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 살아남으려고 굶고 있습니다
 쇼크사로 죽더라도 여길 떠날 수 없어요"

[인터뷰] 단식 57일째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

등록 2008.08.07 08:44수정 2008.08.0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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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옥상에서 5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의 모습.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옥상에서 5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의 모습.오마이뉴스 선대식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옥상에서 5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의 모습. ⓒ 오마이뉴스 선대식

 6일 찾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 설치된 단식 농성 천막 앞에는 '근조'라고 쓰인 관이 놓여있다.
6일 찾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 설치된 단식 농성 천막 앞에는 '근조'라고 쓰인 관이 놓여있다. 오마이뉴스 선대식
6일 찾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 설치된 단식 농성 천막 앞에는 '근조'라고 쓰인 관이 놓여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야만의 사회가 된 것 같아요."

 

6일 57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김소연(39)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담담하게 우리 사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말을 많이 못하겠다던 그였지만, 이 대목엔 힘이 들어갔다.

 

김 분회장은 "사람이 죽어도 며칠만 '반짝' 하잖아요, 옛날엔 사람이 분신하면 온 나라가 뒤집혀서 '해결하라'고 들끓었는데, 이제 한두 사람 죽어도 '누가 죽었나 보네' 라며 금세 잊잖아요"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미 소리에 묻힐 정도로 작았지만 말뜻은 또렷이 귀에 박혔다.

 

짧은 머리의 김 분회장은 애써 환한 표정을 지었지만 깡마른 몸은 단식의 고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원래 53㎏이었던 몸무게는 2달의 단식으로 12㎏가 빠졌다.

 

이날 오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안내실 옥상에 설치된 그의 단식농성 천막은 무척 뜨거웠다.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이 나와서 한쪽으로 치워놓은 터였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흘렀다. 천막 한편에 그의 생명줄인 생수가 가득했다.

 

천막 농성장 앞에는 '근조'라고 쓰인 검은색 관이 놓여있었다. 단식 50일째였던 지난달 30일 올린 것이다. 김 분회장은 "살기 위해 죽음을 결의한 거예요"라며 그 의미를 밝혔다. 이날 그와의 인터뷰가 갖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개 짖으면 귀신 소리로 들려요... 치료는 포기했죠"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옥상에서 5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이 인터뷰 도중 눈을 감고 있다.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옥상에서 5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이 인터뷰 도중 눈을 감고 있다. 오마이뉴스 선대식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옥상에서 5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이 인터뷰 도중 눈을 감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 김 분회장은 "오래 굶으니까 당연히 정상이 아니죠"라며 반문했다. "손과 다리가 저리고 심장압박 증상이 있어요, 일단 힘이 없으니 잘 걷지도 못하고 보통 누워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같이 단식을 하고 있는 조합원 유흥희(39)씨를 가리키면서 그는 "나는 괜찮은데, 윤 조합원은 혈당 45래요"라며 "의사가 '일반인이면 병원에 벌써 실려갔다, 쇼크가 올 수도 있다'고 할 정도죠"라고 전했다.

 

김 분회장과 윤씨를 제외하고는 함께 단식을 했던 조합원들은 이미 모두 병원에 실려간 터였다. 이들은 2~3일 쉬고 바로 다시 기륭전자 앞으로 나왔다. 

 

5일 이랜드노조, 코스콤 비정규지부, KTX 여승무원 등 장기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대부분 우울증·조울증·강박증 등에 시달리는 이들은 서울역 노숙인보다 정신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투쟁 1079일째인 이들의 상태는 뻔했다.

 

-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 같아요.

"치료는 포기했죠. 파업이 끝나지 않으면 치료를 받아도 개선이 안될 테니.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어요. '오늘은 어떻게 될까' 늘 긴장하고, 매일 구사대·용역과 싸워야 했죠. 어젠 잠을 자는데 개가 계속 짖더라고요. 그게 귀신 소리로 들렸어요. 그만큼 허해졌나 봐요.

