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봐야 할 적산가옥

등록 2008.08.14 21:26수정 2008.08.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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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기도가 명성황후 생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 등 13명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고치자는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개정안에 참여한 의원 중에는 17대 국회에서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을 반대했고, 뉴라이트 등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세력들과 입을 맞추고 있어 심히 우려됩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로 이루어진 8.15 광복회도 광복절을 '건국기념일'로 바꾸고 이를 위해 예산을 지출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하는 등 각 시민사회단체와 의식 있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건국절 개정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건국절 개정을 반대하는 첫째 이유는 근거와 논리가 부족하고, 둘째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일부 세력에 동조하는 꼴이 되어 혼란과 갈등만 부추길 뿐 이 대통령의 선거 공약인 경제 살리기와 국민과 소통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광복이 지닌 역사적, 교육적 효과의 반감은 물론 해방 이후 남한과 북한이 따로 정부를 세우려고 하자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었던 김구 선생과 민족지도자들의 숭고한 통일 정신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왜놈 경찰의 잔학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하거나 총살당한 독립투사들과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다 숨져간 선열들을 기억한다면 광복을 건국으로 바꾸자는 주장은 못 할 것입니다. 

설령 건국절을 정한다 하더라도, 민족의 개국기념일인 개천절이 국경일로 정해져 있고, 헌법 역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어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13일을 기준으로 해야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것입니다.
 
한나라당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려는 세력들의 건국절 개정 주장은 조선의 국권을 찬탈했던 일본에 면죄부를 주자는 망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웃나라 조선의 국모를 시해하고 36년을 핍박한 죄과에 대해 진정한 반성은커녕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이지요.  

광복절을 외면하고 거액을 들여 건국 60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통한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짐승과도 같은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까지 군산에 남아 있는 가등정미소(加藤精米所) 흔적과 호남제분 관련 건물들을 올립니다. 


선조들의 피땀이 배어 있는 '가등정미소'

 일제 강점기 때(1930년대 초) 지어진 가등정미소 자리. 무성한 잡초 사이로 보이는 녹슨 철로는 구 군산역과 내항의 중간지점인데요. 문득 ‘이 철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쌀이 일본으로 반출됐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일제 강점기 때(1930년대 초) 지어진 가등정미소 자리. 무성한 잡초 사이로 보이는 녹슨 철로는 구 군산역과 내항의 중간지점인데요. 문득 ‘이 철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쌀이 일본으로 반출됐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조종안

황량하게 변해버린 가등정미소(加藤精米所) 자리는 기름진 농토와 노동력을 왜놈들에게 착취당하고 피죽으로 연명해야 했던 선조들의 땀과 피눈물이 배어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왜놈들은 드넓은 호남평야에서 거둬들인 쌀을 수탈해가려고 군산을 전진기지로 삼아 부두와 가까운 곳에 대형 정미소를 짓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가등정미소입니다. 정미소 준공과 함께 거대한 창고마다 기름진 쌀로 산을 이루자 군산을 방문한 일본 총독이 '고메노 군산(쌀의 군산)'을 연발했다고 하니 통탄할 일이지요.


일제는 신항만 도시 축조와 산업화라는 미명을 앞세워 총칼보다는 '자본'으로 군산을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인데요. 30년대 초에 지어진 가등정미소 직원은 대부분 왜놈들이고 노동자들은 조선인이었는데 조선인 노동자들은 도정을 하고 나오는 찌꺼기(싸라기) 조차도 얻어먹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1933년에 태어난 큰 누님을 품에 안고 군산에 처음 왔던 날, 가등정미소 공장을 짓느라고 떠들썩하더라는 어머니(1912년생)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당시에는 재미삼아 흘려들었는데요. 무슨 인연인지, 형님이 55년째 지켜온 골목 집이 정미소 쌀 창고를 끼고 있고, 우리집도 일제강점기 때 가등정미소 사택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가등정미소 정문과 경비실. 경비실 뒤편에 몇 겹의 붉은 벽돌로 쌓은 쌀 창고의 벽이 눈길을 끕니다.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지어진 창고 벽이 일제의 식량 수탈이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등정미소 정문과 경비실. 경비실 뒤편에 몇 겹의 붉은 벽돌로 쌓은 쌀 창고의 벽이 눈길을 끕니다.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지어진 창고 벽이 일제의 식량 수탈이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조종안

선조들의 애환이 서린 가등정미소는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술 원료인 주정을 만드는 회사(한국주정)로 바뀌었고, 60~70년대에는 '우풍화학'과 '한국플라스틱'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다 80년대부터는 최루탄 원료를 만드는 공장이 재미를 보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가동을 중지했고 지금은 건물이 모두 헐리고 정문과 경비실 그리고 창고 벽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고구마를 주정으로 만드는 재료로 썼던 60년대에는 고구마 찌는 냄새가 강냉이 죽과 수제비로 끼니를 연명했던 사람들의 코를 놀리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물러나라는 시위로 최루탄을 가장 많이 소비했던 80년대에 회사가 가장 잘 돌아갔었다고 하니 민족의 애환이 담긴 역사의 현장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입니다. 

