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앞<우리서점> 들어가는 길목. 간판이 조그마해서 지나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최종규
(1) 술자리홍제동에 사는 선배가 저녁에 술 한잔 마시자고 합니다. ‘집에 들어오면 늘 마시지 않아요?’ 하고 물으니, ‘오늘은 밖에서 마시는 거예요’ 하면서, 전철역 숙대입구 둘레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나는 돈이 없는데’ 하니 ‘종규씨 돈 없는 거 내가 잘 알지. 아무렴, 없는 사람보고 돈 내라고 하겠어요. 그냥 와서 옆에 껴 앉아서 마시면 돼요’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저녁 나들이에 앞서 몇 가지 글을 부지런히 씁니다. 만날 시간을 한 시간 반쯤 앞두고 자전거를 몰고 나갑니다.
술자리가 있는 숙대입구역 둘레에 있는 헌책방으로 갑니다. 술은 술이고 책은 책. 술자리에 가게 되면 책은 못 읽을 터이니, 잠깐이나마 머리를 채워 놓으려 합니다.
호젓하게 책을 구경한 지 삼십 분쯤 지날 무렵, 선배한테 전화가 옵니다.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합니다. 아직 시간은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만나나. 책 보러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곧 가겠다고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고른 책을 셈하고 나옵니다. 모처럼 왔는데 너무 일찍 책방 문을 나서야 하니 아쉽습니다. 이곳 숙대입구역 둘레 헌책방〈우리서점〉에 자주 찾아오지 못하고 있어서 더 아쉽습니다.
바깥 술자리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임영인 신부, 이지상 가수, 백수연대 일을 맡은 분과 다른 여러 사람. 무슨 모임인가 궁금했으나, 딱히 다른 모임은 아니고 ‘그냥 술 마시는 자리’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동네에서 이름난 곳이라 하는 매운찌개집으로 갑니다.
저는 매운것을 거의 못 먹지만, 모든 분들이 매운찌개를 맛난 밥으로 여기고 있으니 말없이 따라갑니다. 우리가 들어간 매운찌개집은 발디딜 틈 없이 손님으로 들어차 있습니다. 가게는 작고 사람은 많고 시끄럽고 붐비고. 거기에다가 매운찌개는 아주 시뻘겋고, 딸려 온 반찬은 하나같이 매운 반찬뿐. 모인 사람이나 다른 자리 사람이나 땀 뻘뻘 흘리며 찌개를 먹지만, 저는 수저 한 번 대지 못한 채 술잔과 물잔만 비웁니다. 그렇다고 술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귀에 와닿지도 않습니다.
이 자리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꾸물꾸물 듭니다. 아무리 주머니가 후줄근하여 술 한잔 얻어마신다고 해도, 이런 술자리라면 얻어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헌책방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서 늦도록 책과 어울려 있은 다음, 구멍가게에서 맥주 한 병 사다 마실 때가 훨씬 낫습니다. 몸이 타고 마음이 타다가는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모인 사람들은 ‘남다른 맛’으로 매운찌개를 시켜 먹었으나, 그릇을 비우지 못하고 퍽 많이 남깁니다. 다른 자리 사람들이라고 해서 저 매운찌개를 깨끗이 비우지는 못합니다.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그릇을 싹싹 비우지 못할 밥을 왜 ‘남다른 맛’이라며 먹어야 하나 싶습니다. 모두들 너무 배부르게 먹어대며 혀만 즐겁게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괴롭고 힘들고 머리 아프고 속쓰린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