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우석훈
오마이뉴스 남소연
우석훈은 경제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한국인과 한국사회와 특성을 속도 문화에 대한 중독과 성과주의에 치우쳐 마비된 합리성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직선들의 대한민국> 첫 장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왜 경쟁을 할까"하는 문제제기를 한다. 자전거는 기본적으로 자동차에 비하여 '느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라는 것.
"자전거를 타는 한국인들에게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리 여전히 메갈로마니아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심지어 그들끼리도 잠재적 경쟁자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자전거는 모두 친구이고 반갑지만, 같은 방향으로 가는 자전거는 전부 경쟁자다. 특히 아줌마에게 추월당한 20대는 때로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토로하기도 한다."느림의 속도를 즐기고 건강해지려고 자전거를 타지만, 속도주의와 성과주의에 중독된 한국자본주의에 내재화된 문화가 자전거를 타면서도 속도와 성과, 경쟁을 숭배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고나면 얼마 안가서 원래 자전거에는 부착되어 있지 않은 '속도계'를 구입해서 최고 속도와 주행거리를 측정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뒤통수를 '쾅'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바로 딱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는 마산에서 임진각까지 자전거로 종주를 했고, 지난 겨울에는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일주를 했다. 평소에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날이 많고, 업무 때문에 가까운 곳을 갈 때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래도 아직 한 대 10만원도 안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마니아'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나 역시 임진각까지 자전거 종주를 앞두고 연습을 시작하면서 속도계를 구입했다. 하루에 몇 킬로미터를 달렸는지, 최고속도는 얼마였는지, 평균속도는 얼마였는지 이런 걸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속도와 성과와 경쟁을 숭배하는 일이 몸에 뱄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석훈은 타인에게 추월당하거나 정지하여 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성과주의는 자전거만이 아니라 수영장에서도 심지어 요가원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속도와 규모 그리고 등수에 대한 숭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또 우석훈은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한국인의 합리성은 성과주의에 마비되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비정규직 젊은이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비정규직이 비정규직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정단에 투표하는 일,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와 기업을 위한 정책을 내건 정당을 지지하는 일, 집이 없는 사람이 집값이 오르면 환호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모두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시멘트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설미학'결국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경제 이성보다 비합리적인 '종교적 믿음'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우석훈은 주장한다. 청계천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로가 뚫리고 최신형 건물들이 들어서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는 건설미학과 이어져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만의 주도적인 미학은 '건설미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래 있던 것을 깎아내고 그 위에 무엇인가 짓는 것, 시멘트 위에 색을 칠하고 인공 장식물을 덧댄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한국인과 한국정치인들의 미학적 특징은 시멘트만 보면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고 그것을 민족의 융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토론하고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이 되어 버렸다는 것. 우석훈에 따르면 시대정신과 같은 시대미학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건설미학'이라는 것이다. 타워팰리스가 한국에서 가장 좋은 집을 대표하는 것도, 도시마다 '랜드마크'를 건설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건설미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새만금이건, 대운하건, 남해안벨트건 모두 건설미학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 우석훈의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대운하 추진 역시 중앙관료정치와 지역 토호라는 두 구조가 만나서 꽃 피우는 건설미학이라는 것.
경제이성과 상식 차원에서는 이미 끝난 논쟁임에도 불구하고 경부운하 문제가 수면 위와 아래를 오르내리는 것 역시 바로 건설미학 때문이다. 제대로 된 조감도와 투기심리가 만나고 적정 시점에서 보상금만 풀리면 언제든지 국민여론을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대운하문제에 대하여 마음 놓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건설회사 사장 출신의 대통령과 관료들이 이러한 건설미학의 작동원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한국인들은 경제성장은 마치 건설과 개발로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믿게 됐으며 '막연한 기대감'과 '환상적인 조감도' 앞에서는 어떤 합리적인 비판도 수용되지 않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큰 것, 새 것, 인공적인 것을 사랑하는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