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꿈스퀘어’와 ‘곳에 따’ 그리고 ‘오리지널’

“옳다, 라디오를 미국말로 ‘오리지널’이라고 허는구나!”

등록 2008.07.02 09:35수정 2008.07.0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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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 상암동에 있는 <오마이뉴스>에 가려면 지하철과 버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아보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한 기자님은 “지하철 수색역 2번 출구로 나오시면 길 건너에 버스 정류장이 있으니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누리꿈스퀘어비즈니스타워 18층’으로 오시면 됩니다”라며 친절하게 안내해주더군요.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누리꿈스퀘어비즈니스타워’라는 건물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발음이 자꾸 헷갈렸기 때문입니다. 통화를 끝내고 메모를 하려다 기억이 나지 않아 적지도 못했으니까요. 당사자야 고민 끝에 최고로 세련되게 지었겠지만, 제 입에서는 ‘누가 지었는지 이름도 빌어먹게 지었네’라는 푸념과 한숨만 나왔습니다. 

   

‘누리꿈’이야 으뜸이니 말할 것 없고, ‘비즈니스타워’도 발음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스퀘어’는 ‘숫케’, ‘수케어’로 되더라고요. 되뇔수록 발음은 ‘숫케’에 가까워졌습니다. ‘누리꿈’을 뒷받침해줄 좋은 낱말이 없어 골프용어를 붙였는지, 아파트 이름도 외국어나 외래어로 해야 분양이 잘 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기차 여행을 할 때마다 안타까운 게 있는데요. 'KTX'(Korea Train express) 열차 이름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KTX가 어떤 단어의 약자이며, 알파벳으로 적을 수 있는 사람이 국민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인지, 해방후 미군이 주둔한 후부터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와 전통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습성이 국민의 가슴 깊숙이 박혀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얘기입니다.

 

외래어 얘기를 하다 보니, 시장을 보러온 셋째 누님에게 듣고 가족 모두 배꼽 잡고 웃은 이야기 두 토막이 생각나 정리해서 올립니다.  

 

#첫 번째 이야기 ‘곳에 따’

 

30년도 넘게 지난 얘기인데요. 셋째 누님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고부간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TV를 보시던 시어머니가 조용히 부르기에 다가갔더니 “아가! ‘고세따’가 무슨 말이다냐?”라며 묻더랍니다.

 

‘고세따’를 처음 듣는 셋째 누님이 알아들을 턱이 없지요. 해서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TV에서 비가 온다고 헐 때마다 ‘고세따 고세따’ 허는디 통 알어 들을 수가 있어야지”라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랍니다.   

 

셋째 누님이 그때야 알아듣고 웃으며 “어머니! ‘고세따’는 비가 오기는 하지만 오는 곳도 있고 안 오는 곳도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려?” 하시면서 “써글놈들! 무슨 말을 그렇게 애렵게 헌다냐” 라고 하시더랍니다. 

 

#두 번째 이야기 ‘오리지널’

 

성격이 원만하고, 유머도 있어 며느리들과 흉허물없이 지내는 시어머니는 오지랖도 넓어 동네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집에서 두 집 건너면 상옥이네 집이었는데 건물이 2층이고 시원해서 여름이면 항상 놀러다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점심 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그곳으로 나와 잡담을 나누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기석이는 파월 백마부대 중대장이었고, 인철이는 석유의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 공사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건너 동네 누구 아들은 월남에서 돈을 벌어와 논을 샀다더라.’, ‘누구는 집도 사고 장가갈 준비도 했다더라’라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돌았습니다. 미제 커피가 맛있다며 입만 열면 미제타령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미국이 별천지처럼 느껴지던 시절, 외제열풍에 중동건설 붐까지 몰아쳐 ‘오리지널’, ‘커플’ 등 외래어가 유행했고 대학가에서도 팝송을 불러야 사람대접을 받았습니다. ‘오리지널’이나 ‘커플’은 그렇다 치고, 아침마다 다방에서 모닝커피를 마셔도 멋쟁이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시어머니는 ‘커피’나 ‘커플’ 같은 유행어에는 관심이 없고,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 눈치를 보면 ‘오리지널’이 좋은 물건을 말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뜻을 몰라 답답했으나 창피해서 누구에게 묻지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았습니다. 

 

거의 초가집 한 채 값과 맞먹는 TV는 말할 것도 없고 라디오조차 귀하던 시절, 하루는 인철이 어머니가 사우디에 가있는 아들이 일제 라디오를 사서 보내왔다며 자랑을 하자 옆에 있던 인철이 아내가 ‘오리지널’이라며 자랑스러운 듯 거들었습니다.

 

“옳다! 라디오를 미국말로 ‘오리지널’이라고 허는구나.”

 

며느리 앞에서 자랑스럽게 써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시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놀부란 놈이 ‘화초장’ 외우듯 “오리지널, 오리지널” 하면서 되뇌었습니다. 하지만, 놀부의 기억력밖에 안 되었던지 대문을 들어서며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방에 들어와서도 오자리날? 오나리잘? 오지리날? ‘오리지널’을 기억해내려고 몇 번을 되풀이했지만 시원한 발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늙은이가 그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하며 며느리 앞에서 자랑스럽게 써먹기로 했습니다.  

 

방에서 나와 마루에 걸터앉은 시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가려는 며느리를 불러 세웠습니다.

 

“야! 아가! 그 있쟈, 저 안방에 있는 ‘오지리날인가, 오나리잘인가 그것 좀 켜보그라.”

“방에 있는 오지리날을 켜라니요? 오지리날이 뭔데요?”

 

“핵교도 댕겼음서 ‘오지리날’도 몰로냐! 라디오 말여! 라디오. 인철이 엄니는 사우딘가 사라비안가 가있는 아들이 보내줬다고 자랑을 늘어놓트라.”

 

“하하. 어머니 ‘오지리날’이 아니라, ‘오리지널’이라고 해요. 그리고 라디오는 그냥 라디오라고 합니다. 트랜지스터라고도 하죠. 오리지널은 ‘진짜’, ‘진품’을 말하는 것이고요.”

 

며느리의 자세한 설명에 자존심이 상한 시어머니는 땡감 씹은 표정을 지으며, “그려? 오리지날이든 오지리날이든, 알어 들으믄 됐쟈. 하이간, 알었따”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어머니는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조금 전 ‘오리지널’이라며 거들은 인철이 각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몇 번을 곱씹으며 생각해보니 인철이 각시만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푼수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딸 같은 며느리에게 자랑해서 뭐하겠다고 그렇게 힘들게 외우려 했는지···.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해진 시어머니는 부엌에서 보리를 씻는 며느리를 불러 말을 했습니다. 

 

“아가! 그 오지리날인지 오나리잘인지 있잖냐. 니가 있응게 인자부터는 그런 애려운 말은 안 욀란다.”

2008.07.02 09:35ⓒ 2008 OhmyNews
#누리꿈스퀘어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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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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