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역 1번 출구 근처에 1회용 컵들이 버려져 있다. 유명 패스트푸드 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 용기 등이 가득하다.
이승배
지난 20일, 오후 3시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역 1번 출구. 지하철역 주변 선반엔 1회용 컵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컵 2개는 포개져 있었고, 안에는 담배꽁초와 담뱃재가 담겨 있었다. 뒤로는 음료수 컵과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 용기 등이 있다.
근처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공원 내 소공연장 돌기둥의자 사이로 480㏄짜리 1회용 커피잔 한 개가 굴러다녔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뒤편 골목 한쪽엔 1회용 용기 등이 잔뜩 버려져 있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버려진 컵 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걸쭉한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심하게 부패돼 콧속이 찌릿할 정도로 악취가 진동했다. 어떤 컵은 누군가 발로 짓밟은 듯 납작하게 눌려져 있었다.
한 연극 극장 입구에선 남녀 커플이 얼음 커피를 마시며 재잘거리더니, 잠시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 들고 있던 1회용 커피 잔은 앉은 자리 옆에 내버렸다. 이 모습을 본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저 놈들 봐,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네"라며 혀를 찬 뒤, 커피 잔을 들어 조금 떨어진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컵보증금제 |
컵보증금제는 1회용컵을 수거해 재활용한다는 취지로 실시됐다.
하지만 환불율이 40%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다, 반납하지 않은 60% 가량 금액을 업체가 판촉비 등 임의로 사용하는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환경부가 3월 20일 전격 폐지했다.
3개월 유예기간을 둬, 3월 20일 이전 구입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수증을 갖고 오면 6월 말까지 컵보증금을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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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용 컵이 발견되는 곳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지하철 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게 금속으로 만든 의자가 설치돼 있다. 공원 안에서 모은 컵도 대부분 벤치 주변에서 찾은 것들이다. 결국 잠깐 앉아 쉬면서 음료수를 마시고 난 뒤, 그냥 버리고 간 것이다. 자동차와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은 길은 의외로 깨끗했다.
물론 쉬는 공간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 중엔 깨끗한 공간도 제법 있었다. 5~6곳을 돌아다니며 이유를 살펴봤더니 결론은 이랬다. 누군가 먼저 버리지 않은 곳은 쉽사리 버릴 수 없다는 것. 하지만 한번 뚫린 곳은 여지없이 다음 범행의 대상이 됐다. 실제로 한 장소에서 3~4개의 컵을 한꺼번에 줍기도 했다.
이날 대학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1시간 동안 모은 1회용 컵은 모두 12개(패스트푸드 전문점 4개, 커피전문점 8개). 훼손 상태가 심각해 재활용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은 뺐다. 이 컵을 돈으로 바꾸면 얼마나 될까?
환경부가 실시해온 '1회용 컵 보증금 제도'에 따르면 패스트푸드 1회용 컵은 개당 100원,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컵은 50원을 환불받을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모두 800원(4×100=400원, 8×50=400원)을 번 셈이다. 1분에 약 13원씩 길에서 돈을 주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분당 13원씩 길거리에 버렸다는 말도 된다.
나라 전체로 넓혀보면 액수가 잘 드러난다. '1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통해 지난해 1회용 컵 약 1억1200만개를 팔아 79억2300만원이 모였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이 가운데 환불된 돈은 29억4800만원, 전체 금액의 37.2%에 그쳤다. 나머지는 결국 바닥으로 버려진 것이다. 무려 49억79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