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대한민국 정부를 해산해라!

쇠고기 협상과 추가협상은 제2의 을사늑약

등록 2008.06.23 15:42수정 2008.06.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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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과의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가 발표되었다. 정부와 조중동은 연일 그 성과를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이른바 5단계 협상 시나리오라는 것까지 등장하며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간의 전화통화까지도 치밀한 계산에 의한 협상 전략이었다니, 그런 치밀함이 왜 본협상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게다가 그렇게 치밀하게 준비한 협상의 결과를 보면 한숨 섞인 분노만 나온다.

 

정부가 자화자찬하는 이번 추가협상의 성과는 크게 세 가지이다.

(1)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 금지

(2) 30개월 이하 일부 위험물질 수입금지

(3) 검역주권 일부 회복

 

먼저 (1)번은 미국 수출업자들의 이른바 자율규제를 정부가 보증하는 QSA 프로그램으로 보장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부 강제사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프로그램 위반시 마땅한 제재조치도 없다. 미국 정부가 형식적으로 QSA 딱지를 붙여주고 업자들은 사실상 구분도 되지않는 온갖 연령의 쇠고기를 뒤섞어 한국으로 보내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원래 미국 육류협회의 입장을 대변해 온 미국 농림부와 수출업자들이 처음부터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QSA를 느슨하게 운영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애초에 정부 대 정부의 책임있는 약속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연령과 관련된 문제가 생겨도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근본적으로 우리정부가 미국정부나 미국 수출업자에게 행사할 수 있는, 소비자로서의 기본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정부나 이명박 대통령, 혹은 조중동은 미국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법과 제도는 안타깝게도 인간의 선의를 최대한 믿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세워졌다. 인간의 선의를 믿는다면 굳이 왜 우리가 미국의 선의만 믿어야 할까? 일본의 선의도 믿어야 하고 북한의 선의도 믿어야 하고 중국의 선의도 믿어야 한다.

 

아니, 전두환의 선의도 믿어야 하고 이명박의 선의도 믿어야 한다.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할 이유도 없다. 직선제도 필요없다. 지도자의 선의를 믿으면 되니까. 자기나라 지도자의 선의를 안 믿으면 어쩌겠다는 것인가? 지금 정부나 조중동이 하는 말이 이와 다르지 않다.

 

(2)번에서는 머리뼈와 척수 등 일부 위험물질이 제거되었다고 국민에게 안심하란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대로 가장 많이 소비될 등뼈는 그냥 들어온다. 유럽 기준으로 위험물질로 분류된 각종 내장들도 무제한으로 들어온다. 정부는 협상결과를 발표하면서 "무엇무엇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잘 된 협상"이라고 말하지만,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무엇무엇이 결국 우리 식탁에 오르는가"이다. 정부는 말장난을 하고 있다.

 

우리집 아이에게 불량식품을 열 가지 사라고 강요하는 잡상인에게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여덟 개는 안 팔테니까 두 개 정도는 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똑같다. 상식적인 소비자라면 팔지 않는 여덟 개의 불량식품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 개든 두 개든 불량식품이 우리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보다도 미국업자들의 입장만 생각한다고 여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분노한다.

 

(3)번도 눈가리고 아웅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번 추가협상에서 미국 작업장 점검 대상이 확대되었고 미국 도축장에 대한 작업중단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검역주권을 일부 회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정부스스로 밝혔듯이 '일부' 회복에 지나지 않는다. 수입국으로서 수출국의 모든 작업장에 대한 승인 및 취소권은 원래 우리나라가 가지는 고유 권한인데 이 권한이 지난 4월 협상으로 포기되었고 이번 추가협상에서도 회복되지 않았다. 추가협상 결과에 의하면 우리는 '요구'할 수 있고 미국은 '들어준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주권국가간의 통상협정이 아니다. 식민지와 통치국 사이의 관계다.

 

그리고 추가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았고 이후 국내에서도 얘기되지 않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미국 내의 강화사료조치 문제다. 이는 광우병 발생의 근본 원인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료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인가는 광우병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과도 직결된다. 그런데 이 문제를 정부는 미국의 판단에 완전히 맡겨 버렸다.

 

수입국으로서 안전한 먹거리를 수출국으로부터 공급받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들을 수입국 스스로가 "정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그 "정의"를 내리는 권한을 미국에게 양도해버렸다. 우리가 정의해야 할 사안들을 이런 식으로 계속 포기해 나간다면 우리는 결코 급변하는 세계와 역사의 발전을 스스로 정의할 수조차 없고 주체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외교나 통상에서 어떤 사태를 스스로 "정의"하는 권한은 주권국가의 핵심이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자기존엄의 문제다. 한국의 과학이 아무리 미국보다 못하더라도 우리는 미국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기준에 따라 수입품을 결정할 고유권한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기준에는 미국 내에서의 사료조치에서부터 작업장 승인 취소권, 엄격한 연령구분과 이력추적,위험물질의 정의 등등이 모두 포함된다.

 

100여년 전 우리는 우리의 외교능력이 없다 하여 힘 센 나라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경험이 있다. 그 일을 주도했던 한국 관리들은 그 힘 센 나라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 조선황실과 황민들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문구도 분명히 적혀 있기는 했다. 그렇게 선의를 믿은 대가는 100년을 넘은 후세에까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주권국가는 다른 나라의 선의를 믿기보다 구조적인 개연성에 대비해야만 한다. 그것이 정부와 국가의 존재이유다. "만에 하나"에 대비하는 것이 정부다. 어느 누구도 1953년 이후 북한의 무력침공이 없다는 이유로 북한의 군사위협이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1945년 해방 이후 일본과는 선린우호관계를 잘 다져왔기 때문에 독도 문제에서도 일본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잘 풀리더라도 최후의 군사억지력은 확보해야만 하는 것이고 우리의 능력이 일본에 비해 아무리 떨어지더라도 이지스 함을 구축하는 등 적절한 대비는 해야만 한다. 만에 하나에 대비하는 것이 국방이기 때문이다.

 

통상과 검역은 국방의 또다른 모습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국가안보의 개념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으로도 확대되어야만 한다. 반세기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국방을 게을리할 수 없듯이, 2003년 이후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통상과 검역에서도 "만에 하나"라는 원칙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대한민국 정부를 해산하고 모든 업무를 민영화하는 게 낫다. 마치 국민의 건강권을 미국 수출업자의 자율규제에 맡겼듯이 말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4월 본협상과 이번 추가협상은 한국정부의 기본적인 주권일부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제2의 을사늑약에 다름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 때나 지금이나 고위 관료들은 강대국의 선의를 믿으라고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역사는 그들을 매국노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100년 전 조선의 최고권력자는 늑약에 반대하며 결과를 뒤집기 위한 노력을 다했는데, 그보다 국력이 수백배는 더 커진 지금의 최고권력자는 오히려 맨 앞에 서 있다는 점이다. 누구 말마따나 이제는 정말 의병이라도 일으켜야 할 때인가 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6.23 15:42ⓒ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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