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꼭 중학교에 보내주마"

섬마을 할머니 고입 검정고시 보시던 날

등록 2008.08.04 17:47수정 2008.08.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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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입.고졸 검정고시 시험장 풍경

고입.고졸 검정고시 시험장 풍경 ⓒ 김치민

고입.고졸 검정고시 시험장 풍경 ⓒ 김치민

 

2008년 제2회 고입·고졸 검정고시가 8월 1일 순천이수중학교에서 시행됐다. 감독관으로 배정되어 아침 일찍 시험장에 도착했다. 교문 앞에는 검정고시 대비 학원에서 마련한 테이블들과 격려 겸 홍보 펼침막으로 제법 시험장 분위기가 난다. 짧은 치마에 액서사리로 장식한 10대부터 깊은 주름 가득한 70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세상 모든 이야기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듯한 풍경이다.

 

점심시간에 응시자 대기실을 찾았다. 돋보기를 걸치고 5교시에 치를 과목 책을 보시는 할머니는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다. 남색 상의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책에 빠진 모습이 여느 수험생과 매한가지다. 어깨를 툭 건드렸다.

 

“공부하시네요. 윤여사님!”

“아이고 선생님!”

 

반색하시며 큰 소리로 맞아주신다. 주변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 눈치를 살필 여유가 없어 보인다. 급하게 인사 나누고 감독관 대기실로 모셨다. 커피 한 잔 만들어 드렸다. 그간 지내신 이야기가 끝이 없다. 요즘 나타난 남해바다 적조 때문에 마을 사람들 걱정이 많다고 한다. 할머니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겐 이미 유명인사다. 함께 감독관으로 참여한 선생님들께 소개하니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할머니는 연신 싱글벙글하신다. 시간이 빨리도 갔다.

 

“할머니, 어서 가서 공부해야죠.”

“아이고 이번에는 선생님들이 어찌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주는지 맘 편하게 시험보네요.”

 

6교시에는 시험 감독을 쉬니 5교시 끝나고 현관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드리면서 할머니 등을 떠밀어 대기실에 가시도록 했다. 머리를 극적이며 수줍게 웃는 모양이 갓 시집온 새색시다.

 

a  선착장 앞에서 전복을 따고 계시는 할머니

선착장 앞에서 전복을 따고 계시는 할머니 ⓒ 김치민

선착장 앞에서 전복을 따고 계시는 할머니 ⓒ 김치민

a  화태도 선착장을 나서는 작은 어선

화태도 선착장을 나서는 작은 어선 ⓒ 김치민

화태도 선착장을 나서는 작은 어선 ⓒ 김치민

 

할머니는 바다 건너 돌산섬에서 시집와 지금껏 4남매를 낳아 기르며 화태도에서 사셨다. 넓지 않은 밭뙈기에 콩이며 깨, 푸성귀를 심고 일렁이는 바다에서 고기를 키웠다. 바깥출입이 잦은 할아버지는 집에 계시는 날 반, 나가있는 날 반이다. 나이 들어 노부부만 남은 지금도 할아버지는 어촌계 일을 맡아 바깥일이 바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마을 뒤 신작로를 산책하다보면 멀리 건너다보이는 돌산섬이 보인다. 까마득한 옛일이지만 지금도 귓가에 생생한 아버지의 말씀.

 

“내, 꼭 중학교에 보내주마.”

 

6남매의 맏딸인 할머니는 바다 일에 바쁜 부모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해야 했다. 동생들을 돌보느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결석이 잦았다. 칭얼대는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가기도 했지만 집안일이 바쁠 때면 학교에 갈 수 없었다.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픈 마음이 간절하지만 바쁜 집안 사정을 뒤로할 수 없는 일. 우선 집안일을 거들고 동생들을 보살피고 있으면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은 몇 해 동안 계속 되었다. 검은 교복 차림의 친구를 만나면 부럽고 시샘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하늘의 말씀으로 들리던 시절이니 맏딸로 태어나 죽도록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앙탈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빨리도 흘렀다. 이제 여유가 생겨 학교에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으신 ‘너 중학교에 보내주어야 하는데’하시는 말씀이 너무도 아프게 남았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결혼했다. 4남매를 낳아 길렀다. 남편과 아이들이 생활의 전부였다. 하는 일이야 시집오기 전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제는 할머니 당신의 살림을 꾸리는 생활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고 공부도 잘했다. 작은 섬마을 학교에서 중학교를 다녔지만 항상 남부럽지 않은 실력을 발휘했다. 자식들은 할머니를 의사 어머니, 사장님 어머니 소리를 듣게 해주었다.

 

중국에 진출해 IT기업을 운영하는 둘째 아들 녀석이 집에 컴퓨터를 들여놓은 것이 문제였다. 섬 그늘에서 조개 캐고, 해삼 건지던 할머니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놓고 간 것이다.

