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념회.최고령 투사들 "우리의 투쟁 역사가 담긴 책이 나왔디야."
강기희
출판기념회가 시작하려면 아직 4시간이나 남았지만 진폐환자들이 속속 사북종합복지관으로 모였다.
행사 진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의자를 나르는 일도 칠순이 넘은 환자들의 몫. 그들은 의자 하나를 옮기는데에도 숨이 차 자주 주저앉았다. 현장에서 기침을 쏟아내는 윤석환 할아버지를 만났다. 주민등록 나이로 69세라는 윤 할아버지의 실제 나이는 73세.
1961년에 시작한 윤 할아버지의 광부일은 1990년에야 끝났다. 30년 가까이 일한 대가는 진폐7급 판정. 그러나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요양환자가 되지 못하고 재가환자로 남았다. 급수13급이라도 합병증만 있으면 병원에 입원하여 월 200여만원씩 생계비를 지급받을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
"가족들 보기 미안해 죽겠어요. 빨리 합병증이 생겼으면 좋겠어요."이게 무슨 말인가. 합병증이 생기면 죽음의 순간이 더 빨리 다가오는 것 아니던가.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합병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합병증이 생겨야 생계비가 나오고 죽어도 유족보상금으로 2억 정도는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윤 할아버지가 진폐환자로서 받는 경제적 혜택은 하나도 없다. 집안을 꾸려가는 것은 할머니. 할머니가 김 매는 일을 하면서 벌어온 돈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진폐증이 있으면 취직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고 보니 번듯한 경비일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막일은 숨이 차서 할 수도 없다.
"이렇게 더운 날씨엔 더 힘들어요. 숨이 차서 걸어다니는 것은 엄두도 못내요. 잠도 자지 못하는 걸요."더운 날씨면 들숨이 어렵다는 진폐환자들. 온도가 맞아야 잠도 자고 하는데 요즘 날씨로는 하루를 견디는 일도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차라리 추운 겨울이 낫단다.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진폐증. 환자들은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 사망하기도 하고 정밀검사를 받는 중에도 사망하기도 한단다. 광부일을 한 지 3년이면 진폐증에 걸리기 시작하는 광부들. 그런 이유로 윤 할아버지와 함께 탄을 캐던 동기들은 다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