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이야기책 <눈물나무> 겉그림
양철북
석유값이 오르기 무섭게 나라안 기름값이 오릅니다. 한 번 올라갔던 기름값은 두 번 다시 내려가지 않습니다. 이와 맞물려 온갖 물건값이 오릅니다. 공공요금도 오르고 책값도 오릅니다. 찻삯이 오르며 전기삯 물삯 집삯 모두 오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곡식값은 좀처럼 오르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곡식자급율’을 생각해 본다면, 모자라고도 한참 모자라서 하늘로 치솟을 법도 합니다만, 놀랍게도 곡식값은 오를 생각을 않습니다.
농약과 비료에 찌들지 않은 깨끗한 곡식을 바라는 사람들 손길이 늘어나는 흐름을 살핀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손가락이나 쪽쪽 빨아야 하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곡식값은 오르기는커녕, 저잣거리와 할인매장에서는 떨이로 다루기도 하며 아주 싼 값으로 팔고 있습니다. 배추 한 포기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이면 삽니다.
굵은 무 하나도 비싸야 이천 원이지, 천 원에 살 때도 있습니다. 얼갈이 한 아름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입니다. 애호박 하나에 천 원 하는 일은 드물고 둘에 천 원을 하더니, 곳에 따라서는 서넛에 천 원만 받는 가게도 있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은 자기 땅에서 거둔 곡식과 푸성귀를 얼마에 팔고 있으신지. 아니, 얼마나 받고 당신들 피땀을 넘겨주고 있으신지.
.. 여기 티후아나에서 눈에 띄지 않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은 구름만 빼고는. 구름은 국경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높은 곳에서 미국 영토로 날아갈 수 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다 …… 미겔의 아이들이 담장 건너편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후안, 공 이리로 던져 보렴!” 공이 담장 위로 높이 날아서 루카의 발 앞에 떨어졌다. 루카는 공을 건너편으로 차서 돌려보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공이 이편에서 저편으로 오가는 모습을 국경경찰이 지켜보았다. ‘사람이 공이라면 좋겠다.’ 루카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구름이거나 비둘기라서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170, 182쪽)오이를 먹고 열무를 먹고 가지를 먹고 호박을 먹고 버섯을 먹고 순무를 먹고 양파를 먹고 감자를 먹습니다만, 제 손으로 기르지는 못하고 저잣거리에서 사서 먹습니다. 우리 식구 형편으로는 천 원에 오이 넷도 만만치 않은 씀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농사꾼들은 이렇게 팔아서는 먹고살 수 없습니다. 굶어야지요. 무너지거나.
그러니까, 시골에서 닭을 치고 돼지를 치고 소를 치는 분들은 사료값을 한푼이라도 줄이려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잔뜩 먹입니다. 하루라도 사료를 덜 먹여야 벌이를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밥상에는 철을 잊은 푸성귀와 열매가 오르고 있는데, 우리들은 철없는 푸성귀와 열매를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사서 먹으면서 아무것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지, 언제까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 언제까지 시골살림이 버티어 줄는지, 언제까지 우리 땅을 더럽히면서 깨끗하게 돌려놓지 않아도 되는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제철을 잊은 곡식과 열매를 먹으면서, 제철 곡식과 열매 맛을 잊습니다. 이제는 곡식맛과 열매맛이 아니라 ‘곡식 이름과 열매 이름’만 배속에 넣고 머리로는 '무얼 먹었다'고 생각하는 셈입니다. 땅과 햇볕과 물과 바람 기운을 머금은 곡식과 열매가 아닌, '얼마얼마짜리 곡식과 열매'를 먹었다고 받아들입니다.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한 수박을 먹으면서도, 아직 수박이 날 철이 아님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 않습니다. 수박철도 아닌데 수박을 먹을 수 있어서 ‘세상 좋아진’ 줄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수박철이 언제인지도 까맣게 잊습니다. 두 손과 온몸으로 땅에 발디디지 않고 살게 되면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땅을 잊으니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하늘을 잊으니 물이 어떻게 아파하는지, 바람이 어떻게 끙끙거리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 루카가 (멕시코에서 살던) 마을 학교에서 2학년에 다니던 일곱 살 때의 어느 날이었다. 고국 멕시코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과, 국가가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부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막 배우던 그 무럽,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농장에서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 (46쪽)꽤 예전에 한치라는 물고기를 거의 모두 일본으로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요즈음도 일본으로 내다 팔 만큼 될는지 모릅니다만, 앞으로는 부피가 차츰 줄어서 나라안에서 먹기에도 벅차리라 봅니다. 아직까지 울릉도 앞바다에서 오징어를 잡는다지만, 언제까지 바다가 깨끗하게 남아 있을까요.
