있어 유구나 유물의 성격이 거의 같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18년 교동 고분군과 함께 발굴된 89, 91호 고분의 보고서가 없어 이를 확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