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나온 노부부와 90세 할아버지
이승철
공원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산책객들은 많았습니다. 조금 서늘해진 날씨였지만 어느새 등에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조금 앞쪽에 7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저기 할아버지 한 분 앉아 있는 옆에 운동기구가 보이네, 저 곳에서 몸 좀 풀고 갈까?”
길가에 군데군데 세워 놓은 운동기구들은 산책객들에게는 아주 좋은 몸 풀기 장소입니다. 아내가 그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어머 깜짝이야! 풀올무에 걸려 넘어질 뻔한 아내“어머머! 깜짝이야!”
그런데 아내가 무엇에 걸린 듯 휘청 넘어지는 것을 내가 잽싸게 붙잡아 무사했습니다. 그런데 발밑을 보니 아내 발에 걸려 넘어질 뻔 했던 것이 풀 올무였습니다. 풀 올무, 이건 또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어렸을 적 악동시절에 길에 나있는 질긴 풀을 양쪽에서 끌어 모아 매듭을 지어 놓으면 누군가가 지나다가 걸려 넘어지게 만든 풀 올가미입니다.
“허허허. 용케 안 넘어졌네 그려.”
우리들이 풀 올무를 바라보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앉아서 쉬고 있던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나이 예측이 어려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이 올무를 만들어 놓으셨습니까?”
“아녀, 아녀, 조금 전에 어떤 노인이 손자랑 지나가다가 옛날 얘기 하면서 만들어 놓고 간 거야.”
노인이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매우 재미있어 하십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셨느냐고 물으니 올해 90세라고 합니다. 노인은 매우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옛날에 이런 올무 만들어 보신 적 있으시냐고 물으니 “그럼, 그럼, 많이 만들어 보았지, 마을 어른들 골탕도 많이 먹이고 허허허” 하고 웃으십니다. 거의 1세기를 사셨지만 옛날 개구쟁이 시절은 여전히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올무를 만드는 풀은 참 이상하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무성하게 자라는 풀입니다. 그래서 옛날 개구쟁이 들은 마을 앞동산 풀밭 가운데로 뚫린 오솔길에 이 풀을 양쪽에서 맞잡아 끌어내 묶어 놓고 멀찍이 숨어 희생양(?)을 기다렸지요.
그러다가 누군가 그 올무에 걸려 넘어지면 킬킬대며 좋아하곤 했었지요. 그러나 넘어져도 다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개 부드러운 흙길이었고 풀이 무성한 길이어서 흙길과 풀이 푹신한 매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그렇게 풀 올무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 하필이면 아버지가 술 한 잔 하시고 거나한 걸음으로 오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뛰어나가 말릴 수는 없었지요, 이건 악동들끼리의 불문율이었으니까요.
“참. 옛날이야기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노인이 옛날을 회상하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노인은 철도 기관사 출신이었습니다. 일제 때부터 철도 기관사를 하며 넘나든 북녘 땅에 대한 아련한 추억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