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1시 삼각지역 앞 횡단보도에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이덕만
6일 오후 1시에는 서울지하철4·6호선 삼각지역 10번 출구 앞에서 통일선봉대의 '부시 방한 규탄 집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집회 예정시각보다 45분여 일찍 찾은 현장. 삼각지역 출구마다 전경들이 100여명씩 대기 중이었고, 인도 위에도 정복을 입은 수십 명의 경찰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통일선봉대는 나타나지 않았고, 오후 1시가 되어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 순간 경찰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경찰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무슨 행사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주변 상황을 더 둘러보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갑자기 교통순경들이 나타나더니 도로 위를 통제했다. 별안간 정지신호를 받은 한 택시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차와 부딪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 때부터 신호등의 신호는 더 이상 바뀌지 않았다. 경찰은 호루라기를 불며 차량들을 이동시켰고, 폴리스 라인이 설치된 횡단보도는 시민들이 건널 수 없는 길이 되어버렸다.
"다 우리나라 위해서 하는 일, 기다려라"그렇게 15분이 흘렀다. 33℃가 넘는 폭염 속에 시민들은 힘들어 했다.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횡단보도 앞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게 다가가 "지금 왜 통제하는 거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이 돌아왔다. "부시 대통령이 탄 차량이 여기로 지나가기 때문"이란다. 시민들은 땡볕 아래 마냥 기다려야 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나갈 때까지.
어린 학생들도 있었고, 나이 든 할머니도 계셨다. 할머니가 "날씨도 너무 더운데 이제 그만 지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경찰은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우리나라를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시민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고 짜증을 냈다.
수십 명의 시민들은 15분을 기다리다 결국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가까스로 횡단보도 건너는 데 성공한 나는 기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그 곳은 집회 예정 장소가 아니라 부시 대통령이 지나가는 장소로 그 의미가 변해 있었다.
경찰은 나를 향해 차도에서 멀리 떨어져 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유를 묻자, 무작정 멀리 가란다. 할 수 없이 차도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서 부시 대통령의 차량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횡단보도 쪽을 살펴보니 여전히 폴리스라인은 유지되었고, 다음 차례 시민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발을 동동 구르며 마냥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