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할머니고양이 할머니라고 할 분은, 스무 해 남짓 길고양이한테 밥을 주고 있습니다.
최종규
(2) 아파트 집값고양이 할머님은 ‘야생동물보호협회’ 연락처를 알고 있지만 아직 전화를 걸어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도심지에 버려진 길고양이가 한두 마리가 아닐 텐데, 이 고양이를 거두어 갈 수도 없을 테고, 또 어떤 마음좋은 수의사라고 해도 길고양이마다 붙잡아서 불임수술을 시켜 줄 수 있겠느냐며, 그예 고양이 밥주기만 부지런히 하신답니다. 이야기를 듣는 저로서도 할머니한테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 깃든 길고양이 두 마리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이 길고양이는 좀처럼 우리 집을 떠날 생각을 안 합니다. 벌써 저희끼리 집을 나가서 꿋꿋하게 살아갈 법도 하건만.
밤마다 집 밖으로 다녀 보기도 했을 테지만, 아무래도 길고양이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팍팍하거나 힘겹다고 느껴서, 우리 집에서 주는 먹이를 냠냠짭짭하면서 남은 삶을 보내지 않으랴 싶습니다.
할머니는 ‘아직은 이 동네에 살고 있으니 고양이한테 밥 주고 살지만, 이 동네를 다 재개발해서 아파트로 새로 지으면 고양이는 어디 가서 사느냐’고 걱정입니다.
.. 어느새 한국의 아파트들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의 올림픽 정신처럼 급성장해 이제 15층은 고층아파트 축에 끼지도 못한다. 20년도 안 된 도시를 부수어 금세 새로운 아파트를 지어 올리고 이 아파트들은 곰팡이처럼 빠른 속도로 전국적으로 퍼져서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 (25∼26쪽)할머니가 들려주는 걱정을 듣다가 가슴이 움찔합니다. ‘고양이 걱정’? 그래, 고양이 걱정. 길고양이뿐 아니라 길개도.
장난감처럼 수십만 원씩 주고 샀다가 아무 미련 없이 내다 버려서 떠돌이 삶을 보내는 짐승들. 이 짐승들한테 우리가 무엇을 해 주고 있는가 가만히 돌아봅니다. 불쌍하다면서 없는 살림 털어서 밥을 주고 있는 분들이 몇몇 있지만, 이분들한테 ‘쓸데없는 짓해서 동네 더럽히지 말라’며 욕을 해대는 분들이 퍽 많습니다. 동사무소와 구청에서는 길고양이와 길개가 ‘쓰레기봉투 찢어 놓아서 못살겠다’면서 모조리 붙잡아서 안락사를 시킨다고 합니다.
골목 동네를 재개발한다고 할 때에는, ‘많지는 않아도 모자라지도 않게 꼭 알맞는 만큼’ 살림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대책 하나 세우지 않고 밀어붙입니다. 지금은 서른 평짜리 집에서 느긋하게 살지만, 아파트로 재개발 하면 열 평짜리 전세집에도 못 들어갈 만하게 바뀌어 버리는 골목사람들 앞날을 헤아리는 공무원이나 개발업자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길가에 자라는 꽃과 풀과 나무를 걱정하는 사람, 그리고 길에서 살아가는 개와 고양이와 비둘기들을 근심하는 사람이 나올 수 없을 테지요. 공무원과 개발업자한테 그런 따순 마음을 바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골목사람 스스로도 이렇게 가녀린 짐승과 푸나무한테 마음을 기울여 주기를 바랄 수 없었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