 

저도 '울컥증' 있어요. 별것도 아닌데, 화를 내거나 울컥 눈물이 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또한 기억력이 나빠지고 있어요. 집회 끝내면 무슨 일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단식하니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분노가 커졌어요. 공장에 불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누가 굶으랬냐"고 하는 회사, "해결하겠다"던 한나라당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옥상에서 5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과 조합원 유흥희씨가 농성장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옥상에서 5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과 조합원 유흥희씨가 농성장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오마이뉴스 선대식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옥상에서 5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과 조합원 유흥희씨가 농성장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이날 회사 정문은 열려있었다. 이 곳을 통해 출퇴근하는 대표이사를 비롯한 직원들은 김 분회장의 단식을 외면하고 있다. 김 분회장은 "회사는 '배고프면 밥 먹어라, 누가 굶으라고 했느냐'고 말해요"라고 전했다. 회사 얘기에 그의 목소리에는 다시 힘이 들어갔다.

 

이어 "사장이 언론 등을 통해 '안타깝다'는 말을 했는데 믿지 않아요, 진짜 안타깝다면 해결해야죠"라며 "직원들은 인사도 안 해요, 그러면 해고당할 걸요? 또 우리와 얼굴 맞대고 일했던 사람들이 아니에요, 비정규직은 다 해고됐으니까"라고 밝혔다.

 

그는 회사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지난 6월 배영훈 기륭전자 대표이사는 기륭분회 조합원들과 '자회사 1년 고용 후 정규직화'에 합의했지만, 이후 '직원들이 반대한다'며 합의를 갑작스레 철회했기 때문이다.

 

회사에 대한 그의 감정은 한나라당과 노동부에도 똑같이 향한다.

 

지난달 10일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점거했을 때 홍준표 원내대표는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회사는 오히려 '신설회사 1년 고용 후 선별 정규직화'라는 후퇴된 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기륭분회 조합원들은 지난 1일 홍준표 원내대표에게 항의하기 위해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다시 점거하려 했지만 끌려나와야 했다. 김 분회장은 "한나라당 원내대표 말이라 믿었어요, 처음부터 '못 한다'고 했으면 몰라도…, 우리 욕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배신감을 느꼈죠"라고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99% 비정규직이에요"

 

 6일 오후에 찾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정문 앞 놓인 피켓이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의 단식이 57일째임을 알리고 있다.
6일 오후에 찾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정문 앞 놓인 피켓이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의 단식이 57일째임을 알리고 있다.오마이뉴스 선대식
6일 오후에 찾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정문 앞 놓인 피켓이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의 단식이 57일째임을 알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지난 5일 회사가 교섭을 제의해왔다. 그러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7일 다시 만난다. 이나마 대화가 재개된 것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등 야당 여성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컸다. 언론 역시 기륭분회 조합원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 야당·회사·언론도 관심을 보이고 있네요?

"그동안 언론이 약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취재는 잘 안했어요.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랄 수 있는 건데. 촛불 정국이 지나면서 조중동 빼고는 TV·라디오를 비롯한 나머지 언론에서 다뤄지고 있어요. 긍정적으로 보려고요."

 

- 그런데 2달 가까이 단식하지 않았다면 언론이 관심을 가졌을까요?

"언론이 진작 관심을 많이 가져서 초기에 문제가 해결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지속적으로 관심 갖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을 텐데…. 진보언론도 극한투쟁을 안 하면 기사로 안 다뤄주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투쟁 주체는 극한투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이렇게 단식하는 것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죠. 해결되지 않으면 제 발로 걸어내려가지 않을 거예요, 쇼크사든 뭐든.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 괜히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김 분회장은 이미 2006년에 30일간 단식을 했다. "그 때는 교섭 촉구를 위해 단식을 했어요, 30일이 됐을 때 나중에 깨지긴 했지만 '집중 교섭을 통해서 빠른 시일 내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합의서를 썼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도 30일이면 될 줄 알았는데 50일까지 올지 몰랐어요, 지금 소망은 단식 100일을 안 넘기고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이쯤 되면 회사는 거의 인간이길 포기한 것 같아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사람들 99% 비정규직이에요, 이 사람들은 해고를 당해도 이의 제기를 못해요, 우리도 '기륭처럼 되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하죠. 그런 분들을 위해서 이의제기 하면 성과가 있도록 하는 결과가 됐으면 좋겠어요."

2008.08.07 08:44ⓒ 2008 OhmyNews
#기륭전자 비정규직 #기륭전자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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