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뼈저린 반성은 어디로 사라졌나?

반성한 지 불과 며칠만에 고시강행까지 하다니

등록 2008.06.26 14:19수정 2008.07.0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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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미국산 쇠고기 검역이 시작되었다. 국민의 불안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시와 관보게재가 강행된 것이다. 이에 국민은 울분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다. 게다가 경찰의 무차별 촛불집회 해산작전이 감행되고 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강제연행하고, 민변소속의 변호사도 강제연행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연행하는 폭거를 저지르고 있다. 사태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뼈저린 반성을 곱씹는다

 

불과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바로 그 문제의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하여 국민에게 사과한 것이다. 그것도 뼈저리게 반성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였을 정도다. 대통령의 뼈저린 반성이 있은 후 정권의 태도는 전혀 달라졌다. 과연 무엇을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한 것일까?

 

국민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무시하고,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시장을 미국에 내준 것을 반성한다는 뜻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정권의 태도 돌변은 참으로 어리둥절한 일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사과한 사실을 다시 뼈저리게 반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태도라 아니할 수가 없다. 도무지 진정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혹시 촛불집회를 초기에 강력하게 진압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는 의미였을까? 문맥으로 보아 그렇게 해석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반성이라는 단어의 앞뒤에 국민의 의사를 거스른 행태를 적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정권이 며칠 만에 태도를 표변한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정권을 담당하는 세력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주권자인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도 되는 것인가?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정권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이 하는 말마다 도무지 신뢰할 만한 구석이 없으니 국민 노릇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4년 8개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암담하다. 과연 국민인 우리가 이 나라의 주권자인 것이 사실인지 의심이 간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말도 믿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뼈저리게 반성했기에 지금 정권은 이렇게 일방통행을 하는 것일까?

 

정권의 태도가 돌변한 까닭이 궁금하다

 

아마도 집권 초기에 보여주던 자만감을 되찾은 모양이다. 2위 후보와 500만 표 차이로 이겼다며 압도적 승리를 운운하던 그 초심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그 짧은 기간에 정권이 태도를 표변한 까닭을 찾아보자.

 

실효성이 의문가는 이른바 추가협상의 결과에 고무된 때문일 것이다. 본 협정문은 그대로 유효하게 놓아둔 채 추가협상에 따른 경과 조치들을 덕지덕지 붙여두고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또 이제 국민이 대부분 안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을 것이다. 한국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했다고 판단하는 순간 모두 무용지물이 될 추가협상의 결과물이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되묻고 싶다. 신뢰의 회복정도에 대한 판단근거도 전혀 정한 바가 없음에도 말이다.

 

또 한가지는 촛불집회 참가자가 다소 줄어든 것을 보고 오판했을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숫자가 적으면 적당히 뭉개도 된다는 발상을 하는 것일까? 그동안 정권이 불안한 일을 저질러서 국민은 쉴 틈이 없었다. 촛불집회도 두달을 끄는 동안 많은 사람이 지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음까지 지친 것은 아니다. 언제라도 지금처럼 정권이 태도를 바꾸면 다시 모여들 것이다. 촛불의 숫자만을 보고 여론을 판단하는 것은 오산이다.

 

가장 중요한 태도변화의 원인은 아마도 미국의 압력이 아닐까? 미국은 한국정부가 협상을 마치고도 고시를 연기한 것에 대한 불신을 표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추가협상의 결과는 한국정부의 고시가 발효된 후에 서명한다며 압박한 모양이다.

 

게다가 이미 통과가 불가능한 한미FTA를 거론하며 쇠고기 고시를 종용한다. 그러한 압력을 접한 정권은 허둥지둥 태도를 바꾸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가 국민인지 미국인지 알 수가 없다. 애당초 협상자체가 잘못된 데서 시작된 문제인데 여전히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것같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미하나마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상승했다고 한다. 실효성에 의문이 있는 추가협상, 뼈저린 반성이라는 감성적 용어선택, 청와대 참모진의 알맹이 없는 개편 등에 일부 국민이 지지를 한 결과이다.

