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 신상.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한국 사회에 '천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업입니다. 특정한 분야에 타고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그가 하는 일이 딱 어울릴 때,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천직이구나' 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 '천직'이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사회가 있습니다. 바로 힌두교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힌두교 최고의 신인 크리슈나는 그의 입으로 '브라민'을, 팔로 '크샤트리아'를, 몸통으로 '바이샤'를, 다리로 '수드라'를 창조했습니다. 크리슈나의 어느 한 부분에서도 나오지 못한 달리트들은 카스트의 질서 밖에 서있는(outcaste), 그래서 힌두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힌두 사회에서 신은 이 네 계급에게 각각 신성한 의무를 주었습니다. 브라민에겐 성직자와 지식인의 의무를, 크샤트리아는 병사, 바이샤는 상인이나 농민, 그리고 마지막 카스트인 수드라는 위의 세 카스트들을 위한 각종 노동의 의무를 주었습니다.
천직=신이 선사한 천형?모두 신성하고 조화롭다고 합니다. 신이 주었기 때문이지요. 사회 질서는 이 신성한 의무를 각자가 수행하고 자신의 의무를 넘어서지 않을 때 평화롭게 유지됩니다. 각자는 다른 계급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신의 규율을 어기는 것이며, '천직'을 거스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힌두교가 지배하는 인도 사회에서 '천직'은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세대 간 전승되어 온 이들의 일은 당연히 각자가 가장 잘하는 일처럼 보입니다.
이 '신성한 의무'는 두 형태를 띱니다. 하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업을 수행하는 것, 다른 하나는 다른 카스트들과 구별짓기 위한 집단적 의무. 후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달리트들에 대한 '불가촉성(untouchabili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카스트에 대한 차별, 특히 달리트들에 대한 차별은 신이 준 의무라는 이름 아래 상층 카스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2007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India untouched>에서 바라나시의 한 브라민 성자는 "모든 카스트는 주어진 의무를 수행해야 하며 다른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신의 규율에 위반되며, 사실 다른 이에게 주어진 의무를 잘하지도 못한다고 하지요. 브라민은 성자의 일을 잘 수행하도록 태어났으며 달리트인 차마르는 신발 수선 일을 잘 하도록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브라민은 힌두 성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고, 차마르는 신발을 수선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기회는 박탈되어 있고 어렸을 때부터 그 일에만 잘 훈련되어 왔으니 이는 천직이 아니라 숙련과 경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