금암동에 위치한 가등정미소는 째보선창으로 흘러드는 샛강을 끼고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출동'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일출동이라고 부르는 게 궁금해서 어머니에게 묻기도 했는데요. 일제 36년 치욕의 상처를 치료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왜놈들이 조장한 미두(현물 없이 쌀의 시세로 거래하는 투기)와 고리대금업으로 순식간에 전답을 잃고 몰락, 삶의 근거지를 잃었던 조선 백성들은, '조선경제발전'의 논리를 앞세운 수법이 하도 정교하여 일제에 의해 시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경제'를 내세워 언론을 장악하려는 현 정부가 오버랩 되는데요. 째보선창에서 쌀장사를 하는 어머니와 집에 놀러 오시는 동네 어른들이 '그래도 왜놈들은 근검절약했다'라고 평가해 이상하게 생각했는데요. 이는 잘못된 역사 교육의 영향 때문이란 생각입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는데요. 일인들에 대한 명칭입니다. 이준 열사와 안중근 전기를 읽으며 분개하면서도 명칭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일본', '일본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잡초 인생들이었던 동네 어른들은 '왜국', '왜놈'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분들도 배운 대로 사용했을 터, '조선 백성들에게 왜(倭)만 있었지 일본(日本)은 없었다'라는 어느 교수의 말이 떠오르면서 왜놈들의 조선인 교육 말살정책에도 민족정신만은 뚜렷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주정공장', '우풍화학'이 더 귀에 익은 가등정미소 정문은 저녁밥만 먹으면 동네 친구들이 모여 '편술래'(편을 갈라 하는 술래잡기)를 하던 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경비실 아저씨가 시끄럽다며 불을 꺼버리는 바람에 일찍 집에 들어오는 날도 있었는데요. 그래도 통사정을 하면 불을 밝혀줄 때도 있어 밤늦도록 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정미소 거리'의 중심지였던 '호남제분'

 가등정미소와 함께 군산항 부근에 자리하고 있던 정미소(호남제분).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건물들이 군산 경제의 침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등정미소와 함께 군산항 부근에 자리하고 있던 정미소(호남제분).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건물들이 군산 경제의 침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조종안

 호남 제분 공장과 창고 건물들. 70년이 넘은 건물이기도 하지만 보수하고 개축하는 과정에서도 일제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을씨년스럽게 느껴집니다.
호남 제분 공장과 창고 건물들. 70년이 넘은 건물이기도 하지만 보수하고 개축하는 과정에서도 일제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을씨년스럽게 느껴집니다.조종안

탈곡기와 석유 발동기를 이용한 소규모 정미소가 한 곳뿐이었던 군산에 왜놈들이 대형 정미소를 짓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와 30년대였습니다. 1920년대만 해도 만 석 이상을 생산하는 정미소가 14곳이었는데 1930년대에 들어와 5만 석 이상을 찧는 곳이 6곳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중일전쟁(1935년)을 앞두고 왜놈들은 5만 석 이상의 쌀을 생산하는 가등, 조일, 조선, 화강, 낙합, 육석 등 6곳의 정미소를 군산에 지었는데, 쌀을 곧바로 배에 실어 나를 수 있도록 철도변이나 항구 옆에 지었고, 호남제분 끝에 집중적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정미소 거리'로 불렸다고 합니다.

해방 후 제분 산업을 주도했던 호남제분 건물에는 제일사료. 한국제분, 제일 산업 등의 간판이 교대로 걸렸고, 1967년 목포 공장을 설립, 그곳에 치중하기 시작하면서 건물이 폐허로 전락하다시피 했습니다. 굳게 담긴 철문과 잡초들 위로 거미줄처럼 금이 간 건물 벽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1990년 한국제분(주)으로 상호를 변경한 호남제분은 70년대까지만 해도 한일은행(구 조선은행) 건물과 마주하고 있어 출퇴근 하던 노동자들이 말끔한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 차림으로 근무하는 은행 직원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필자도 몇 번 방문했던 '히로쓰 가옥'

 언론에 자주 보도되었던 ‘히로쓰 가옥’. 전형적인 일식 가옥으로 유명하지요.
언론에 자주 보도되었던 ‘히로쓰 가옥’. 전형적인 일식 가옥으로 유명하지요.조종안
호남제분은 유명한 적산가옥인 히로쓰 가옥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지금은 문화재로 등록된 히로쓰 가옥에 호남제분 이아무개 전무가 살고 있었거든요. 70년대 이 전무 사모님이 제가 운영하던 가게 거래처라서 몇 차례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히로쓰 가옥 안채 정원에는 자연석 돌 사이로 키 작은 관목 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기암괴석, 수많은 정원수 사이에 연못과 연못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중앙초등학교 후문에 있던 정원 분위기와 흡사했습니다. 이 밖에도 일본식 정원은 요정과 병원 건물 등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도 있었고, 왜놈들이 바둑판처럼 도시계획을 해서 집을 짓고 살았던 월명동 친구 집에 놀러 가서도 자주 봤는데요. 히로쓰 가옥의 다다미방에도 벽장과 이불장 기능을 하는 오시이레(붙박이장)라고 하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규모와 크기만 다를 뿐 일본식 집들은 형태가 거의 비슷합니다. 처마가 일자로 뻗은 것도 일본식 가옥의 특징이지요. 다다미방과 한국 전통 양식인 온돌방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군산에 거주하던 왜놈들이 우리나라의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온돌문화를 받아들여 집을 지을 때 참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히로쓰 가옥 얘기를 하다 보니, 영화배우처럼 곱고 화사한 얼굴의 이 전무 사모님에게 냉커피를 대접받던 20대 시절이 그리워지는군요. 

이 대통령은 귀를 활짝 열어야 합니다  

가관인 것은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왜곡해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주일 대사라는 사람은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라는 망언이나 하고, 아리랑 TV, 스카이 TV, 와이티엔 등의 사장을 측근으로 앉히고, 촛불집회를 생중계한 아프리카 TV 사장을 구속하고 공영방송인 KBS사장을 퇴임시키는 등의 일을 벌여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정권의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야 할 것입니다.
#이명박 #적산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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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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