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이 청구회 어린이에게 받았던 편지
돌베개
이야기는 지은이가 서울대학교 문학회의 초청을 받아 서오릉으로 봄나들이를 가던 중에 여섯 소년들과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 꼬마 여섯 명에게 호기심이 발동하여 먼저 말을 걸게 되는데, 처음 말문을 열기 위한 '마음속 준비' 과정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만일 '얘, 너 이름이 뭐냐?'라는 첫마디를 던진다면 그들로서는 우선 대답해 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불쾌감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뱅글뱅글 돌아가기만 할 뿐 결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대답을 필요로 하는 질문을, 그리고 어린이들이 가장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놀림의 느낌이 전혀 없는 질문을 궁리하여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서오릉 소풍길에 우연히 길동무가 된 만남이지만, 여섯 아이들과 첫 만남을 위해서 '공'을 들이는 지은이의 노력을 역력히 느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다가서자 경계하며 긴장하는 아이들 마음을 단박에 알아챈다. 그래서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는 아이들 예상을 뒤엎고 그들을 앞질러 버릴 때까지 말을 걸지 않음으로써 아이들 마음 속 긴장을 풀어내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른이 아이들 세계로 들어가는 길"반드시 대답을 구하는, 그리고 대답이 가능한" 첫 마디를 던지기 위하여 곰곰이 생각한 끝에, 불현듯 생각난 듯이 아이들을 향해 돌아서며 "이 길이 서오릉 가는 길이 틀림없지?"하고 첫 마디를 던진다. 아이들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그는 예상대로 아이들로부터 과분한(?) 답을 듣게 되었다.
"네. 일루 곧장 가면 서오릉이네요.""우리도 서오릉엘 가는 길이어요!"예상보다 훨씬 좋은 대답을 들은 후에는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하는 질문과 답이 수월하게 오고가며 아이들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어른들 중에는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런 어른들 중에 한 명이다.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대답해줄 필요를 느끼지 않을" 질문을 해대기 일쑤다. "너 이름이 뭐냐?" "너 나이가 몇 살이냐?" "너 어느 학교 다니니?"하는 이런 질문들이다.
이런 수준 낮은(?) 질문으로는 아이들에게 다가설 수도 없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아이들 세계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아니 꼭 아이들이 아니어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마음을 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건네는 첫 마디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지 꼭 한 번 돌아볼 일이다.
<청구회 추억>은 이렇게 서오릉 봄나들이 길에 인연을 맺은 여섯 소년과 지은이가 여러 해 동안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그날 헤어질 때 진달래꽃을 선물 받고 주소를 적어주고 사진을 찾아주마 약속했지만 이내 그들을 잊고 지내게 된다. 얼마 후 아이들에게서 편지를 받고는 무심한 장난질이 되었다는 자책감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다가오는 토요일에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이때부터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그 뒤에는 매월 첫 번째 일요일로 바꾸어 선생이 감옥에 갈 때까지 만남을 이어간다. 서울대 출신에 대학 교수와 중학교 진학도 힘든 문화동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이 매월 꼬박 꼬박 만나서 책도 함께 읽고, 저축도 하고, 골목 청소도 하는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된다.
누가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이 아이들에게 진정한 '선생'이 될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일화이다. 또한 어린 시절 '추억' 한 장면이 어떻게 아이들에게나 사형선고를 받은 지은이에게나 힘든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훗날, 지은이가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을 때,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이름을 딴 이 모임 이름 '청구회'는 국가변란과 혁명을 획책하는 조직으로 추궁 당하는 도저히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추억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 성장하는 생명체그리고 또 훗날 자신을 청구회 어린이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고등학교 시절에 본 '전장의 아이들'이라는 그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긴 감옥살이에서 돌아온 그림을 다시 보던 날, 서오릉 길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바로 그림 속 어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