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양초도 없어?

금강산에 왜 촛불을 켜지 않느냐고?

등록 2008.07.14 18:43수정 2008.07.1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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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격사건, 분단상황이 빚어낸 비극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이 처음 사건이 전해질 당시만 하더라도 피해자가 '왜 새벽 시간에 군사보호구역에 들어갔을까?' 같은 의문이 일었다. 하지만, 군사보호구역에 대한 허술한 표지관리 그리고 관광객들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한 현대아산 측의 직무유기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결국 피해자는 별 생각없이 여명의 해변을 따라 걷다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겪이 되고 말았으니 이 또한 분단상황이 빚어낸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억울하게 희생된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사건이 처음 전해질 당시 필자가 쓴 기사 <금강산과 개성공단에 정부는 없다>에 대해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반감이 큰 것 같다.

 

이들이 기사에 반감을 가지는 이유는 1.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북한 초병의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 2. 이번 사건의 원인이 금강산 관광의 수혜자인 북한의 길을 잘못 들여온 지난 정권의 대북 저자세 외교 때문, 3. 촛불 시위에서 경찰의 진압을 과잉이라고 비난해 온 진보세력이 왜 북한군의 총격에는 침묵하는가? 등으로 요약되었다.

 

철학없는 대북강경책의 위험성

 

필자가 앞의 글을 쓴 의도는 여행객이 경비병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도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비록 같은 유형은 아니더라도 이런 종류의 위험은 상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과 공식적인 대화 통로가 막혀 있는 우리 정부는 북한 지역에서 자국민 보호를 위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따라서 보수를 자칭하는 인사들의 3가지 주장은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일탈했지만 기왕에 논쟁이 시작됐으니 이에 대한 견해를 분명하게 밝혀두고자 한다.

 

1.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북한 초병의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

 

먼저 어떤 경우를 불문하고 무장한 군인이 비무장 민간인 그것도 관광을 즐기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을 상대로 총격을 가한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자 한다. 다만 체제 붕괴의 위협을 강하게 받아온 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이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책임은 총격을 가한 초병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의 분단 상황과 대립구도에 원천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즉, 남북의 대화과 단절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군 지휘부는 최전방(남한 주민과 수시로 접촉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초소에 대해 '엄정하게 근무할 것'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변길을 산책하다 불의의 수하를 당한 고인은 당황하여 수하에 불응하고 황급히 숙소로 달아났고, 이에 초병은 자위적 수단(자신이 근무태만으로 처벌 받지 않기 위해)으로 관광객을 사살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민간인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한 북한 초병의 야만성을 규탄하기만 할 일이 아니라, 남북이 대립구도를 해소하지 못하는 원천적으로 분단 상황을 해소시켜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위한 발전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 북한의 길을 잘못 들여온 지난 정권의 '대북 저자세외교 때문'이라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

 

햇볕 정책 이후 지속적으로 교류의 폭을 넓혀온 남북 관계가 지난 10년간 순탄한 길만을 걸어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북핵위기나 서해교전(연평해전, 이 전투에서 북한측이 훨씬 큰 피해를 입었다) 등 당장이라도 남북이 냉전시대로 회기할 만큼 심각한 악재들이 돌출했다. 하지만, 남과 북 어느쪽에서도 남북이 대립구도로 회기할 가능성을 전망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남북 관계에서 '화해와 포용'이라는 큰 틀을 잡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초창기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의 반복된 대북 강경 발언은 이런 남북간의 신뢰를 훼손시켰고, 대북 관계와 통일 문제에 있어서 우리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돌출 악재는 남북 관계에 대한 어떤 낙관적 전망도 불허하고 있다. 오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한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등의 경협 사업이 결실을 보기 전에 와해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근복적인 책임은 대북 포용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 없이 시도된 대북 강경책에 물어야 마땅할 것이다.

 

 3. 촛불 시위에서 경찰의 진압을 과잉이라고 비난해 온 진보세력이 왜 북한군의 총격에는 침묵하는가?

 

이 주장은 너무 감정적이며 단편적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필자는 북한군의 총격을 정상 참작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촛불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켜면 되는 것이니 "왜 촛불을 켜지 않는가?"란 주장만 하지 말고 당신들 스스로가 촛불을 밝히면 될 일이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시위가 한참일 때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조갑제씨는 경찰로 하여금 시위대를 상대로 "대퇴부에 조준사격을 가할 것"을 주장하여 파문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경찰이 자국민 시위대에게 총격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북한 초병이 새벽 시간에 군사보호구역에 침입한 '괴한(이 표현은 북한 초병의 입장에서 쓴 것이니 오해로 인한 시비가 없었으면 한다)'에게 발포한 사건과는 겪이 다르다.

 

북한 초병의 입장에서 본다면 박왕자씨는 침입자로 판단되어 총격을 가할 수도 있었겠지만, 경찰이 시위대를 상대로 과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위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특히 쇠고기 파문으로 비롯된 촛불 시위는 시위대 스스로가 폭력을 배제한 평화시위였으며,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자극하고 유도한 세력은 십중팔구 진압경찰이거나 수구 단체들이었다. 촛불시위는 주권을 침해당했다고 여기는 국민들이 주권회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북한초병의 총격에 "왜 촛불을 밝히지 않는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묻고 싶다. 당신들은 양초도 없는건가? 그게 아니라면 실천에 대한 아무런 의지도 없이 입방정만 떨고 있는건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7.14 18:43ⓒ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금강산피격 #촛불시위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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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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