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축제장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어요

등록 2008.08.25 20:50수정 2008.08.2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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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에 볼일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월요일은 목회자인 저에게는 좀 나사가 풀리는 날입니다. 비교적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영동군내는 포도축제로 왁자지껄했습니다. 초청가수 공연, 추풍령가요제, 포도연구 포럼, 포도제품 시식회 등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호사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습니다. 지역 축제에 대한 기대치가 많지 않은 나는 그냥 지나치며 차에서 대강의 축제 내용들을 생각하는 데 그쳤습니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해 차를 달렸습니다. 읍내를 한참 벗어났는데도 축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과 깃발들이 분위기를 한층 돋웠습니다.

 

와인코리아는 포도제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지나치며 건물을 완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오늘 김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그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와인코리아를 지나 500여m나 지나왔는데, 그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솟구쳤습니다. 좁은 국도에서 차를 돌렸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장 안 이곳저곳에서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은 가족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차를 주차하고 뒤돌아보니 이런 플래카드가 와인코리아 입구에 붙어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 내외분 와인코리아 방문을 환영합니다"

 

저는 현수막에 무게를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다녀갔거나 아니면 다녀 갈 예정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우리완 무관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때 아내가 안내하는 사람에게 노 대통령 내외분이 다녀가셨냐고 물었습니다. 안내자는 지금 공장을 견학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안쪽 한 코너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 사람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람들이 그룹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든 것으로 봐서 기자들도 상당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관계자들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묻고 있었습니다. 차림도 수더분한 점퍼 차림입니다.

 

저는 그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의 전직 대통령 상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좋은 시골 아저씨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을 지낸 분의 권위를 내려놓고 촌부의 한 사람으로 참석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친근했습니다. 수행원들이 몇 명 같이 온 것 같기는 한데, 그들의 경호도 아주 느슨했습니다. 대통령 재임 시 국정 수행에 진실되게 임하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의 자유로움을 그에게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를 안고 온 젊은 엄마는 즉석에서 만들었을 법한 "노무현 사랑해요!!"라는 글귀의 환영판을 들고 있었습니다. 몇 사람들이 그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 부부도 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노 대통령과는 오래 전에 시민운동 일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에서 제가 정책실장의 일을 보고 있을 때 노 대통령은 지금은 고인이 된 제정구(諸廷丘) 선배와 그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습니다.

 

빈민운동 출신인 제 선배가 주로 상근 대표의 일을 해냈습니다만 노 대통령도 가끔 수련회 등에 참석해서 빈민의 주거권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곤 했습니다. 그 때 그는 국회의원을 지내다가 쉬고 있었음에도 결코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멀리 수련회에 참석해서 토론에 임했습니다. 주로 듣는 입장이었지만 주거 문제에 법률적 문제가 걸리면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주곤 했습니다.

 

전혀 예정에 없던 그와의 만남이었지만 와인코리아의 방문은 저희 부부에게 아주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옥천에도 포도 축제가 있고 또 지금 살고 있는 김천도 포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행사의 내용에서 그리고 참석자들의 면면들로, 무엇보다도 전국적 호응도로 볼 때 영동 포도축제가 단연 돋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전국의 각 자치단체들이 나름대로의 지역 축제로 이목을 모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동 포도축제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영동의 포도축제, 해가 거듭될수록 더 알찬 내용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08.08.25 20:50ⓒ 2008 OhmyNews
#노무현 #와인코리아 #영동 포도축제 #전직 대통령 #제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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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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