꽃게 값이, 참게 값이 엄청나게 비싸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바지락칼국수나 조개구이를 돈 얼마 치르면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다지만, 조개가 자랄 갯벌은 이 땅에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논밭을 만든다며 메웠다가는 공장과 아파트로 돌리고, 수 만 마리 철새가 날아드는 아름다운 갯벌이었음에도 마구 메꾸면서 공항을 짓더니, 이제는 그 갯벌터에 수십만 채에 이르는 아파트를 올려세우고 대학교까지 옮겨심고 있습니다. 소래포구도 옛말이지, 이제는 소래아파트단지입니다.
저는 보리술을 즐겨마시고 있습니다만, 한국땅에서 자라는 보리가 얼마 없을 텐데, 또 있다 한들 한국사람이 마시는 보리술을 댈 만큼 보리가 있지도 않을 텐데,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열 해쯤 앞서, 저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에서 건너온 쭈꾸미’를 보았습니다. 훨씬 앞서부터 베트남에서 들여왔을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한국땅에서 잡아들일 쭈꾸미로는 한국사람들 배를 채울 수 없었을 터이며, 하루가 다르게 더러워지는 한국 땅과 바다에서 얼마나 많은 쭈꾸미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전거나라였던 베트남이 오토바이나라로 바뀌고 있는 이즈음, 값싼 품삯을 노리고 온갖 공장이 들어서고 있는 오늘날, 베트남도 앞으로는 쭈꾸미 내다 팔기를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미국으로 건너온) 루카가 수업 시간에 뭔가 알아듣지 못하면 친구들이 사방에서 에스파냐어로 설명해 주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루카는 이 학교에 불법 체류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눈빛이나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 (102∼103쪽)식품회사가 넘쳐나고, 온갖 과일주스가 새로 나옵니다. 오렌지, 포도, 토마토, 당근, 사과, 배, 키위, 망고, 파인애플, 알로에, 석류, 매실 ……. 그런데 우리 나라 땅에서 거두어들여서 만드는 과일주스는 몇 가지가 되지요. 있기나 한가요. 있을 수 있습니까.
밀 한 알 제대로 나지 않는 우리 나라인데, 우리 밀을 심어서 거둔다고 한들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시골 면내에도 빵집이 한두 군데씩 있을 만큼, 전국 곳곳에 빵집이 참 많습니다.
.. “시내 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호세가 말했다. “우리가 자기들 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할까 봐 두려워해. 그러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안 보는 게 좋아. 그럼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잊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수확한 토마토는 맛있게 먹고, 또 값이 싸다고 좋아하지.” 페드로가 말했다. “미국사람들이 토마토를 수확한다면 부자들만 먹을 수 있을 거야. 미국사람들이 이런 저임금으로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 (64쪽)날마다 놀라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땅이 꺼지지 않고 하늘이 내려앉지 않아서 놀라면서 삽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좔좔좔 솟아나는데(미터기는 빙글빙글 돌 테지만), 우리 나라가 물이 넉넉한 나라가 아닐 텐데, 이렇게 물을 걱정없이 써도 괜찮은가 싶어서 놀랍니다. 돈 좀 있는 회사마다 시골에 땅을 사들여 땅속 물줄기를 뽑아들여서 돈 받고 물을 팔고 있는데, 이렇게 해도 한국땅에서는 지진 한 번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 놀랍습니다.
서울과 부산, 서울과 인천을 이으려고 하는 물길을 놓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사람한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하는 소리가 때때로 먹혀들어가기도 하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발전소 전기를 돌려서 수도물을 끌어들이는 청계천과 같은 물길을 낸다며,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수천 억에 이르는 돈을 쓴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놀랍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도 시와 군 우두머리가 밀어붙입니다. 공무원들은 우두머리 지시와 명령을 받고 착착착 기획서를 올리고 예산안을 짭니다.
지난달, 우리 동네 큰길가 거님길 돌이 쫙 뜯겼다가 다시 깔렸습니다. 하수도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고, 무슨 사고가 났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자체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 예산을 써 없애려고 돌바꾸기를 했을 뿐입니다. 이런 바보짓은 그만해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퍽 예전부터 나왔으나, 비판이 있든 없든 잘못은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예 되풀이되면서 사람을 쉬지 않고 놀래킵니다.
.. “파업이 얼마나 계속될 예정이냐?” 나이가 많은 흑인 직원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2주일 동안 시위를 지속한다면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은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어쨌든 난 원칙적으로는 너희들 편이야. 30년 전에 우리도 똑같은 행동을 했지. 사람은 가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해. 특히 피부가 희지 않을 때는 말이다.” .. (159쪽)저녁나절, 옆지기 다리를 주무르면서 배에 대고 이야기를 합니다. 두 달쯤 뒤면 세상에 나올 아이한테 말을 겁니다. “꽁꽁이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세상 무서워서 살기가 팍팍한데, 너도 참 힘들겠구나. 그러니 너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튼튼해야 하고 억세어야 한단다. 굶기지 않도록 애쓸 테지만, 너는 네 힘으로 이 세상을 잘 살아야 한단다.”
(2) 이 땅은 누구네 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