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청와대 대통령실 개편 이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국무회의에서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시위는 정부 정책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
강재섭 대표는 전날 "국민건강을 챙기는 것처럼 하면서 소 등에 올라타서 정권퇴진운동·정치투쟁을 하고 있는 일부 시위꾼들의 촛불집회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고, 홍준표 원내대표는 "촛불집회가 프로들을 중심으로 생활투쟁에서 반미정치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공격했다.
한나라당 전북도당의 새 위원장이 된 유홍렬씨가 지난 13일 대의원들 앞에서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자율과 경쟁으로 시험 봐서 성적 공개하고 어쩌고 하면 쪽팔리는 학생들"이라고 학생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23일부터 여당 지도부의 입에서 촛불시위를 깎아내리는 말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더니 급기야 대통령이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엄단을 직접 언급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당이 먼저 "이만큼 얘기해도 괜찮을 것 같으니 대통령도 한 말씀하시라"고 애드벌룬을 띄우자 대통령도 용기(?)를 내서 '법의 수호자'로 다시 나서는 형국이다.
'민심의 함성' 얘기하던 입으로 '시위꾼들의 촛불집회' 걱정하는 여당 대표그러나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장·차관들이 부산을 떠는 공직사회 분위기에서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앞으로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 걱정된다.
며칠 전만 해도 정부·여당의 기류는 이렇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다"(19일 기자회견)며 '뼈저린 반성'을 얘기했고, 강 대표는 6·10 집회를 "민의를 최우선시하는 정치를 해달라는 민심의 함성"이라고 추켜세웠다.
여당 의원들도 TV토론에 나와 "대통령이 잘못했다" "재협상을 해야한다"고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시위대의 입맛에 맞는 얘기만을 늘어놓아서 토론의 김을 빼놓곤 했다. 촛불시위를 '천민 민주주의' '디지털 마오이즘'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같은 사람만 외계인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이번 주 들어 여권 수뇌부에서 나오는 발언들은 과연 정부·여당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쇄신을 다짐하는지 의심케 한다. 마치 소나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쇠고기 문제를 애써 무시하고 FTA 비준의 필요성을 되풀이하며 위기를 탈출하려고 했던, 17대 국회의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원내지도부를 연상케 한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안상수 의원은 "정부가 유언비어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 잘못"(5월 6일)이라고 말했고, 심재철 의원(전 원내수석부대표)은 "쇠고기를 계기로 반미 선동을 하고, 반정부·반이명박 투쟁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5월 2일)고 질타했다. 이 대통령도 "광우병이 여론에 과대 포장되고 있다. 정치 논리로 접근해서 사회 불안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5월 2일)는 훈계로 대응했다.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은 이후에도 '광우병 괴담' 얘기를 되풀이하다가 국민들의 불안감이 가라앉지 않자 미국과의 추가 협상으로 선회했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가 MBC PD수첩의 일부 내용을 문제 삼아 검찰에 수사의뢰를 한 것도 자기모순이다. PD수첩이 허위 보도로 국민들을 선동했다면, 국민들의 열화 같은 요구에 떠밀려 미국과 추가협상을 한 정부도 "TV에 농락당할 만큼 어리석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