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필리피노들의 말은 무시하면 안 됐다. 금세 몰려온 먹구름이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금방 그칠 거라며 연신 셔터를 눌러되던 우리들. 하지만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가면 바나우에 폭포를 볼 수 있다고 현지 가이드는 말했지만 우린 4시까지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결국 폭포를 볼 수 없었다.
원두막에서 같이 비를 피하던 백색 피부의 관광객은 우리에게 그 폭포를 왜 보러가지 않느냐며 자신이 찍어준 폭포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의 그에게 한마디 했다. 물론 한국말로.
눈앞에 펼쳐진 라이스 테라스의 절경. 어떻게 2천년전에 이것을 일궈서 가꿨는지, 이 산골에서 무슨 수로 조성했는지 알 턱도 없었지만, 살짝 어두워진 날씨 속에 묘하게 논을 비추는 햇살이 이 곳의 신비로움을 한 층 더했다. 거기에 집들은 앙상 나뭇가지나 철재로 절벽위에 붕 떠있는 형상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꼭 '내셔널 지오그라피'나 '도전 지구탐험대'에나 나올밥한 영상 속에 내가 서있으니 멍한 느낌만 들었다. 뭐랄까. 내 앞에 대형 스크린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고 할까.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그 가운데 서있는 모습을 장미가 사진으로 보내줬다. 문제는 내 모습이 너무 낮설었다는 것.
빗줄기가 약해지길 바랬으나, 그렇지 않았다.
오후 1시 30분. 우리는 장비를 가방과 천을 이용해 꽁꽁 감싸고 지프니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생각보다 한 없이 멀게 보이는 정상(지프니가 있는 곳),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고무적인 일과 절망적인 일은 동시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고무적인 일은 날아오르듯 산을 오르는 산소녀의 당찬 모습!
"난 비에 옷이 젖기 싫어서 빨리 올라가는 것 뿐이라구."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극구 부인했지만 쉼없이 솟아오는 무한 체력을 몸소 느끼고선 숨겨둔 재능을 발견했다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문제는 무거운 장비를 들고 내리막에서부터 무리했던 창성 형님과 장미의 체력이 급격하게 고갈됐다는 사실. 오죽하면 장미는.
"팀장님(큰형님), 훈 대리님(훈 형), 나 여기서 저 마을 끝까지 내려가서 차 타고 가면 안돼요? 아님 여기서 그냥 살까?"
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끊임 없이 내뱉었다. 거기에 쉴세 없는 위트와 재치로 팀의 활력을 불어넣었던 그녀가 "오빠, 나 인제 농담할 기운도 없어"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더군다나 비에 젖은 산길은 미끄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바나우에의 전경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필리핀은 비가 올 때 하늘의 구름 모습이 일품이라는데, 난 그것을 체험하고 말았다. 마치 무도사나 배추도사가 산에서 구름타고 내려올 듯한 그런 모습, 내 눈앞에 판타지가 펼쳐질 것 같은 그런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연신 '멋있다'는 말이 입을 겉돌았다.
결국, 고군분투 2시간여의 오르막 대장정은 산소녀가 1등으로 골인 했다. 훈 형은 앞장서다가 결국 산소녀에게 "니가 먼저가. 난 쉬었다 가야겠다"라며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비가 극도로 싫었던 산소녀는 손쌀같이 정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오늘 가장 고생한 것은 바로 큰 형님. 창성 형님과 장미를 독려하며 정상까지 끌어올렸고, 팀원들의 비위를 다 맞춰주시며 유쾌하게 산행을 이끌어주셨다. 만약 큰 형님이 안계셨다면 우리 팀중 여럿은 라이스 테라스에서 농사짓고 살 뻔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여행이 끝날 때쯤 큰 형님은 우리에게 한 마디 하셨다.
"운동좀 해라!"
여하튼 도착한 정상, 필리피노들은 재미있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겨우 이것 같다오고 기진맥진하는 우리가 안쓰럽단 표정이었다. 그리고 우린 올 때보다 많아진 손님(지프니 뒤와 지붕에 탄 무임승차 필리피노들이 제법 있었다)을 태운 지프니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고 있었다.
진흙탕이 된 길을 지프니는 용감하게 돌진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산에서 날라다니던 산소녀가 지프니에 타니 다시 죽을 듯한 상태가 됐다는 것, 오죽하면 눈도 못뜨고 한 시간여를 달려갔으랴.
