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오로 가는 길!
고두환
지금 시각은 오전 6시(결국 어제 필리피노는 한 시간이나 일찍 버스 시간을 알려준 셈이었다). 150㎞ 정도를 달려가는데 무려 7시간이나 걸린단다. 그렇다면 필경 길이 엄청 꼬불꼬불하다는 소리! 하지만 모든 것을 초탈한 우리는 주변의 자연 경관을 살펴보며 버스와 서서히 동화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을 오르락 내리락, 길이 꼬부랑 저부랑. 버스는 요동치며 힘차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번 필리핀 여행을 통해 확실히 느낀 것은 버스가 무지 튼튼하다는 것! 그나저나 장미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얼굴이 잿빛처럼 허옇다고 시뻘겋게 상기됐다. 안절부절 못하며 점퍼에 달린 모자를 썼다가 벗었다가를 반복한다.
"오빠, 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어.""그게 무슨 소리야?""화장실이 너무 급한데 도통 버스가 쉬질 않아!"큰 일이다. 양 옆으론 수풀밖에 펼쳐지지 않는 곳을 두 시간째 지나면서 버스가 도통 설 생각을 안하는데 장미의 표정은 꽤 심각한 것 같다. 옆에서 농담을 건네며 장미를 진정 시키려던 산소녀도 서서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었다.
"오빠, 빨리 검표원한테 화징실 좀 어딨냐고 물어봐줘!""내가? 그래 알았어."결국 난 망설이다가 만원버스에 그를 불렀다.
"I want go to the comfort room!"생각보다 크게 외친 내 절규에 버스 안은 온통 웃음바다였다. 앞자리에서 눈을 붙이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깬 큰 형님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우릴 바라봤다. 재미있는 건 그 다음부터!
모두들 화장실이 어딨냐고 물어본 내게 시선을 집중하는 게 아닌 장미를 쳐다보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의 상태를 보고 누가 급한질 대번에 알아챈 것이다. 20여 분 동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강의하고 토론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낸 장미, 드디어 선 휴게소에서 오랫동안 볼일을 보기에 이른다. 물론 그 20여 분 동안 필리피노들은 수풀을 손가락질 하며 빨리가서 일을 보라고 오라고 권유하고, 차를 멈춘 다음에 급하게 일을 해결하라고 농담반 진담반의 권유를 수도없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