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술과 기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고은 시인.
한국문학평화포럼
먼저 문제 하나. 아래 열거하는 다방과 술집들의 공통점은 뭘까?
아리스다방, 은성, 사슴, 낭만, 평화만들기, 시인학교, 탑골, 이화, 귀천, 예술가, 가락지, 은경이네….
맞다. 몇몇의 사람들은 이미 정답을 마음 속으로 말했겠지만 위에 언급된 것들은 모두 이른바 '문인들의 아지트'가 달았던 옥호다. 수십 년에 걸쳐 시인들의 눈물과 한숨을 머금으며 그 안에서 '빛나는 시'를 잉태해낸 공간.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에 몇 차례나 오르며 문명을 떨치고 있는 시인 고은(75). 지금이야 세계적 시인의 반열에 오른 그이지만, 고은에게도 가난과 절망을 자양분으로 시를 써야했던 젊은 날이 있었다.
바로 그 가난한 젊은 날, 고은 시인은 단골 술집에서 쓴 소주를 마시며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고, 그 성찰의 힘으로 수십 년을 인구에 회자될 빛나는 노래를 빚어냈다. 그 풍경을 1970년대 일간지 문학담당 기자로 활동했던 정규웅은 이렇게 술회한다.
고은 시인이 '싸게 술 마신 노하우'를 공개하다"70년대 초 나는 고은 시인에게서 가벼운 주머니로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어느 날 오후 서너 시쯤 볼 일을 마치고 신문사로 돌아가던 중 광화문에서 고은 시인을 만났다. 고 시인은 무작정 나를 뒷골목 선술집으로 끌고 갔다. 둘 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데 고 시인은 호기 있게 찌개와 소주를 주문했다.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찌개가 바닥이 나자 고 시인은 냄비에다 물을 붓고 밑반찬을 모두 쏟아 부은 다음 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마셨는데도 술값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랬다. 허름하고 값싼 주점, 벽지가 담배 연기에 찌든 다방은 시인들의 꿈과 희망이 영글어가던 장소인 동시에, 굴곡의 한국문학사가 형성된 공간이었다. <시인세계> 여름호는 기획특집으로 바로 이런 장소와 공간을 탐색하고 있다. 이름 하여 '시인들의 단골 아지트'.
이 특집에 참여한 필자들의 면면이 다채롭고 화려하다. 총론격인 '문인들의 장소 문인들의 공간 이야기'는 시인 장석주가 썼고, 울산대 국문과 소래섭 교수는 한국문학사에서 다방이 차지하는 엄청난 비중(?)을 세세하게 서술했다.
여기에 원로시인 황금찬과 김종길, 김규동에서부터 중견 이태수와 이문재,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문인보다 더 문인 같은 문학기자'로 이름을 날린 정규웅과 현재 <한겨레신문> 문학전문기자로 활동 중인 최재봉의 글까지.
장석주는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세를 탔던 명동의 막걸리집 은성과 여기에 드나들던 '명동백작' 이봉구와 전혜린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시인과 술집의 밀접성에 주목한다. 그의 글은 문인들의 아지트가 명동에서 종로와 인사동, 청진동으로 옮겨 다니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의 글 소제목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에 가깝다.
'아리스다방에는 언제나 김종삼이 있다''반포치킨의 성자, 김현''다방은 한국문단의 이면이다''전봉래와 정운삼, 다방에서 살다 다방에서 죽다''마리서사(시인 박인환이 운영했던 서점), 실패한 한국 모더니즘의 산실'문인들의 아지트, 술과 낭만의 시대에 대한 향수흔해 빠진 검찰 출입기자 혹은, 총리실 출입기자가 아닌 '청진동(문인들의 단골 술집이 유난히 많던 동네) 출입기자'라는 별칭을 안고 살았던 정규웅의 글 '1970-1980년대 문인들의 단골술집 풍속도'는 읽는 재미가 쏠쏠할 뿐 아니라, 가난했지만 낭만이 넘쳤던 시대의 노스탤지어까지 부른다.
정규웅은 '슬픔과 결곡의 시인'으로 불리던 박용래가 한국문단의 마당발 이문구의 사무실로 찾아와 아침부터 술을 마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 조병화와 송지영, 이병주 등 원로급 문인들이 자주 찾던 주점 '사슴'의 풍경 등을 담담히 그려내 읽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앞서 언급한 고은 시인과의 에피소드 역시 여기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