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이명박 식 대북정책'

현대아산 책임? 남북관계 긴장시킨 이 대통령이 먼저 책임져야

등록 2008.07.19 14:49수정 2008.07.1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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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금강산 피격 사건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기왕의 남북간 합의에 따라 예정되어 있던 각종 물자의 공급을 보류하고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논의마저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군 통신선 개선을 위한 각종 자재와 장비는 물론 인도적 사항인 금강산 면회소에 설치될 내부 장비와 비품 등의 지원이 보류된다.

 

정부는 이 밖에도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대북 옥수수 지원 등 대북 원조와 관련된 논의도 중단하기로 했다. 요컨대 정부는 북측이 진상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금강산 관광 장기 중단을 감수하더라도 북한에 대해 경제적인 압박을 차츰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우선 이런 방침은 그 실효성을 고려해 볼 때 남북한 어느 쪽에도 무익한 정책이 아닐까 한다. 물론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해서 그들이 진상 조사에 응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북한이 남한의 압박에 굴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은 더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진상조사 성사는커녕 남북관계를 더 험악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인 '비핵개방 3000'은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다. 냉정히 말해 북의 핵 문제는 남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사안이다. 게다가 남의 나라 국민소득을 얼마까지 올려주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내정간섭인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대로 북한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이다. 아니 좀 심하게 말하면 '체면'밖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나라인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이 다른 나라의 압박에 굴복한 적은 없다.

 

북한의 대동강에는 '프에블로'라는 이름의 미국 배가 전시되어 있다. 1968년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동해상을 정찰하다가 북한한테 나포 당한 배다. 당시 승무원 석방 교섭을 했던 미국 대통령 존슨은 "북한은 소련의 말도 듣지 않는 이상한 나라"라고 실토한 바 있다. 결국 북한은 사건 발생 11개월이 지나서 미국의 사과를 받고 난 후에야 82명의 승무원을 시체 1구와 함께 석방했다.

 

또한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 운운하며 별의별 수단을 써서 압박했을 때에도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응하는 것이 우리 인민의 기질"이라고 하면서 끝내 핵실험을 감행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영해를 침범해서 미사일 기지 가까이 접근한 러시아 화물선 디메치호를 나포· 억류하기도 했다.

 

북한은 자기들이 남한보다 도덕적인 면에서 우월하다고 자임하고 있다. 그들은 제국주의와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자기들만큼 버틴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남측이 경제 발전을 조금 이루었다고 자기들을 깔본다는 생각을 품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군을 우선시하는 선군정치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번 총격 사건은 군이 저지른 것이다.

 

이미 북한은 정부의 금강산 관광 중단 조치에 대하여 "우리에 대한 도전"이고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보기에 그들의 대응 방식은 터무니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고 안 하고는 별개의 문제다. 북한처럼 고립된 사회주의의 속성 자체가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통미봉남의 미명에 울린 총성, 우발일까 의도적일까

 

불행히도 관광을 갔던 무고한 여성이 북한 초병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배경이나 경위가 어떠했든 비극적인 남북 분단의 희생자가 다시 나온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오전, 취임 후 처음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금강산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 "진상 조사뿐 아니라 사후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하며, 현대아산의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종합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현대아산의 책임일까? 아니 대통령으로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번 사건이 공사판에서 벌어진 안전사고인 줄 아는가? 다시 대통령에게서 건설회사 사장의 면모를 보는 것 같아 민망하다. 사건 발생 후 이 대통령은 국민을 보호하고 영토를 지키는 것이 자기의 책무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일단 이 사건은 우리의 상식으로 보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관광 구역에서 가까운 거리이므로 총을 쏜 북한 초병도 그가 남측 관광객임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아무리 수하에 불응했다고 해서 가차 없이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인 것은 1차적으로 북한군의 책임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남북 분단이 빚은 또 하나의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분단 체제가 지속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될수록 이런 사건은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수하에 불응하는 자는 사살해도 된다.(아니 사살해야 한다)'는 것은 북한은 물론 남한의 보초규범에도 규정되어 있다. 사실 남북관계가 아주 험악했던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무서운 비극들이 지금보다 많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서준학이라는 남한 병사가 있었다. 그는 철책선 보초 근무를 하다가 폭우 속에서 암호를 대지 않으며 다가오는 물체를 향해 겁에 질린 나머지 총을 발사한다. 그가 죽인 사람은 뜻밖에도 자기 부대 연대장이었다. 그는 일단 헌병대에 가서 조사를 받지만 최종적으로 그에게는 포상이 주어진다. 보초 근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살인의 가책을 견디지 못한 그는 월북을 단행해 버린다.

