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치를 당한 샘 호스(Sam Hose)의 사진
1899년 미국 남동부 조지아 주. 당시 21세의 샘 호스는 일용직 노동자로, 앨프리드 크랜포드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샘 호스는 어느 날 주인과 임금 문제로 다투게 되었고, 다음날에도 이어진 다툼은 결국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다. 앨프리드 크랜포드가 리볼버 총으로 위협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샘 호스는 도끼로 맞대응하는 과정에서 주인을 살해했다. 당황한 샘 호스는 달아났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샘 호스는 '흑인'이었다. 1899년 4월 12일, 샘 호스는 살인죄뿐만 아니라 성폭행 및 절도 등의 혐의로 고소되었다. 살인 후 크랜포드의 아내를 성폭행하고 절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지역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분노한 '백인' 군중들은 4월 23일에 체포되어 이송 중이던 샘 호스를 기차에서 끌어냈다. 전 시장과 판사가 나서서 군중들에게 샘 호스를 당국에 넘겨줄 것을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즐겁게 린치하면서 기념사진 찍는 백인들군중들은 샘 호스를 끌고 살해된 크랜포드의 집이 있는 곳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무슨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이 기차를 타고 각지에서 모여들었고 군중의 수는 2000명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드디어 '백인' 공동체의 의식이 시작되었다.
군중들은 살아있는 샘 호스의 몸에서 손가락과 귀·성기 등을 뜯어냈다. 이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샘 호스의 얼굴 가죽을 벗겨낸 군중들은 그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산 채로 불에 구웠다. '의식'을 거행한 이들은 샘 호스의 타들어간 신체를 뜯어내어 기념품으로 가져갔다. 어떤 상점에서는 샘 호스의 손가락을 기념품으로 판매하기까지 했다.
이후 양심적인 언론인들이 탐정 루이스 P. 레 빈을 고용해서 사건을 조사했다. 일주일에 걸쳐 사건을 조사한 탐정 레 빈은 샘 호스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결론 내렸다. 성폭행은 백인들이 '의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덧씌운 것이었다. 레 빈이 조사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얘기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철저하게 익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런 경악스러운 린치는 미국 남부에서 심심치 않게 행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린치가 일정한 절차와 의식을 갖춘 공동체 행사였다는 점이다.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백인 성인 남성뿐만 아니었다. 만 3~4세의 남녀 어린이들, 멋진 외출복을 입은 남녀 커플들, 결혼식에나 입을 법한 정장 차림의 남녀노소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의식'에 참여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숯덩이로 변한 흑인과 포즈를 취한 채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서 친지들에게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