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89] 식민지 언론의 선정성과 일본의 왕궁 훼손

김갑수 항일역사팩션 제2편 '중경에서 오는 편지'

등록 2008.07.18 10:58수정 2008.07.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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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동아일보 사직하다

김문수가 신문사를 그만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독살 미인 김정필 살인 사건이었다.

당년 스물이라는 꽃 같은 미인이 자기 남편을 독살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사건이 작일에 경성 복심법원으로 넘어왔는데, 그는 김정필(20)이라는 여자이다. 그는 금년 4월에 김호철(17)이라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는데 원래 품행이 단정치 못하여 시집오기 전에 자기의 먼 친척뻘 되는 그 동네 김옥선이와 수차례 정을 통한 바가 있다. 그는 항상 자기 남편 김호철이가 얼굴이 곱지 못하고 또 무식하다 하여 번민하던 중, 동네 청년들에게 ‘랏도링’이라는 무서운 쥐약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랏도링을 주먹밥과 엿에다 섞어 놓고 남편에게 정답게 말했다.

“그대의 위병과 임병을 고치려면 이 약을 먹으라. 이 약은 나의 오촌이 먹고 신효하게 나은 것이니 안심하고 먹어도 좋은 것이라.”

이렇게 하여 주먹밥을 먹였는데 남편이 구역을 하며 토하자 다시 엿을 먹여 사망케 하였다. (<시대일보> 1925)

신문마다 김정필에게 미인 칭호를 붙였다. 그리고 결혼 한 달 만에 남편을 죽였다는 것과, 결혼 전 친척과 통정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빼 놓지 않았으며, 상대역인 김옥선의 이름까지 밝혔다. 신문은 젊은 여인의 성적 번민을 허구화하고 있었고 조혼의 부작용인 것처럼 기사들을 써대고 있었다. 사진을 실을 때에도 가급적이면 요염하게 보이도록 화면을 만들었다. 신문마다 특집을 만들어 ‘독살 미인 김정필의 근황’, ‘조혼이 불러온 참극’ 등의 타이틀을 뽑았다.

김정필은 힘을 얻었는지 물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심에서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극약은 흔히 영약으로도 쓰인다고 해서 그랬던 것이며, 결혼 전 부정은 강제 추행을 당한 것이었다고 그녀는 둘러댔다. 그리고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만이 있었으면 이혼을 청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형이 확정된 후에도 신문들은 기사거리가 궁할 때마다 그녀를 써먹었다. 김정필을 ‘악독한 범인이 아니라 구 제도에 희생된 가련한 여인’으로 부각하고 있었다. 대관절 조선의 구 제도가 무엇이기에 그들은 번번이 그리고 태연히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김문수는 납득할 수 없었다. 게다가 경위야 어떻든 가정 사건만 발생하면 ‘신식 가정에 대한 동경과 거기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갈등과 비극’으로 몰아가는 방식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조선 것이면 무엇이든 부정하고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 환상적으로 보는 태도는 신문뿐 아니라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경치도 좋고 깨끗한 집에 피아노 놓고 바이올린 걸고 선형과 같이 살 것이다. 늘 사랑하면서 늘 즐겁게.”

이광수가 당대의 베스트셀러 <무정>에서 말하는 신식 가정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여인들은 이층 양옥과 피아노, 바이올린이 있어야 신식 가정인 줄 알아가고 있었다.

김정필의 형이 확정되자 난데없이 독자들의 투고가 빗발쳤다. 신문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살인 미인, 사형 미인이라는 말까지 쓰며, 그녀가 조선 인습의 희생양이라고 동정론을 폈다. 신문은 여자가 어떻게 생겼든 간에 젊은 여자면 미인이라고 포장하였고 단발이면 단발미인, 양장이면 양장미인이라고 칭호를 붙였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한국 기자들이 그런 글을 쓰고 기발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에 차 있다는 것입니다.”

조순호는 김문수의 말에 공감했다. 그녀는 김문수 이상으로 그런 신문과 기자에게 경멸감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왜냐 하면 그것은 조순호의 무자비한 일면으로서, 그녀가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남성상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이로부터 60년도 더 지난 대한민국에서는 비행기를 폭파했다는 한 여성이 검거되었다. 그녀가 범인인지를 확신할 만한 어떠한 물적 증거도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신문들은 그런 것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생머리를 늘어뜨린 그녀의 사진을 큼지막이 실었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의 얼굴을 화면 조작으로 희고 곱게 만들어 싣기도 했다.