 

“어머니 이 걸 누르시면 우리를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이걸 누르면 우리가 보낸 편지를 볼 수 있답니다.”

 

아이들이 가고 컴퓨터를 켰다. 약속된 시간에 아들이 말한 대로 컴퓨터 화면에 있는 그림을 누르니 지적처럼 먼 타국 땅에 있는 아들과 손자, 며느리가 보인다. 말소리도 들리고 내가 말하면 그쪽에서도 알아듣는다. 무슨 신통한 기적인 듯했다. 몇 번 잘 보이던 녀석이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들이 일러준 그림을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다. 갑갑하고 도통 모를 일이었다.

 

지난해 여름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쳐준다고 방송을 했다. 혼자 가기 겁나서 친구 두 명을 설득해 함께 갔다. 다 늦게 컴퓨터 배워서 뭐할까마는 할머니는 그 신기한 기계를 공부해야할 이유가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메일 보는 것과 쓰는 것을 배우고 컴퓨터에 글 쓰는 것도 배웠다. 무엇보다 그렇게 다니고 싶었던 학교를 50년도 더 지나서 나간다는 사실이 좋았다. 젊고 예쁜 선생님이 살갑게 손잡아 가르쳐주니 ‘나도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하다. 고작 5일 동안이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스런 말씀을 풀어드리는 기분이었다.

 

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 점점 궁금한 것들이 넘쳐났다. 중학교 선생님을 붙잡고 아침저녁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게 하면 됩니다. 혼자 컴퓨터 앞에 앉으면 도통 말을 듣지 않던 컴퓨터가 선생님만 오면 잘 된다. 50여 년 전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 재잘거리며 걷는 것이 그렇게 좋았었다. 지금도 선생님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가득하지만 아직도 애타게 중학교 교복을 입고 싶었던 마음이 생생하다.

 

올 2월이 되면서 욕심이 생겼다. 평생의 한이었던 중학교 졸업장을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함께 공부하던 선생님은 마을 중학교에 입학하라고 권하지만 결석 대장이었던 초등학교 때가 생각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밭일 하고 영감님 챙겨 드리다 보면 결석이 잦을 것은 뻔한 일이다.

 

“컴퓨터를 할 줄 아니까, 컴퓨터로 공부하면 돼요.”

 

마침 중학교 선생인 제부가 바람을 넣었다. 성질 급한 제부는 벌써 딸에게 연락해 온라인 강좌 수강권을 만들어 오셨다. 두툼한 교재도 배달되었다. 하지 않겠다고 버틸 수도 없는 일이지만, 속마음은 벌써 중학교를 졸업 한 기분이다.

 

성경책 겨우 읽던 섬 할머니가 공부하기는 참으로 막막했다. 도덕이며 사회는 그런대로 읽어보겠는데 영어, 수학, 과학은 도통 알지 못할 기호로 가득하니 암담할 따름이다. 컴퓨터에서 강의하는 선생님 설명을 들어 보지만 그래도 아리송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자주 내리던 비도 안 오고 날씨가 좋기만 하다. 비라도 오면 집에 박혀 올곧이 책을 볼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두 달 동안 공부해서 4월에 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도덕과 사회는 합격했다. 이번 시험은 국어와 과학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다. 올 겨울동안에 수학과 영어를 준비해 내년에 최종 합격하겠다고 하신다.

 

a  시험을 마치고 제부 동생과 함께. 할머니는 한사코 학교 교훈이 있는 간판 아래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셨다. 가운데가 윤순자 할머니

시험을 마치고 제부 동생과 함께. 할머니는 한사코 학교 교훈이 있는 간판 아래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셨다. 가운데가 윤순자 할머니 ⓒ 김치민

시험을 마치고 제부 동생과 함께. 할머니는 한사코 학교 교훈이 있는 간판 아래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셨다. 가운데가 윤순자 할머니 ⓒ 김치민

 

시험이 끝났다. 시험지를 반납하고 약속한 현관에서 기다려도 도통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응시자 대기실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서성이고 계셨다.

 

“핸드폰은 어디 본부에서 찾는가요?”

 

가슴 조리며 돋보기 너머로 이어지는 문제들과 실랑이를 하다 보니 핸드폰을 반납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셨나 보다. 핸드폰을 찾아 현관으로 나왔다. 제부와 동생이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모셔다 드린다는 것을 한사코 사양해서 시험 끝나면 모시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나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할머니 조심해 가세요.”

“예, 고맙습니다.”

“아이고 좋아라!”

 

할머니는 운동장 계단을 내려가시면서 소녀처럼 웃으신다. 할머니는 올해 예순 여섯이다.

#고입검정고시 #화태도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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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면서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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