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정아래부터 돌계단을 두어 높이 올라가야 했고,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손현희
심소정은 조선 세종 때 단성 현감을 지냈던 윤자선이 고향에 내려와 세운 팔작지붕으로 된 정자인데요. 이곳에서 산수를 즐기며 유림들을 가르치던 곳이랍니다. 앞에는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만들어 아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옛 선비들이 글공부를 하며 풍류를 즐기던 정자를 참 많이 봐왔는데, 가는 곳마다 둘레 자연과 참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지요.
이곳 심소정은 높이 우뚝 솟아있기 때문에 더욱 남달라 보였답니다. 정자 위에 서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발아래 황강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지낸다면, 저절로 시 한 수가 읊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또 하나 남달리 높이 솟아있는 걸 보며 그 옛날, 조선시대에는 높으신 양반 님네들의 권위가 이 정자에도 묻어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요. 아래부터 돌계단을 두어 높이 올라가야 했고,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양반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시중을 들던 머슴들을 어떤 마음으로 내려다보았을까? 이렇게 풍경 좋은 곳에서 이런 생각은 불경스런 생각일까?
"투닥투닥 싸우지 말고 잘 살아래이!"심소정 아래에 들어서니, 정자 아래 너른 마당에서 할머니 한 분이 청소를 하고 계셨어요. 이른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알록달록한 차림을 하고 온 우리를 보고 청소를 하다말고 대뜸 어디서 왔냐고 물어요. 구미에서 왔다는 얘길 듣고는 혀를 내두르더니, 한 마디 하시네요.
"둘이 신랑각시야?"
"네. 맞아요."
"하이고, 젊은 게 좋긴 좋구나! 여까지 자장구를 타고 다 오고. 그런데 뭐하는 사람들인데?"
"아, 네. 저희는 문화재나 시골 풍경 찾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글 쓰고 하는 데요."
"아하, 그렇구나. 둘이 관상을 보니 잘 살겠구나! 어디 보자. 손 좀 줘봐!"
"네? 손이요? ……."우물쭈물하는 나를 쓰윽 올려다보시더니, 장갑을 채 벗기도 전에 얼른 끌어당겨서 찬찬히 살펴보셨어요."공부 좀 더 해라!"
" 공부 좀 더 해서 교수가 되어야겠다. 교수 되면 앞길이 창창하다."
"네? 하하하, 교수요?"할머니 말투가 조금 거칠고, 얼굴 생김새도 좀 괴팍하게(?) 보였는데, 거침없이 관상을 본다 하고, 내 손을 끌어당겨 보더니 공부 좀 더 해서 교수가 되라 하시고…. 아무튼 여느 어르신들보다 조금 남달랐어요. 대답 대신 웃으면서 알았다는 듯이 대꾸를 하고는 돌아서 나오는데, 할머니가 또 뒤에서 한 마디 더 하셨어요.
"둘이 잘 살아래이! 투닥투닥 싸우지 말고 잘 살아래이! 알았재! 둘이 참 보기 좋다."거친 말투였지만, 속맘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 수 있었어요. 다니면서 이래저래 만나는 사람들은 참 정겹고 살가워서 기분이 매우 좋았답니다. 심소정 곁에 있는 숲에도 가봤는데, 홰나무, 백일홍, 향나무, 소나무…. 시원한 나무 숲 사이로 난 산책길도 퍽 멋스러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