 

물론 이 이야기는 팩트가 아니다. 이것은 1972년에 발표된 신상웅의 소설 <심야의 정담>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때는 이런 팩트들이 풍문으로만 나돌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해서 시대가 달라졌다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비극은 분단 체제가 지속되는 한 언제 어디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남측 관광객이 북한 경비 구역에 들어간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 그 때에는 북한이 경고하여 쫓거나 억류했다가 돌려보냈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총을 쏜 것일까? 물론 북한 초병 개인의 우발적 총격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 상부의 의도된 명령에 의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간 정세는 최근 10년 동안 가장 고조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것은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 때문이다. 긴장된 정세는 북한 군 당국자들을 예민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책임소재를 굳이 남측에서 가린다면 현대아산보다는 햇볕정책과 남북정상간 합의를 방기하여 남북관계를 긴장시킨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 전체를 동일체로 보는 시각 교정 필요

 

이번 사건에 대해 북한은 민간인이 총격· 사망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책임은 경비구역을 침범한 남측에 있다고 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물론 이것은 적반하장과 같은 처사이다. 하지만 이것이 북한 전체의 입장이라고 성급히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교묘하고 복잡한 데가 있는 나라이다.

 

예전 서해교전이 있었을 때에도 북한은 미국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이라며 사과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상부의 지시 없이 아래에서 일으킨 실수“라며 반대로 사과를 해왔다는 사실이 최근의 임동원 회고록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북한은 남한만큼 다양성을 지닌 나라는 아니지만 대남 문제에 대해서는 온건파와 강경파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헤아려야 한다. 남한에도 햇볕정책을 적극 찬성하는 진보세력과 극구 반대하는 극우수구세력이 있듯이 북한에도 남한의 햇볕정책을 수용하려는 온건세력과 완강히 반대하는 극좌수구세력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극좌수구세력은 남한의 민주화를 바라지 않는다. 왜냐 하면 남한의 민주정부는 남북화해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옛날 남한의 선거 때만 되면 번번이 발생하여 비민주세력을 이롭게 했던 이른바 북풍 사건은 북한의 강경파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요컨대 그들은 남북화해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한 극우수구세력과 잇속이 맞아 떨어진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번 사건도 북한의 강경파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보고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무작정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고 그 정당한 요구를 북한이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금강산에 이어 개성 관광도 재검토하고 기왕의 합의 사항인 대북 물자 지원마저도 보류한다면 이것은 북한 강경파의 음습한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 된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고달프더라도 유연하고 끈질기게 대처해야 한다. 남측 보수 강경파들의 의견대로 하다가는 문제 해결의 시기만을 무한정 늦추게 된다. 이른바 '철의 장막'이나 '죽의 장막'을 제거한 것은 강경 노선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단맛'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강경 조치는 지난 10년 동안 공들여 이룩한 햇볕정책의 노력을 거품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의 논의가 있다. 하지만 햇볕정책이 남북한의 긴장 완화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총격사건에는 차분한 대응이 우선 필요하다. 섣불리 대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지난 10년 간 이룬 햇볕정책의 결실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소모적이다.

 

또한 이번 대북 강경책은 요즘 국외에서 진척되고 있는 6자회담에도 어긋나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에 말려드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길게 보아 통일로 향하는 민족 역사의 시계를 억지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대단히 퇴행적인 우를 범하는 짓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대하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2008.07.19 14:49ⓒ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대하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대북정책 #금강산피격 #북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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