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아이들피부색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문종성
아직 비누칠도 남아있는 상태였다. 더욱이 난 지금 나체 상태에서 중요부위만 손으로 가린 채 남자와 대면해야 했다. 심히 당황했다. 그런데 남자는 인정사정 봐주질 않았다. 별안간 옆에 쌓아 둔 내 옷들을 거칠게 풀어헤치며 마치 덫에 걸린 쥐를 보는 것처럼 고약한 인상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빨리 옷 입고 나가라고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역겨운지 나는 한동안 아무런 행동이나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의 행동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럴수록 남자는 고래고래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나를 코너로 몰아넣었고, 아닌 밤중에 놀라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이 장면을 제대로 목격하기 시작했다.
"이것 봐! 아직 비누칠도 다 씻어내지 못했다구! 샤워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짓이야?"
"당장 꺼져! 네 일은 내가 알 바 아냐. 누가 네 맘대로 남의 집에 들어오래? 꼴보기 싫어, 어서 나가!"
"지금 나가면 되잖아! 어디서 큰 소리야? 나가면 될 거 아냐?"
설상가상... 폭발 일보 직전에 경찰까지!나조차도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남자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분을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더욱 기가 막힐 일이 벌어졌다. 어차피 옷을 집어야 하기에 한 손으로만 가릴 곳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 옷을 집는데 남자가 내 엉덩이를 툭툭 치는 것이었다. 서두르라는 의미다. 내 손이 최홍만 손이 아닌 이상 보일 건 다 보이는 치욕의 순간에서 이 행동은 감정의 날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손 안 떼, 이 자식아! 너 뭐야? 너 뭔데 남의 몸을 함부로 만지는 거야! 응?"
그런데 어설픈 스페인어에 흥분한 영어가 그의 귀에 들어갈 리 없었다. 그는 내 말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더 크게, 더 빠르게 날 몰아내기 위한 고함만 외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싸움의 하이라이트가 나왔다. 남자가 두 차례 더 내 히프와 옆구리를 툭툭툭툭 친 것이다. 이건 사디즘(sadism)도 아니고….
완전히 화약고에 포탄을 터트린 격이었다. 정말이지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들이 느낀다던 그 성적 수치심을 바로 지금 치욕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폭력도 성추행도 아닌 어중간한 터치였지만 도무지 혈관의 모든 피가 얼굴로 모여드는 심한 굴욕 앞에 자중할 수 있는 한계선은 이미 나노 단위로 폭발해 버렸다.
통제불능이었다.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논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남자의 행태에 격분해 정말 주먹이 나갈 뻔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바람의 파이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로 나라망신이 먼저 떠올랐다. 이 행동 하나에 여러 사람 불편하고 피곤해 질 것들이 내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부득부득 이를 갈고 참아냈다. 참아야 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만 내 몸에 붙은 이상 미친듯이 제거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눈에서 눈물이 나는 대신 주먹이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