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그들에게 인생의 작은 전기였다

[서평]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등록 2008.07.31 10:18수정 2008.07.3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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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푸른숲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푸른숲

세상에 올바른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책을 통해 인생을 간접적으로 배웠고, 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생을 설계해 나갔다. 책이 없었던들 인생의 참된 희로애락을 맛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책은 그들에게 인생의 작은 전기와 같다.

 

자칭 책 행동학의 창시자이길 원하는 정혜윤이 엮은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바로 그처럼 이 땅에 큰 획을 긋고 있는 11명의 인생 독본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그들 모두는 책과 함께 인생의 시발역을 출발한 사람들이요, 책과 함께 인생의 중간역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머잖아 종착역도 책과 함께 할 사람들이다.

 

"이 책은 어떤 이의 인생을 책으로 엮어본 작은 전기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한 개인이 책과 만나는 지점에 관한 이야기가 주축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쓰다 보면 책에 대한 헌사가 움직이는 정신에 대한 헌사가 될 것이란 예감이 듭니다."(프롤로그)

 

진보논객으로 요즘 곧잘 등장하고 있는 진중권은 <미학 오디세이>로 오래 전부터 자신의 입지를 세운 인물이다. 그런 그가 글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딱지치기를 잘 하기 위해 딱지에 새겨진 글씨를 읽기 위함에서였단다. 그가 행한 최초의 독서는 어머니가 부잣집에 피아노 레슨을 다니면서 매일매일 한권의 책을 빌려다 준 데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진중권은 <꿈을 찍는 사진관>과 소년 잡지 <어깨동무>, <새소년>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와 <황금벌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그것들을 다락방에서 읽었다고 하니, 그 다락방은 훗날 베를린 유학시절에 맛본 '상상의 도서관'으로 날갯짓을 하기에 충분한 곳이지 않나 싶다.

 

"진중권이 독서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추천도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진중권이 책을 읽는 이유는 감동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30쪽)

 

이는 독일 유학시절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의 인용부분에서 얻은 깨달음이요, 그때부터 그는 그 어떤 세상의 독창성보다 자기만의 방식대로 재배치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진중권에게 '새로운 뷰포인트(viewpoint)'를 갖게 하는 핵심가치로, 새로운 전망을 여는 활주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시대 걸출한 인물들의 '책' 이야기

 

대학 졸업하고 나서도 취직이 안 되었을 때에 매일 남산 시립도서관에서 살았다던 신경숙은 <외딴방>으로 널려 알려진 작가다. 그 밖에도 <바이올렛> <리진> 등 유명한 작품들이 있지만 왠지 <외딴방>만큼 친숙한 이미지도 없을 듯하다. 힘들고 고달팠던 그녀의 전기적인 삶을 녹녹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숙은 중학교 시절 셋째 오빠 덕택으로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 정현종의 <고통의 축제>같은 시집들을 어깨너머로 난독했다고 한다. 열여섯 살 때 그녀는 시골을 떠나 구로공단의 오디오 생산 공장에서 하루 일당 700원을 받으며 외딴방에서 네 명과 함께 생활했다. 1979년에는 영등포 여고 산업체 특별여학생이 된다. 그 시절에 신경숙은 한 선생님이 건넨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소설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울 예전의 대학생이 된 뒤로 그녀의 20대를 좌우한 책들은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같은 책이었다고 한다. 그 책들은 그녀가 겪은 이전의 세계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꿈같은 세상으로 다가왔다.

 

"이청준의 책을 다 쌓아놓고 읽었고 서정인, 오정희, 박완서, 이런 작가들을 전작으로 읽기 시작한 거죠. 지금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권해요. 어떤 작가 책을 모두 다 읽어보길 권한다고요. 그럼 어떤 한 작가의 한 세계가 나의 핏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 거예요. 한 편씩 읽을 때랑 확실히 달라요."(214쪽)

 

이는 첫 등단작 <겨울우화>의 원고를 쓰기까지 그녀가 행했던 독서방법이다. 그런데 그녀의 방법은 어쩌면 숱한 인생의 단절을 뚫고 세상과 연결하기 위한 통로로 삼는 일 수 있고, 불안한 청춘 시절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해방구로 삼는 일이었을 수 있다. 그녀의 인생사 속에서 책이 얼마만큼 큰 창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까닭에서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공지영이나 임순례, 은희경과 문소리 그리고 박노자 등 우리 시대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걸출한 인물들의 인생과 그들만의 책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만큼 그들의 삶 속에서 책이 얼마만큼 크고 작은 인생의 전기로 작용했는지, 그 큰 울림과 떨림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08.07.31 10:18ⓒ 2008 OhmyNews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푸른숲, 2008


#책은 작은 전기 #진중권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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