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종주산행원추리 군락지를 지나며...
이명화
어제, 무룡산에서부터 마치 잘 돌아가던 필름이 끊긴 듯 모든 풍경이 안개로 지워져 100미터 앞도 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비 맞으며 걸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오전 8시, 어제 우리와 동행했던 두 남자는 새벽 일찍 출발했나보다. 대피소 2층에서 잠들었던 사람들도 다 가버리고 없다. 잘 개켜진 담요만이 그들이 있었던 흔적을 보여 주고 있다. 8시가 훨씬 넘은 시간인데도 안개에 갇혀 있는 산, 좀 맑아질 때를 기다리고 있다.
오전 9시 20분, 꾸물대다가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이제 출발이다. 모든 것이 안개에 싸여있다. 숲을 흔드는 안개를 머금은 바람만 불고, 적요감이 감돈다. 삿갓봉에서 잠시 휴식하며 우린 찬송을 부른다. '참 아름다워라~' 삿갓봉에서부터는 급경사 내리막길로 계속 이어진다. 삿갓봉,월성재를 잇는 갈림길 지나, 남덕유산 2.3킬로미터를 앞두고 육십령에서부터 올라오는 등산객을 만난다.
한적한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반갑다. 아직도 계속 되는 안개바다, 해는 날 듯 보이지 않고, 계속 가다가 이따금 마주 오는 등산객들과 맞닥뜨린다. 점점 사람들을 자주 본다. 11시 15분, 전망바위다. 햇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안개를 지우며 햇살 퍼지고 산, 산을 비춘다. 멀리 마을들까지 조망된다. 전망바위에서는 우리가 온 길 삿갓봉이 보이고 반대로 남덕유산이 조망된다. 날씨는 맑게 개였다가 다시 안개로 뒤덮였다가 한다. 전망바위 아래 월성재에 도착, 12시 5분이다.
남덕유산을 1.4킬로미터 앞두고 있다. 월성재에서부터는 오르막, 내리막 하던 길이 계속 경사 높은 오르막길만 거의 1시간동안 이어진다. 힘든 구간이다. 정각 1시, 공터가 나온다. 육십령과 서봉, 삿갓재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우리 반대방향으로 가던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다. 서로 인사하고, 그들은 먹다 남은 포도를 내민다. 산중에서 먹는 포도 맛, 온 몸에 힘이 돋는 듯하다. 먼저 일어서 그들은 가던 길을 간다.
'우리 방 뺐어요'라고 하며 일어서는 여자, 우린 한바탕 웃는다. 우리도 다시 출발, 방 빼고(?) 간다. 누군가 또 여기 잠시 머물며 힘들게 올라온 긴 오르막길의 가팔랐던 숨을 쉬어 가겠지, 남덕유산을 300미터 앞두고 출발이다. 그런데 급경사 오르막길이 또 이어진다. '정말, 힘들다, 힘들어!'하는 말이 몇 번이고 산행길로 절로 나온다. 겨우 오른 안부, 남덕유산은 바로 100미터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