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우리 곁에저한테는 헌책방 사진이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사진감입니다. 자기가 늘 가까이 두면서 사랑하고 아끼는 곳을 언제나 고이 지켜보면서 담아낼 수 있을 때, 생활사진도 되고 기록사진도 되고 다큐사진도 되고 예술사진도 되며 기념사진도 되는구나 싶습니다.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에서. 책방 일꾼과 단골 손님이 제 사진기를 구경하던 모습.)
최종규
[48] 일곱 번째 사진잔치 : 일곱 번째 '헌책방 사진잔치'를 열어야겠다는 꿈을 품은 2006년 1월 13일 저녁. 이번 사진잔치에서는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사진만 뽑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여태껏 여섯 차례 사진잔치를 치르는 동안, 다른 이들이 좋아하거나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진으로 추려 왔다. 나로서는 그저 그렇다고 느끼거나 영 내키지 않는 사진이었지만, '그래, 헌책방이라면 이런 사진이지', 또는 '이 사진을 보니 헌책방이 생각나는군요' 하는 사진을 골라 왔다.
가만히 보면, 나 스스로만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내가 찍은 사진도 내 눈길과 눈높이에 따라 찍은 사진이 아니라, '남들이 좋게 보아줄 법한 사진'을 찍어 온 셈이 아닐까.
나 스스로 좋아서 찍은 사진도 틀림없이 있을 터이지만, 나 스스로 좋아서 찍은 사진을 나부터 믿지 못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바보스러운 허물을 하루아침에 벗어던질 수는 없겠지. 그러나 하루아침에 벗어던질 수 없다고, 이번에도 어영부영 넘어가면 앞으로는 이 모습대로 내 사진이 굳으며 썩어문드러지리라 본다.
[49] 필름 한 통에 겹쳐 찍기 : 여태껏 두 번, 한 필름에 사진을 겹쳐 찍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난번에 맡긴 필름도 겹쳐서 찍었는지 모른다. 부디 그렇게 겹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 찍은 필름을 꺼내고 새 필름을 꺼낼 때 너무 서두르면, 그만 어느 쪽이 다 찍은 필름이고 어느 쪽이 새로 꺼낸 녀석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때는 참 아찔하다. 필름 한 통을 버리느냐 어쩌냐 하는 갈림길에 선 셈인데, 차라리 새 필름 한 통 버리는 셈 치며 둘 다 맡겨야 낫다. 그러나 주머니 가난한 사진쟁이로서는 둘 가운데 하나도 버리기 싫어서 '틀림없이 이쪽이 다 찍은 필름이야. 내 느낌이 맞아' 하고 뻗대기 일쑤이고, 이러다가 필름 두 통을 모두 날려 버리고 만다.
애꿎은 필름을 버리는 일은 참말 아깝다. 그러나 아직 안 찍은 필름을 날릴 때가, 애써 찍은 사진 서른여섯 장을 안 날리는 일보다 훨씬 낫지 않겠어? 아니, 새 필름 한 통 누군가한테 선물한다고 생각하고, 애써 찍은 필름을 날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까닭이 없지 않겠어? 그 사진 서른여섯 장을 언제 어떻게 다시 찍을 수 있겠어? 다시 찾아가서 찍는다 해도 그때 그 느낌과 그 사람과 그 책시렁을 어떻게 살려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