오후 5시, 드디어 바나우에 라이스 테라스 출사를 마치고 호텔로 도착했다. 우리는 빠르게 씼고 오후 6시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씻으려고 옷을 벗고 신발을 벗으니 모래 투성이. 다행히 샌들이 불편할 것 같아서 아쿠아 슈즈를 준비해왔는데 대 성공이었다. 단지 새 신발이어서 뒷꿈치가 아팠다는 사실을 뺀다면.
다시 모인 우리들. 오늘의 첫 끼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현지 음식들이 내 눈앞에 쫙 펼쳐진다. 그동안 야채를 못먹은 우리들을 위해 큰 형님은 야채를 집중공략 해주셨다. 하지만 어제 wang mart에서 공수해온 컵라면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난 매운 라면에 고추장까지 풀어서 뚝딱하셨다. 하루 종일 허기진 배를 한 번에 보상받은 듯 한 행복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땡땡하게 배를 채우고, 사진을 처음으로 노트북에 백업받았다.
"에개. 겨우 200장이야. 난 엄청 많이 찍은 줄 알았는데"
산소녀와 장미의 푸념이 들려온다.
'나는 많이 찍었겠지!'라는 생각은 198이라는 숫자를 보고 여지없이 무너졌다. 메모리를 4GB 챙겨오면서 부족함을 걱정했는데, 반도 못채워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시장을 구경하고 싶다는 훈 형의 말(훈 형이 무엇을 하고 싶단 말을 이 때 처음 한 것 같다)에 우린 모두 바나우에 시내의 시장으로 갔다. 과일과 생선, 고기 등을 파는 시장에서 큰 형님은 망고와 바나나, 그리고 필리핀의 대표맥주 san migel을 구입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호텔 복도의 한 가운데를 점령하고 시식을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 중에 가끔 망고를 통째로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병원에 실려간다. 가운데 씨가 있는 부분은 독이 있어서 먹어서 안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실제로 내 주위에 몇 명 실려갔다!"
큰 형님이 안계신 여행을 상상하기 싫은 대목이었다. 현지 맥주는 달짝지근하면서 목넘김이 좋았다. 이후로 우리 여행의 밤에 항상 함께 하였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가려 했다. 장미와 창성 형님은 아까의 피곤함은 돌연 사라지고 라이스 테라스의 장관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산소녀는 자신의 활약상을 칭찬하면서도 지프니에서의 굴욕(?)을 동시에 지적하면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한국에선 안 그랬다구요!"를 연신 남발했다. 거기에 훈 형은 조용하고 묵묵히 있다가 나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넸다.
"집에 전화해야지. 자 이걸로 해."
5일동안 집에 전화 안할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엄마한테 말을 단단히 해뒀지만 통화음은 이미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안받으시네. '내일 다시 해야겠다 '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내일은 사가다로 이동하기 위해 오전 5시에 기상해 6시엔 이동해야 한다는 큰 형님의 말씀이 있었다. 다 못피운 이야기는 내일로 미루고 모두 방으로 향해야만 했다. 창성 형님과 산소녀, 장미는 발마사지를 신청하고 받고 있었다. 난 마사지가 영 껄끄러워 받지 않고 간단한 메모를 하며 여러 생각을 정리해봤다.
'이틀 남짓한 시간에 생면부지 사람들과 이렇게 친해질 수 있구나. 필리핀의 힘인지 이 사람들 앞에선 날 포장할 필요도, 날 내세울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하고 싶은 대로, 생각 나는 대로 해도 모두 웃고 떠들며 친해질 수 있었어. 그런데 필리핀 사람들이 그래. 지나가면 웃으며 목례하는 아저씨, 박하사탕 하나에 손내미는 아이와 덩컬거리는 지프니에서도 편한 모습으로 낮잠자는 청년까지. 남의 시선과 이목따윈 걷어치우고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이 미치니 필리핀, 이 곳이 너무 좋은 나라로 내 속에서 미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슬슬됐다. 혹시 아나, 나중에 여기 살러 온다고 할지.
무엇을 위해 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25년 살아오면서 잘 산다는 기준이 단 이틀만에 궤도를 바꾸고 있었다.
난 요 몇 년, 한국에서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대된다.
내일의 필리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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