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안쓰기 캠페인을 하기 전에 나온 종이컵들. 하루에 50-60개 가량 썼다.
권박효원
7월 3일(목) 56개, 7월 4일(금) 54개.
'오마이뉴스 종이컵 안 쓰기'에 들어서기 전 오마이뉴스 직원들이 쓴 종이컵 숫자다. 사무실에 상주하는 인원이 60여 명 정도 되니, 한 사람이 한 개 정도 쓴 셈이다.
'종이컵 안 쓰기'에 들어서기 전 쓰레기통을 뒤져 종이컵의 상태를 확인했다. 녹차·커피·물의 흔적이 잔뜩 남아 있었다. 심지어 새 종이컵 뭉치도 나왔다. 단체 손님을 위해 종이컵을 꺼내서 쓴 뒤, 남은 것을 한꺼번에 쓰레기통에 밀어넣은 것 같았다. 음, 심각하군.
여러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종이컵을 안 쓰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다.
"우선 종이컵을 치워버리자. 그러면 안 쓰게 될 것이다.""대안이 있어야 한다. 각자 컵을 갖고 오게 하자.""컵을 사게 하면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 사서 주도록 하자.""집에 남는 컵들이 있을 것이다. 남는 컵 두고 새 컵을 사는 것은 또 다른 낭비다.""중요한 것은 관심을 끄는 것이다. 회사 로고가 박힌 컵을 마련해서 모두에게 돌리면 관심을 가질 것이다."이야기 도중 과거 종이컵 안 쓰기를 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나왔다.
"과거 종이컵을 없앤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회사엔 손님들이 많이 온다. 그럴 땐 어떻게 하지?" 서울환경연합에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그 곳은 사무실 문을 열 때부터 종이컵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 컵 쓰는 걸 당연하게 느끼고 있단다. 내가 하는 고민을 별로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역시 첫 버릇이 중요하다. 환경기업으로 알려진 모 회사는 입사할 때 사원들에게 머그컵을 선물한다고 한다.
서울환경연합은 많은 손님이 올 경우에 대비해선 플라스틱컵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플라스틱컵이 종이컵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집에 남는 컵이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다음 주 월요일 일제히 종이컵을 없애겠다고 공지를 했다. 대신 손님이 여러 명 올 때는 종이컵을 써도 된다는 조건을 달고, 한 쪽에 종이컵을 놔두었다. 얼마 뒤 한 직원이 찾아왔다.
"저는 집에 남는 컵이 없어요. 컵을 안 쓰거든요. 취지는 좋은데, 좋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대안이 있어야죠."음…. 결국 고민 끝에 생각한 게 공용컵. 모두 함께 쓸 수 있는 알루미늄컵을 사서 함께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직원들 대상으로 사무실에 개인 컵을 갖고 있는지 유무를 조사했다. 조사 전 주변 직원들의 반응은 "대부분 개인 컵 있을 걸"이었다.
결과는 예상 밖. 조사한 직원 중 컵이 있는 사람이 40명, 없는 사람이 21명이었다. 컵이 없는 비율이 35%에 이르렀다. 적지 않은 숫자였다. 종이컵이 있으니 개인 컵의 필요성을 못 느낀 직원도 있었고, 외근이 잦아 사무실에 개인 컵을 둘 필요성이 없는 직원도 있었다.
개인 컵 아홉 개를 사서 두 군데에 놔두었다.
50→9→13→7 ... 종이컵 사용 빠르게 줄다
▲과연 이 종이컵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을까?
김대홍
드디어 월요일. 종이컵 숫자를 센 결과 50개가 나왔다. 토·일요일 이틀 동안 나온 숫자였다. 이 때까진 종이컵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중요한 것은 화요일 숫자였다.
화요일 결과를 살펴보니 9개가 나왔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수요일엔 13개 조금 올라갔다.
사무실을 한 번씩 둘러보다가 책상 위에 놓인 종이컵을 보기도 했다. 개인컵이 없어서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개인컵이 있는데도 종이컵을 쓰는 경우가 있었다. "종이컵이 있네요"라고 슬쩍 말을 걸면 반응은 가지가지.
"아, 이거. 옛날 거야. 지금은 안 써.""나는 종이컵을 세 번은 쓰고 버려요.""컵이 없어서. 갖고 올 거야."그러던 어느 날 한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제보를 했다.
"조금 전 주방에 종이컵 뭉치가 나와 있었어요. 아마 인터넷 공지를 못 본 사람이 종이컵을 내온 것 같은데, 별도 공지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종이컵은 제가 치웠어요."인터넷 공지를 안 보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황급히 종이 공지문을 만들어 주방에 붙였다. 직원의 발빠른 대응 덕분에 종이컵이 많이 쓰일 뻔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목요일엔 7개로 크게 떨어졌다. 금요일엔 3개로 떨어져 가장 적은 숫자가 나왔다. 직원들이 지나가면서 농담조로 한 마디씩 툭툭 던졌다.
"설거지 하기 귀찮아서 물도 안 마시게 돼.""아유. 이제 커피도 못 마시겠다니까."이제 결산을 할 때가 됐다. 14일 월요일, 토·일요일 나온 종이컵 숫자를 세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0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요일별로 나온 종이컵. 사용량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김대홍
결과는 아주 좋았지만, 이 날 새로운 문제가 나왔다. 회의실에 공용컵 두 개가 쓴 상태 그대로 있었던 것.
과거에도 컵을 쓴 사람이 씻지 않고, 몇몇 여직원들이 처리하면서 결국 유야무야된 적이 있다. 습관처럼(?) 한 착한 여직원이 씻기 위해 컵을 집어 들었다. 놔두라고 했다. 공지를 하겠다고.
"공용컵 쓰고 놔두신 분…"으로 시작하는 공지글을 올렸다. 자수하여 광명찾을 필요까진 없지만, 씻어서 제 자리에만 돌려달라고 말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결국 또 다른 여직원이 컵을 씻었다. 1주일 만에 습관을 바꾸기란 힘든 일이었다.
우리가 종이컵을 쓰지 않아서 생기는 효과를 따져봤다. 한 달에 사무실에서 쓰는 종이컵 양은 1상자(1000개)에서 1상자 반. 약 1만2000원에서 1만8000원 정도 아낄 수 있다. 1년이면 14만4000원에서 21만6000원이 절약되는 셈이다. 음, 적은 숫자긴 하지만 옛말에 있다.
"땅 파봐라. 100원 하나 나오나."그보다 더 바람직한 건 지구 환경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는 점이다. 종이컵 1톤을 만들기 위해선 20년생 나무 20그루가 필요하다. 비닐코팅에다 화학처리까지 된 종이컵 하나가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는 20년이 걸린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대 팀장의 평가 |
"아주 놀라운 성과다."
'오마이뉴스 쓰레기 줄이기' 실험에 도움을 준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대 팀장에게 지난 1주일 간 종이컵 사용 결과를 알려주자 한 말이다.
홍 팀장은 결과가 성적을 말해준다면서 짧은 시간 내에 직원들이 적응했다고 평가했다. 서두르지 말고 지금처럼 진행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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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종이컵을 세척하면서 생기는 물 오염, 종이컵 생산과 이동 과정에서 쓰는 기름들을 생각하면 종이컵을 쓰지 않는 효과는 적지 않다.
물론 반론도 있다. 개인컵을 쓰면 씻을 때 세제와 물을 쓰게 되니 역시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가능한 세제를 쓰지 않아서 보완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음 주는 '나무젓가락 쓰지 않기'를 실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