 

문제는 지금 지지하는 20%의 국민이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본래 집권세력을 지지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작은 근거라도 있다면 지지할 사람이 30%선에 달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80%의 국민은 무시해도 좋은지 되묻고 싶다.

 

이제 대통령의 뼈저린 반성은 이미 폐기된 일이다. 위에서 열거한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들로 다시 초기의 자만심을 회복한 정권에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이 정권에 과연 국민이 주권자인지, 그것을 인정은 하는지 묻고싶다.

 

첫단추가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입어야한다

 

지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민의 걱정은 여전히 심각하다. 그래서 한국도 잘못된 협상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매일 국민은 피곤한 촛불집회를 열어야 하고, 정권은 그것을 막는데 공권력을 동원하여 국민과 점점 유리되고 있다. 국가 간의 협상에 굴종적 태도로 임하여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다. 국민이 원하던 것이 아니다. 정권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미국도 잘못된 협상의 피해를 톡톡히 보고 있다. 협상이 한국민의 감정을 이렇게까지 건드리지 않았다면 이미 미국은 엄청난 양의 쇠고기를 한국시장에 내다 팔았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확보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을 사람이 별로 없다. 이미 수많은 국민이 한국에 들어올 미국산 쇠고기를 위험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적절한 수준에서 협상을 했더라면 얻을 수 있던 이익조차 욕심을 부리다 날려버린 꼴이다.

 

그렇게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에서 잘 소비되지 않아도 여전히 한국민은 불안한 상황이다. 학교급식, 군대의 식량, 라면의 수프, 화장품, 기타의 다른 품목들에 포함되었을 미국산 쇠고기와 그 부산물을 걱정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알고 보면 양국이 모두 엉터리 협상의 결과로 피해를 보고 있다. 한국정부의 굴종적 태도, 미국정부의 과도한 욕심이 상호간의 피해만 생산하고 말았다.

 

이 뿐만 아니다. 이미 설렁탕집, 곱창집, 갈비탕집 등등이 장사가 안돼고 망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엄청난 경제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호주산 쇠고기도 팔리지 않는다. 아무리 원산지 표시를 강화해도 여전히 속여서 파는 자들은 널려 있다. 한우도 팔리지 않는다.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 이렇게 불행하게 된 원인은 바로 한국정부의 굴욕적 태도와 미국의 욕심이 결합하여 만든 협상이다.

 

근원적 해결책은 잘못된 첫단추부터 다시 풀어서 처음부터 옳바르게 채워나가는 것이다. 미국정부와 한국정부는 그 일을 지금 다시 시작할 때다. 미국정부는 한국정부를 압박하여 고시를 강행시키고, 한국정부는 국민의 들끓는 여론을 공권력의 폭압으로 막으려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 시작이 잘못된 것을 그냥 밀어붙인들 우스운 옷매무새로 망신만 당할 뿐이다.

 

경찰이 시민의 손가락을 물어 뜯어서 잘라버리는 불행한 일이 생길수록 국민의 저항은 강해질 뿐이다. 5공정권이 엄청난 폭압을 사용하고도 국민 앞에 무릎꿇은 역사를 정권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정체성은 국민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다. 특정한 정파가 담당하는 정권이 국가정체성은 아니다. 국민의 주권이 민주적으로 정치에 투영되는 자유민주주의가 우리의 국가정체성이 아닌가? 대통령을 불신임하는 국민이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의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권이 정체성을 훼손할 뿐이다.

 

뼈저린 반성이 진실한 것이라면 지금의 태도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그렇게 표변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미국이 무서워서 비위를 맞출 것이 아니라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야 정권이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주권자가 아니다.

 

부디 한-미 양국 정부가 첫단추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2008.06.26 14:19ⓒ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관보게재 #대미굴욕 #위압적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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