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전액을 기부하는 홍수민 학생과 엄마아이의 교육은 이런 것이 아닐런지...
안호덕
승주(둘째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싶어하는 눈치다. 구석에 있는 노트북 장난감에 눈이 가 있다. 예전에 백화점에서 13만원쯤 하던 것, 작동이 잘 안 된다며 1000원만 달란다. 1000원을 주고 옆 이동 LG A/S센터로 가져갔다. 건전지에 녹이 나서 그렇다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면 쓸 수 있을 거라며 친절하게 일러주신다(장터에서 구입한 가전제품의 작동 여부를 무료로 확인해주신다고 한다.)
아, 횡재했다. 두 개의 장난감을 더 샀다. 광명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노인정에서 모아 왔다는 물건 중 자동차 장난감을 2000원, 톱니바퀴 장난감을 1000원에 샀다. 장난감 세 개를 사는 데 단돈 4000원이 들었다.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을용 등산 점퍼가 5000원이란다. 자전거 탈 때 입었으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크기가 110. 커도 너무 커서 포기했다.
내가 낸 물건값은 몽땅 기부 봉투로가로 세로 1.7m, 대여할 수 있는 자릿수가 669석이다. 오늘은 휴가철이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라 그런지 400여석 정도만 대여가 됐다. 어린이 이름으로 대여한 곳이 100여석 정도. 평상시에 비해 조금 여유있어 보인다.
자릿수만큼 물건도 가지가지, 사연도 가지가지다. "친구와 같이 왔다"며 낡은 참고서와 책을 늘여 놓은 아이, 손수 만든 머리핀을 가져온 사람, 낚시대를 팔고 있는 아저씨…. '천애원'이라는 사회복지법인에서도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옷가지를 파는 분들. 더러는 '땡처리' 하는 물건을 모아온 듯한 초청하지 않는 장사꾼들까지. 난장 마당에 복잡하면서도 흥겹게 넘실댄다.
꾸물거리던 날씨가 기어이 비를 뿌린다. 비를 피해 교각 밑으로 몰려들고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정리한다. 본부석이 술렁이고 자원활동가들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미처 다 팔지 못한 물품들을 기부함에 넣는 사람들. 판매 금액의 20%를 기부금으로 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좀 전에 1000원짜리 노트북을 팔았던 아이와 엄마가 동전과 지폐를 세고 있다. "얼마나 파셨느냐"는 물음에 5만5360원이란다. 기부 봉투에 넣는다. 전부 기부하실 거냐고 묻자 "좋은 일 하는데 전부 기부해야지요"라며 당연한 듯이 말하는 어머니.
기자 욕심에 사진 한 장 찍자고 제안했더니 수차례 거절하시더니 못내 쑥스러운 듯 자세를 취해 주신다. 용산에서 왔다는 초등학교 4학년 홍수민 학생과 그 어머니.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가르치고 만들려는 엄마와 아이의 돌아가는 뒷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이번이 네 번째 참가"라며 1500원을 기부하던 아이. 형제가 나란히 기부증을 받아들고 사진 찍던 아이들.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유산은 '나눔의 행복' '더불어 사는 지혜', 이런 것이 아닐까?
있을 건 다 있지만, 주전부리·장난감 총은 없네
▲나눔장터 기부금 이렇게 쓰여요2007년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자세히 볼 수 있다.
안호덕
거의 정리가 되어 갈 무렵 책임자인 박 간사와 만났다. 몇 번이나 앉으라는 제의를 거절했다. 나중에는 옷이 다 젖어 앉기가 힘들다며 어렵게 한다. 4년이 지난 이 행사, 대강의 규모와 행사 취지를 물어보고 마무리 지었다.
아름다운가게가 운영하고 서울시가 지원하는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는 2003년 11월 '지상최대의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2004년엔 매달 장을 개최했고, 2005년엔 격주 개최로 횟수를 좀 더 늘렸다. 2006년부터는 매주 토요일 장터를 열고 있다.
올해 운영진 측이 내건 목표는 '3000만원 기부금 조성'과 '100만점 10억원 가치의 재사용품 순환'이다.
박 간사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자원 활동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더불어 '땡처리' 하는 곳 아니니 장사하시는 분들은 오시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이것 때문에 운영규칙을 몇 번이나 바꾸었다고 한다. 음식물도 반입 금지다. 총기류는 장난감이라도 안 된단다.
10월 25일엔 올해 마지막 장터가 열린다. 큰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 때 다시 오겠노라는 인사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눔장터의 기본 정신은 나눔과 순환이다. 쓰고 버릴 물건을 다른 사람이 재사용함으로서 경제·환경·나눔에 대한 교육 효과를 높인다. 더 나아가 쌓인 기부금을 해외 빈곤 어린이 교육과 복지 지원을 위해 쓴다.
알고 가면 행복 2배! |
▲ 교통편 7호선 뚝섬 유원지역(한강 방면) 버스 2014번 종착역(경유지:성수동-한양대-왕십리역-상왕십리역-신당동-을지로-방산시장-종로-동대문운동장) 한강 유람선 타고 뚝섬역 선착장 자동차는 한강 뚝섬지구(한강 주차장 1일 주차 3000원(자가용 기준)
▲ 기부는 어떻게 물품을 기부하거나, 판매 금액의 20%(권유 사항)
▲ 장터 시간 12시부터 4시까지.
▲ 기타 전자제품은 반드시 이동 LG 서비스 센터에서 작동 여부를 확인할 것 판매 물품은 80점 이내. 장난감 총기류, 음식류, 위험한 물건 판매 금지
▲ 주변 볼 것 넓은 잔디밭. 야외 수영장. 오리 보트 선착장. 수상택시. 한강 유람선. 자연학습장. 자전거 대여하면 20분 정도만에 서울숲에 갈 수 있다.
▲ 신청 아름다운가게(http://www.flea100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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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뚝섬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기부의 날개짓을 생각한다.
그 작은 날개짓이 모여 먼 나라 인도의 문맹을 깨트리는 태풍이 되고(2007년 기부금 중 일부가 인도 학교를 짓는 데 지원되었다고 한다), 배고픈 걸식 아동의 도시락이 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의 절망을 걷어내는 태풍이 되기도 한다.
나비 효과라고 했던가? 나비의 날개짓이 먼 나라에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이론. 여기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에서 그 믿기지 않은 이론은 현실이다.
지루한 장마도 끝나간다. 가을맞이 대청소로 모아 두었던 읽지 않는 책. 입지 않는 옷. 장난감 챙겨들고 한 번쯤 나와볼 일이다.
아이들 손을 잡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하루쯤 흠뻑 빠져 보아도 좋을 일이다. 천원의 기부와 만원의 행복, 여기서 즐겨도 아깝지 않은 하루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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