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생이 교복 입고 집회 무대에서 성명서 읽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엄마 "떨지 않을지 괜히 분위기만 깨는 게 아닐지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잘 하더라고요.(딸을 보며 웃음)."
딸 "사실 떨리기도 했죠. 그런데 촛불집회 무대에 서서 사람들 많이 모인 것 보니까 뿌듯하고 감동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했어요."
- 성명서 낭독 제안을 받고 망설이지는 않았나.
딸 "가슴이 답답해서 도저히 안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 "그날 교육청에서 장학사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그래서 제가 사복을 들고 딸에게 갔어요. 근데, 얘가 교복을 안 벗겠대요. 딸의 뜻이 왜곡되고 이용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됐죠. 그렇다고 하고 싶다는 걸 막으면 딸 눈높이를 못 맞추는 엄마가 되고…. 정말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돌아보면 아무 문제 아닌데, 그 때는 처음이라 걱정됐죠."
- 촛불집회 참석해 보니까 어땠나.
엄마 "처음엔 그렇게 해서 무슨 힘을 발휘할까 했어요. 애들 장난으로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죠. 근데 계속 나와서 보니까, 그게 은근히 파워를 발휘하고 생명력 있더라고요. 처음엔 애들 노는 걸로 생각했는데…."
딸 "(갑자기 끼어들며) 정부에서 청소년들이 놀이문화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잖아요. 혼자 뉴스 본 뒤 화나고 답답했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보니까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처음엔 얘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딸 "지금도 심각해!"
엄마 "한 2주 동안은 얘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그 생각만 했어요. 가족이 다 모였을 때 남편이 '우리만 안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얘가 거의 발악을 하더라고요.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우리는 대통령을 뽑지도 않았는데 어른들이 하는 일이 도대체 뭐냐고'요. 그래서 타협을 했죠. 공부는 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걸로."
- 촛불이 2개월 넘게 길고 크게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나.
엄마 "아니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정부가 말을 들을 것 같았어요. 학생들은 정말 절실한데, 신문에서는 애들 장난으로 나오고…. 또 전교조가 배후니 좌익세력이니 하는 말 나오니까 학생들이 받을 상처가 걱정됐어요. 어른들이 빨리 뒷받침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딸 "좌익 이야기 나왔을 때, 화났다기보다는 실망했어요.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구나, 어떻게 머리가 그렇게 돌아갈까' 싶었어요. 옛날에 그랬다면서요.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늘 좌익세력이라 하고, 북한 끌어들이고. 정말 말도 안 돼! 옛날 일인 줄 알았는데."
-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정보전염병' 이야기를 했다.
딸 "계속 느끼는 것인데요, 정말 대통령에게 <사회> 교과서를 보내주고 싶어요. 인터넷 때문에 대의정치가 도전받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없어서 대의정치에 위기가 왔고, 그래서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를 조금씩 넣어야 한다"고 나와요. 근데 대통령은 그걸 완전히 거스르는 말을 하니까, 무슨 타임머신 타고 과거에서 온 것 같아요. (엄마를 보며) 진짜 이해가 안 돼. 뉴스 볼 때마다 화가 나."
엄마 "교과서 보내주면 아마 그럴 거야. 교과서가 좌편향 돼서 잘못된 거라고."
딸 "맞아. 좌편향돼 있다며 교과서를 바꾸려 할 거예요."
"검찰과 경찰, 대통령 눈치보는 건지... 알아서 충성하는 건지"
- 경찰은 여전히 강경하고, 검찰은 일부 누리꾼까지 출국금지 시켰다.
딸 "정말 비정상이에요. 교과서나 방송을 보며 '아, 옛날엔 경찰이 저렇게 무섭게 했구나' 했는데, 그게 되풀이되니까 비정상이죠. 과거에 국민들이 싸워 승리해서 거둬들인 것도 있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니까…."
엄마 "본인들도 유치한 짓이란 걸 뻔히 알 텐데 이해가 안 돼요. '잃어버린 10년'이 뭔가 했는데 정말 이를 갈았나 봐요. 치사하고 유치한 짓을 서슴없이 하는 그 힘이 뭔지."
딸 "정말 이상해. 정신이 이상한 거 아니야?"
엄마 "대통령 눈치 보는 건지, 알아서 충성하는 건지, 자기들끼리 다 짜고 하는 짓인지."
딸 "뭣 때문에 기라면 기는 거야? 자기들 생각은 없나? '이게 잘못됐으니 안 되겠다' 뭐 이런 게 없는 것 같아요.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 엄마와 딸이 함께 집회에 참석하는 건 과거에 없던 풍경이다.
엄마 "난 386세대지만 운동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때 TV만 보면 엄마하고 싸웠어요. 엄마가 '빨갱이는 다 내쫓아야 한다'고 했으니까. 난 데모를 안했지만,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게 싫었어요. 만약 그 때 지금의 촛불집회처럼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해요."
딸 "그 땐 안 먹혔을 거야."
엄마 "그랬을까? 사실 저도 내 딸이 그냥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촛불집회에 가지 말라고 말할 명분이 없는 거예요. 과거의 엄마와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지금 모녀 관계가 더 발전한 것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딸 "엄마랑 같이 가니까 좋았어요. 내 판단이 옳다는 확신이 생겼으니까."
- 촛불집회를 하면서 깨닫고 배운 게 있다면.
엄마 "우리가 동물을 많이 학대해 육식을 한다는 걸 알았어요. 인간이 너무 편리함을 추구하는 거 경계해야겠더라고요. 그리고 학생들이 목 터지게 외치는데도 '먹통' 같은 사람들이 하나도 듣지 않았잖아요? 이번에 당해보니까, 정말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더라고요."
딸 "자기 듣기 편안한 것만 골라 듣는 사람은 안 되려고요. 나랑 반대되는 견해도 들어봐야겠어요."
- 앞으로 촛불은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엄마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촛불을 놓을 수 없어요. 잘못됐다는 걸 알고 힘을 모으는 거니까, 내가 패배주의에 빠져서 촛불을 놓을 수 없죠."
딸 "꿋꿋하게 가야 해요.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포기하면 안 되죠. 옳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우리는 그냥 쭈~욱 가는 거예요.(웃음)"
엄마 "요즘 긴 싸움이란 게 뭔지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5년 동안 촛불 들 생각이에요."
딸 "그만 들 이유가 없으니까."
[인터뷰 그 후] 7월 12일 밤, 질긴 엄마와 딸
인터뷰를 마치고 엄마와 딸을 다시 만난 건, 밤 9시께 종로 조계사 앞 거리였다. 폭우 속에서 만난 이들은 노란 우비를 입고 촛불을 들고 있었다. "춥지 않냐"는 물음에 딸은 "우비 때문에 오히려 덥다"고 했다.
그리고 딸은 서울광장을 원천봉쇄한 경찰의 태도를 "유치하다"고 비판했다. 비바람 때문에 촛불이 꺼지자 딸은 메고 있던 작은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초와 종이컵이 가득했다. 엄마는 "집회용 가방"이라고 설명했다.
모녀는 다시 초에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이 질겨 보였다. "5년 동안 촛불 들 계획"이라는 말이 빈말 같지 않았다.
이날 모녀는 빗속에서 밤 12시가 다 되도록 동대문까지 행진을 했다. 신발이 젖어 딸의 발이 벗겨졌다. 엄마에게 고생 많았다고 문자를 보냈다. 1시간여가 지난 13일 새벽 1시 40분께 이런 답장이 도착했다.
"한 사람 덕분에 여러 사람 고생이네요. 언젠가 끝이 있겠죠. ^^"
2008.07.18 10:4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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