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새사장 선임 이사회 앞두고 마포가든 호텔로 기습적으로 장소 변경한 가운데 13일 오후 서울 마포가든호텔에서 KBS 노조원들이 공영방송 파괴하는 이사회의 해체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이제 마지막으로 기대할 것은 사법부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법원이 정 사장의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결하면 정 사장의 해임은 정당한 것인가?
필자는 법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현행법을 근거로 정 사장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 해임될 만한 정도의 죄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다만 공영방송을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이러한 사안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해임해서는 안 되며, 만약 이러한 사안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 법체계가 있다면 반드시 이를 고쳐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서구의 공영방송에는 국가방송이나 관영방송이 아닌, 당대의 정부의 관여에서 유리된 독립기구로서의 지위가 부여되어왔다. 물론 사장을 왕이나 대통령이 임명하는 등의 절차가 있고 이에 따라 국가권력이 면직권을 지닐 수도 있겠지만, 새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영방송 사장이 물러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 사장 해임이 코드가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영상의 배임 등의 '비위'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자. 공영방송 사장을 몰아낼 때 '코드가 맞지 않아서'라고 이유를 대는 나라는 없다.
독재국가라면 내 사람이 아니면 이유 불문하고 자르는 것이 상식이며, 그나마 절차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라면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다른 이유를 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 사장 해임도 이후에 나온 여당 대변인의 논평 등을 보면 '공정성'에 대한 불만, 즉 코드의 문제였던 것이 확실하다.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공영방송을 위하여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독립성에 바탕을 둔 현대 삼권분립의 정치체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모습으로 인식된다. 이 체계에서는 코드에 맞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장 등 독립기관장을 행정부 수반이 해임할 수 없다. 공영방송 또한 입법부처럼 독립기관의 지위를 부여받을 때에만 국가씨스템을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이 가능한 사회기구이다.
하버마스는 서구 봉건사회 해체기에 신문이 시민사회와 국가를 연결하는 공공영역의 역할을 하면서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한 후 신문은 일반적으로 자본의 도구로서의 역할에 머물며 공공영역으로서 기능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럴 때 현대사회에서 공공영역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바로 공영방송이다. 자유주의시대에 출발한 신문과 달리 방송은 국가개입주의 시대에 태동하여 자본의 영역보다는 공동체의 영역에 자리매김되어왔으며, 이윤추구 동기에서 해방되고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어왔기 때문이다.
정연주 사장의 해임사태는 한국에서 어렵게 건설해온 공공영역의 가능성을 일거에 없애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권력이 쉽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 자체가 공공영역이며 공영방송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상업방송의 난립상황에서 공영방송이 방송의 표준 향상을 위해 기여하는 기능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
* '창비주간논평'에서는 이명박정부의 언론통제와 방송장악 시도를 계기로 촉발된 공영방송에 대한 논의를 앞으로 네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해외의 공영방송 운영실례와 시사점, 우리 언론현실에서 공영방송이 맡아온 역할과 지향점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공영방송이 공기(公器)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칼럼을 실을 예정입니다.('창비주간논평' 편집자) 덧붙이는 글 | 강형철님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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