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보이지 않는 도시인천 수봉공원 중턱에 올라 내려다본 시가지 모습입니다. 인천뿐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도, 시가지에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랄 만한 쉼터가 없습니다. 우리 삶터에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우리 모두 '돈'을 골라서 돈버는 길로만 걸었기 때문에, 풀과 나무가 마음껏 자랄 터전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동네 뒷산까지도 모두 뭉개어 아파트로 지어 버리면, 집값은 껑충 뛰어 좋다고 할 터이나, 우리 아이들한테 돈 말고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
최종규
(4) 죽음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우리들 사랑은 ‘우리 자신’도 아니요, ‘우리 삶터’도 아니요, ‘우리 삶’도 아닌 쪽으로 흐른다고 느낍니다. 자꾸만 ‘돈 사랑’으로 흐른다고 느낍니다.
.. 할아버지는, 앓지는 않았지만 그 몸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이미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마디마디가 아파도 그러한 아픔을 없애 줄 만한 쿠이(의사)는 없었다 …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워누포로 오는 여행은 내 마지막 여행이었다. 다시 여행을 하기에는 나는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어.” 여름의 심한 더위가 골짜기를 덮치기 전에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그다지 울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가 버린 뒤로는 아침마다 더욱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공기가 하루하루 무거워지는구나. 나는 이제 공기를 입까지 들어올릴 기운도 없는 것 같다. 용한 쿠이가 있어 가벼운 공기를 불어넣어 주면 좋겠다.” … 바구니에 차를 담아 들여온 어머니 얼굴에서 눈물 자국을 보고 할머니는 옛날처럼 그 머리에 손을 놓고 말했다. “우리 ‘조상들’ 때문에 우는 걸 그만두어라, 내 딸아. 내가 곁에 있어 주어야 하는 사람은 이제 너도 아니고 투시도 아니지. 나를 버리고 자기 혼자만 가 버린 할아범이야.” .. (160∼161쪽)돈은 있어야 할 테지요. 돈은 벌어야 할 테지요. 그런데 무엇을 하는 돈인가 생각해 보았습니까. 어디에 쓸 돈인가 헤아려 보았습니까.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쓸 돈인가 살펴보셨습니까.
자동차를 몰아야 할 돈입니까. 집을 사야 하는 돈입니까. 새 손전화를 사야 하는 돈입니까.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떠나야 하는 돈입니까. 사랑이한테 선물을 사 주어야 하는 돈입니까. 땅투기를 해야 하는 돈입니까. 멋스럽게 보일 옷을 살 돈입니까.
기름값이 끝없이 치솟는 데에도 자동차를 굳이 몰아야 한다면, 또 값이 수백만 원부터 수천만 수억까지 하는 자동차를 굳이 사야 한다면, 그러면서 보험값 내고 뭐 치르고 해야 한다면, 돈이 꽤 많이 들겠지요. 집을 사야 한다면, 그런데 이 집도 서울 강남에 있는 아파트여야 한다면, 넓이도 좀 되어야 한다면, 그야말로 십 억으로도 모자랄 테지요. 전화 걸고 문자 보내고 하는 쓰임새가 아니라 이 기능 저 기능 달린 수십만 원짜리 새 기계를 쓰고 싶어도 돈은 참 많이 듭니다. 멀리멀리 오래오래 나들이를 하고프니 돈이 퍽 들겠네요. 선물을 손수 안 만들고 백화점 같은 데에서 돈으로 사니까 돈을 많이 벌어야겠어요. 그리고 …….
.. 어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워누포의 할머니 할아버지군요.” … 큰아버지는 그 지팡이를 쓰는 자신을 ‘늙다리 네발짐승’이니 ‘오소리’니 하고 불렀다. “할머니가 곧잘 그랬는데, 내게도 공기가 무거워졌구나.” .. (173쪽)돈을 사랑하는 분들은, 언뜻 보기에 ‘사랑’ 같지만, 속을 보면 사랑이 아닌 ‘죽음’이라고 느껴집니다. 살려고 버는 돈이 아니라 죽으려고 버는 돈 같습니다. 즐겁게 살고자 찾는 일자리가 아니라, 자기 삶을 망가뜨리며 빨리빨리 늙어버리려는 일자리 같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삶을 아름답게 여미지 못할 뿐더러, 그 돈푼조각으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벌어도 벌어도 모자라고, 써도 써도 시원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쓸 만큼 벌면 되는데, ‘쓸 만큼’이 어느 만큼인지 헤아리고들 있는가요. 가질 만큼 벌면 되는데, ‘가질 만큼’이 어디까지인지 느끼고 있는가요.
더 많은 책을 읽어내야 하기 때문에 새로 나오는 책을 자꾸자꾸 읽어야 하겠어요? 아니지요. 읽으니 좋아서 자꾸 읽는 책이지요. 자꾸자꾸 벌어야 하는 돈은 무슨 뜻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벌어야 하는지요? 살려고, 즐겁게 살려고, 다 함께 살려고, 아름답게 살려고 버는 돈이 맞습니까.
.. “오늘은 강 건너에 가지 않느냐? 이제 곧 어둡겠구나.” 이시는 고개를 저었다. “가지 않겠어요. 가 봐야 찾지 못할 텐데요.” 어머니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이 세상에는 없는 거겠지, 와나시. 그렇지 않다면 벌써 찾아냈을 테니까.” 이시가 옆으로 다가가자 어머니는 두 팔로 아들을 감싸안았다. 어머니와 아들은 얼싸안고 울었다. 여러 달 동안, 참고 참아 온 쓸쓸함과 슬픔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허물어져, 그들은 목놓아 울었다. 눈물 속에서 어머니와 아들은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리하여 둘은 큰아버지에 대해, 투시에 대해, 또다시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다만 이름은 말하지 않고 ‘없어진 사람들’이라고만 했다 ..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