또 그로부터 10년 후 대한민국 저널리즘은 새로운 미녀 강도를 만들어 냈다. 이미혜라는 22세 여성이 흉기로 금품을 갈취하다가 체포된 것이었다. 그녀는 상습범이었다. 그런데 신문마다 ‘얼짱 강도’ 또는 ‘강도 얼짱’이라는 용어로 특필했다.

그러자 텔레비전까지 덩달아 어느 엥커는, ‘베이지 색 상의에 살굿빛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범인은 한눈에 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런 보도가 나가자, 언론사 사이트에는 “얼굴을 보니 정말 착하게 생겼던데 나중에 출소하면 좋은 쪽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같은 동정론이 댓글로 올랐고, 어떤 연예 기획사에서는 “그녀의 연예계 진출을 돕고 싶다. 우리 기획사와 계약하는 조건으로 변호를 포함한 제반 사항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한국의 이런 특이한 현상은 이웃 나라 일본의 신문에까지 보도되었다.

"한국에서는 강도도 젊고 예쁜 여자로 만들어 그것에 스스로 눈이 머는 신드롬이 분명히 있다."

일본의 왕궁 훼손

김영세는 정화에게 답장을 썼다.

정화 동지에게,
당신의 편지 한 장은 암흑 같은 이 세상에 등대 하나를 세워 주었습니다. 이제 상해는 제 원망(願望)의 땅이 되었습니다. 용납하신다면, 저도 상해의 지사들처럼 감히 동지라는 칭호 로 당신을 불러 보겠습니다.

지금 이곳은 계몽주의자와 민족개조론자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서양을 좋아합니다. 교회와 학교에서는 유교와 우리 풍습을 폄하하고 있습니다. 불교와 유교를 지도 이념으로 하는 학교들은 2류, 3류로 전락하고 있고 기독교와 제국주의가 주관하는 학교들이 명문 교육 기관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자연 우리의 젊은이들은 한국을 잊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시대에 뒤진 미개인으로 취급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지식인일수록 더 심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총독부는 한국의 문화재를 저항 없이 파괴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에 있는 문화유산들은 유사 이래로 가장 큰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왕궁 문화가 없는 일본인들은 한국의 아름다운 대궐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창경궁은 조선조 5대 궁궐의 하나로 성종 때 창건된 대궐입니다. 이 궁궐 안에 동물원이 생겼고 일본의 벚꽃이 심어졌습니다. 벚꽃이 피면 이곳은 무질서한 행락 장소로 바뀝니다. 창경궁 바로 옆 대궐이 창덕궁인데 그곳에는 순종이 기거하고 있습니다.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 간 직후 창경궁 개조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옆 창경궁을 개조해 왕조의 위신을 실추시킬 수도 있다는 계산을 한 듯합니다.

그들은 수많은 행각과 전각을 헐었고 빈 자리에 식물원과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식 연못을 파서 그곳에 물고기를 넣고 연꽃을 심었습니다. 자경전 터에는 도서관을 세웠고, 시민당 부근에는 식물 표본실을 지었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60여 채의 전각과 성벽과 궁문들이 헐렸고 심지어는 기단 초석까지 파헤쳐져 옛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 왕궁을 개조하고 있고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조선 민족을 개조한다고 하고 있으니, 저는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예 파괴되어 없어진 왕궁도 있습니다. 일제는 경희궁의 정전을 비롯한 모든 전각을 뜯어내서 일본 신사를 짓고 총독부 관리 자제의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친일파 자제도 일부 다니고 있는 경성중학교가 그것입니다. 지금 경희궁 그 자리에는 흥화문이라는 문루 하나가 달랑 남아 있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매각되어 표박하다가 훗날 신라호텔의 정문이 된다. 그리고  경희궁의 정전이었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로 옮겨져 정각원으로 사용된다.) 이제 경희궁은 궁궐의 배치도조차 남아 있지 않으며 오로지 <궁궐지>의 기록에서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희궁터에는 나중 서울고등학교와 새문안교회가 들어선다.)

일제는 일찍이 숭례문(남대문)을 밀어내려 했다가 종로 육조 상인들의 철시 스트라이크와 의병들의 저항으로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대신 그들은 서쪽 성벽을 헐어 길을 내고, 몇 년 후 동쪽 성벽도 부쉈습니다. 원래 숭례문은 두 날개를 펼친 큰 새의 위용이었는데 이제는 꽁지 빠진 새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정황이 이런데도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본을 공격하기는커녕 내부 분열만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선각자라고 인정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동아, 조선 등 신문의  영향 때문입니다. 대부분 그들은 서양이나 일본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국주의에 도전한 인물들의 매혹적인 삶과 사랑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국주의에 도전한 인물들의 매혹적인 삶과 사랑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창경궁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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