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천고혼 위령탑.탄금대전투에서 전사한 신립장군과 수많은 조선군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만든 탑이다.
송영대
탄금대는 지금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다. 충주시민들은 물론이거니와 관광객들도 산책을 하면서 둘러 볼 수 있도록 꾸며진 것이 특징이다.
탄금대는 몇몇 산성처럼 애국심을 강조하고 있다. 경남 진주의 진주성이랄지, 충남 부여의 부소산성처럼 성 곳곳에 애국심을 자아낼 만한 요소들을 만들어 놓았다. 대표적으로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이 그것이다.
탄금대의 충혼탑은 1955년에 세워진 것으로서 광복 이후 전몰한 충주와 중원지역의 장병들, 그리고 경찰관 군속 군노무자인 2838위의 넋을 추모하고자 건립되었다. 2004년 5월 충주시에선 호국영령의 위패 안치실을 건립하였고 그 위에 이 탑을 옮겨놓았다고 한다.
충혼탑을 지나 계속 걸어 나가다 보면 팔천고혼위령탑이 세워져있다. 이는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장군과 그와 함께 싸웠던 8천명의 군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탑이다. 이 탑의 위에는 혼불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모습으로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랫부분에는 신립장군과 4인의 군상을 조각해 놓아 죽음으로서 국토를 지키는 불굴의 충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바위와 바닥 부분의 원반모양은 탄금대를 싸고 도는 남한강과 달천의 물결모양을 살려 구성한 것이며, 탑 뒷부분의 부조는 당시 탄금대전투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이 외에도 ‘탄금대기’가 적혀있는 비석도 있다. 그리고 돌과 콘크리트로 정자를 하나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올라가서 남한강을 조망할 수 있게 해놓았다. 단양 온달산성도 이렇게 석제 정자가 있긴 하지만, 목제 정자만큼의 운치는 나지 않고 또한 인공적인 느낌이 풍긴다는 점에서 썩 좋지는 않다.
정자는 탄금대의 절벽과 맞닿아있다. 당시 일본군에게 밀렸던 조선군은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파란 강물이 보이고 험한 절벽이 보이는 곳. 이곳에서 뚫리면 죽음 밖에 없다는 것을 신립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사지(死地)에 간 것이다. 사지에서 단순히 죽음만을 기다린 것이 아닌, 왜군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길 것이라고 다짐하였기에.
신립의 패전, 그 원인은 프라이드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