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들이 교관으로부터 교육내용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국방홍보원 국방화보
"어이~ 신병. 장기자랑 뭐할 거니?"그리고 몇시간 후, 드디어 장기자랑 시간이 왔다. 우락부락한 고참들은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며 뜨거운 눈초리로 날 쳐다보았다.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나서 뭔가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고참에게 말했다. 비장의 카드를 말할 차례가 온 것이다.
"우슈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고수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나의 대답에 고참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흥미 만점이라는 표정이다. 내무실이 술렁거렸다. 무술 시범을 보인다는 말에 고참들이 눈이 놀란 토끼눈이 돼버린 것이다.
고참들은 진짜 우슈를 할 줄 아냐고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나는 "네"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소룡과 이연걸이 "아뵤, 아뵤~" 하는 바로 그것, 견자단과 성룡이 영화계를 주름잡는 바로 그것, 쿵푸를 하겠다고 큰 소리를 뻥뻥 친 것이다.
"우와, 정말? 너 쿵푸 할 줄 안다는 말이야?""네… 할 줄(은) 압니다."하지만 겉모습의 당당함과는 달리 사실 속마음은 울렁거렸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할 줄만 알았기 때문이다. 우슈를 배운 적은 없었다. 그저 무술영화를 보며 자체 연습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속으로는 잔뜩 걱정이 됐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 위안을 했다.
"정무문 보면서 연습했잖아, 괜찮아"'괜찮을 거야, 난 이연걸 광팬이잖아.' 중고등학교 시절에 집에서 이연걸의 <정무문> <영웅> <탈출>을 보고 혼자서 우슈 연습을 했던 나, 학교에서도 아이들하고 무술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게다가 어디 그뿐이랴, 태권도와 유도를 남들보다 더 많이 배웠다는 자신감. 그래서일까? 그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잠시후, 결전의 시간이 왔다. 나는 기합을 잔뜩 넣고 왼손으로 오른주먹을 감싸면서 우슈 동작을 시작했다. 뭐, 사실은 태권도 동작에서 몸만 조금 흐느적거린 거였지만 말이다.
"오, 잘하는데?" "오오… 하하하." "와, 진짜 우슈 배웠나 보네?"그런데 대성공이었다. 반응이 좋았다. 간간히 발차기 섞어 주시고 자체개발 취권·당랑권·원숭이권법, 다 섞어버린 나의 모습에 고참들이 깜짝 놀랐다. 고참들의 눈에는 내 가짜 우슈 시범이 진짜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뭐 좋은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박수를 쳐주는 고마운 고참들도 있었다.
잠시 후, 쿵푸 시범은 완벽하게 끝이났다. 종전의 가라앉은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고, 내무실은 웃음 바다가 됐다. 나는 속으로 '휴, 끝났다'를 외치며 일이 다행스럽게 끝났음에 안도했다. 나는 이제 고참들한테 사랑받는 일만 남은 거라고 믿었다.
'휴, 이대로만 끝나면 완벽해.'그런데 내가 안심하고 있던 그 때, 해피엔딩 결말을 가로막는 비극적 반전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역시 완벽한 거짓말이란 없는 모양이다. 갑자기 상병 계급을 단 고참이 대뜸 일어나더니 말하는 것이다.
"이봐, 우슈는 처음 보네. 간단히 대련 한 번 하자. 나 OO대학교 태권도 선수야."헉. 오마이갓, 눈앞이 깜깜했다. 대체 이 부대는 어찌 된 것인지 럭비·축구 선수 뿐만이 아니라 태권도 선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고참은 내가 우슈를 배웠다고 하니까 무도인의 입장에서 대련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중량급인 고참은 진짜 태권도 선수. 몸풀기 겸 앞차기를 하는데 내 머리보다 더 높게 발이 휙휙 올라온다. 다리도 쭉쭉 뻗어진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눈 앞의 고참은 <정무문>의 연걸이 형이 와도 이길 수 없을 듯한 태권도 고수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플라이급인 내가 어떻게 중량급의 진짜 태권도 선수와 대련을 한단 말인가.
'앗, 큰일났다. 난 이제 죽는 건가?'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못하겠다고 말해야 했으나 그 우락부락한 고참들 앞에서 정색을 하고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죽느냐, 망신을 당하느냐 고민 앞에서 최후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아, 아… 네. 뭐, 까짓거 한번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