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평화연대
- 티벳하우스코리아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먼저 소개를 부탁드릴까요?
"티베트는 현재 중국에 나라를 빼앗겨 대사관이 없지만,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정점으로 하여 주요 국가에도 대표부 사무소가 있습니다. 일본에 동북아 대표부가 있는데 대사님이 한국에 자주 오실 수 없는 형편이라 이쪽 일을 제가 돕고 있습니다. 이곳 일산 여래사에서 사무실과 숙소를 마련해주셔서 제가 여기 상주하면서 일을 보고 있는데요, 티벳하우스코리아는 달라이 라마 일본 사무소의 한국지부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티베트 사람 이름에는 유달리 '텐진'이라는 이름이 많은 것 같던데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텐진에서 '텐'은 불법 즉 부처님 가르침을 말하고, '진'은 '지니다, 잘 배워 지키다'는 뜻이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잘 지니다'라는 뜻입니다. 티베트에서 이름은 이런 식으로 대개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 많습니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도 텐진 갸쵸시거든요. 남카는 하늘이란 뜻이 있습니다."
- 어릴 때 출가 하셨다고 들었는데. "티베트에서는 출가하는 것을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아버지는 티베트 동부 캄 지방 분이시고 어머니는 라싸가 있는 우짱 지역 분이신데, 두 분 다 망명하셔서 결혼하셨어요. 부모님의 축복아래 저는 8세 때 출가를 할 수 있었습니다."
- 굉장히 어릴 때 출가를 하셨는데요. 티베트에서 7, 8세 아이들은 뭐하고 지냅니까? "티베트 문화는 불교영향이 너무 많습니다. 아이들은 대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데리고 절에 다니는데, 절에 가면 꼬라(경전을 담아 돌리는 통)를 돌리고 진언(범어 만트라를 외는 신앙행위)하는 등 일상적인 신앙활동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집니다. 부모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고 기도문 배우기도 하구요. 요즘 망명한 어린이들은 대부분 티베트 망명정부가 운영하는 티베트 어린이학교에 다닙니다. 망명 후 제일 먼저 지은 것이 어린이학교였거든요."
- 티베트 하면 추운 나라로 생각되는데 4계절이 다 있습니까?"춥지만 4계절은 다 있죠. 불교 경전 안에는 6계절이 있다고 하는데, 여름과 겨울을 둘로 나누어서 티베트에서도 6계절이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 티베트에는 출가한 스님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많은가요?"1959년 중국에 점령될 때 전체 6백만 인구 중에 60만명이 승려였습니다. 이런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9세기 티송데짼왕 때 '중국에 보낸 티베트 군대만 30만, 나중에 또 30만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뒤에는 출가자가 많아지면서 군인도 줄고 인구도 줄었다고 합니다. 캄 지방의 경우 5명의 자녀를 낳으면 4명이 출가하도록 했을 정도로 출가가 장려되었습니다."
- 출가한 스님들이 많으면 경제 생산이 어렵지 않은가요? 국가 경제에 해가 된다는 중국의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티베트 사람들은 출가를 축복이자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도 자식이 출가하기를 원합니다. 한 가족 안에 훌륭한 스님이 있으면 그것을 가장 큰 명예로 여기니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자식이 출가한 경우라고 생각하기에, 자식이 출가한 부모가 편하게 간다고 합니다. 선배 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스님이 서른다섯 살쯤에 승려생활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누가 예언하자, 어머니께서 당신이 스님 못하면 나는 살 가치가 없으므로 죽겠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경제활동 문제는 티베트와 한국의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티베트에서는 일반스님들도 경제활동을 했습니다. 농사를 짓고 장사도 했어요. 물론 절의 규모가 컸고 그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의 보시가 중요했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왕들도 티베트 사원에 매우 자주 큰 보시를 했습니다. 중국 왕들이 신심으로 보시한 것이지 강제로 한 것이 아니었듯 티베트인들의 시주도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승려들이 민중들을 착취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티베트나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5, 6년 전부터는 중국인 시주자가 제일 많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몽골을 비롯한 중국 왕들이 티베트불교의 가장 큰 시주자였듯 지금은 중국 신도들이 미국을 제치고 가장 많이 시주합니다.
중국 통치 이전의 티베트 불교가 매우 온전한 것이었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달라이 라마께서도 '기독교와 같은 현대종교처럼 병원·학교·고아원을 지어 시민들을 돕는 것을 불교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티베트도 시대에 맞게 변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다만, 과거를 일방적으로 나쁜 것이라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물어보겠습니다. 중국은 50년대 이전의 티베트 사회는 5%의 승려들이 폭압을 휘두르던 노예제 사회였다고 말합니다. "59년 티베트 인구 6백만 가운데 60만이 승려였습니다. 당시 인구비를 보면 일단 5%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되구요. 사원이 대토지를 소유하는 경우나 스님들과 함께 사원에 속해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관계가 중국이 말하는 폭력적인 노예제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분제도도 다른 봉건제 사회와 비교하면 훨씬 자유로웠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강제성 여부입니다. 불교 교리에 입각해서 사냥을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점에서는 억지로 못하게 하는 등 강제가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중국의 노예처럼 권력이나 사회체제가 통제한 사회는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중국 강점 이전의 티베트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지만 오히려 중국 지배 체제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